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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李陸史
작성자 철** 작성일 2019-10-28 조회수 147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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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그의 시는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본명 이원록()
출생 - 사망 1904. 4. 4. ~ 1944. 1. 16.
출생지 국내 경상북도 안동
데뷔 1935. 신조선에 「황혼」 발표

본명은 원록().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 출생.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학교에서 잠시 수학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 그 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의열단의 사명을 띠고 북경으로 갔다. 1926년 일시 귀국, 다시 북경으로 가서 북경사관학교에 입학, 이듬해 가을에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 때 그의 수인()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로 택했다고 전한다.

1929년에 출옥, 이듬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 북경대학 사회학과에서 수학하면서 만주와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 정의부()?군정부()?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노신()을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33년 9월 귀국하여 이 때부터 시작()에 전념,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첫 작품은 1935년 『신조선』에 발표한 「황혼」이었다.

1934년 신조선사 근무를 비롯하여 중외일보사, 조광사, 인문사 등 언론기관에 종사하면서 시 외에도 한시와 시조, 논문,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에 손을 대어 재능을 나타냈다. 1935년 시조 「춘추삼제()」와 시 「실제()」를 썼으며, 1937년 신석초?윤곤강?김광균 등과 『자오선』을 발간하여 「청포도」, 「교목」, 「파초」 등의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목가풍의 시를 발표했다.

그의 시 발표는 주로 『조광』, 『풍림』, 『문장』, 『인문평론』을 통하여 194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시작활동 못지 않게 독립투쟁에 헌신하여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되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광야」「절정」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시는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1941년 폐병을 앓아 성모병원에 입원, 잠시 요양했으나 독립운동을 위해 1943년 초봄 다시 북경으로 갔다. 그 해 4월 귀국했다가 6월에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중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1946년 『육사시집』이 발간되었다.

학력사항

  • 보문의숙
  • 대구 교남학교
  • 중국 북경사관학교(중퇴)
  • 중국 북경대학교 - 사회학

경력사항

  • 독립운동단체 의열단 활동
  • 1934년 ~ 신조선사 근무
  • 중외일보 근무
  • 조광사 근무
  • 인문사 근무

작품목록

  • 청포도
  • 절정
  • 광야
  • 육사시집
  • 이육사의 시와 산문 그리고 인생
  • 교목
  • 노정기
  • 황혼

    [네이버 지식백과] 이육사 [李陸史]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