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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완석
작성자 철** 작성일 2019-08-16 조회수 325
오완석 작가는 조각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림도 그리고, 지우개와 건전지 같은 일상의 사물을 의외의 조합으로 엮어 농담처럼 내어놓거나, 작은 포장용 상자를 뒤집어 놓고 ‘빅 박스’라는 제목을 부여해 세상을 포장해 버리기도 한다. ‘뒤집기’의 제스처를 회화로 확장해, 유리판에 색을 겹겹이 칠한 후 뒤집어 그림의 속을 보여주는 [Under painting] 연작도 선보였다.

한 장의 종이부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설치까지, 농담 같은 언어유희로부터 생각이 탄생하는 경계에까지, 그의 작업은 몸놀림의 폭이 크지만, 그 중심에는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있음과 없음,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대립쌍의 상태에 대한 생각이 제법 묵직한 무게추가 되어 중심을 잡아 준다. 없음은 어쩌다가 있음의 세계로 진입하며, 있음은 또 어떻게 없음의 그늘로 숨어들까. 끝이 맞물린 이 생각의 줄거리는 그의 작업 전반에서 동그라미의 모양과 ‘뒤집기’의 원리로 드러난다.

인터뷰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돌을 그리려 했는데,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고 나니 더 할 것이 없어 막막했던 이야기다. 이 막막한 장면은 기시감처럼 맴돌다가 그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0에 대한 개념으로 발전한다. 어린 시절 돌을 그린 동그라미가 숫자 0으로 그 모양을 바꾼다. 0처럼 동그라미처럼 순환하는 이야기. 여기서부터는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보자.


0과 동그라미

오완석, [zero base 1], 오브제, 2011

오완석, [zero base 1], 오브제, 2011

오완석, [zero base module], 종이, 2013

오완석, [zero base module], 종이, 2013


오완석, 질문 1
 

[ZERO base module]은 저의 생각을 정리한 구조입니다. 작업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물질’과 ‘비물질’, 그것을 만들어내는 ‘환경’과 ‘그 너머의 가능성’이라는 네 요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0은 ‘아직 없음’을 상징하며 +, -가 존재하는 ‘공간(환경)’입니다. +는 ‘물질’, -는 ‘비물질’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0은 물질과 비물질의 공간이기도 하며, -0은 그 너머의 가능성입니다. (표1 참조)

-0에 대한 생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0이 멈춘 상태라고 한다면, ?가 붙으면 움직임이 부여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서 -0을 ‘그 너머의 가능성’이라고 했는데, 가능성이라는 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라고 한다면, -0이라는 건 결국 시간이며 -는 과거와 미래를 통하게 해주는 연결 고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0에 대한 생각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무르익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표1

표1


오완석, 질문 2
 

재료 선택과 표현은 단순하게 하는 편입니다. 표현이 단순할수록 의미 전달에 힘이 생깁니다. 재료는 개념 전달의 용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작업 해석의 여지는 관객의 몫입니다만, (재료 선택과 표현의 단순화는) 작가의 생각 외에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게 하려는 제 스스로의 기준 같은 것입니다.

오완석, [-0+305], 나무 끼워 맞춤, 2017

오완석, [-0+305], 나무 끼워 맞춤, 2017

오완석, [-0+sound], 울트라소닉센서, 나무, 2015

오완석, [-0+sound], 울트라소닉센서, 나무, 2015


오완석, 질문 3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0이 가진 의미는 ‘가능성’입니다. [-0+305]는 [zero base module]의 개념이 커다란 설치물로 확장되는 작업입니다. [zero base module]의 종이 한 장에서 오려진 동그라미가 [-0+305]에서는 하나하나의 나무 원판 모듈이 되고, 이 모듈이 쌓여 전시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모듈은 공간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확장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닙니다. ?0의 확장을 형상화한 설치 작업들입니다.


오완석, 질문 4
 

때론 소리가 몰입에 도움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도 사운드를 사용합니다. [고요한 하늘을 위한 무제 팔레트]에 사용된 사운드는 제가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 종종 듣는 화이트 노이즈 입니다. 소리는 사람들 사이에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또 한 작품과 대면해 밀접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0+sound]는 소리를 단순히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작업에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업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벽면에 부착한 지향성 스피커(초음파 발생 장치)에서 공간 중앙에 위치한 설치 구조물로 사운드를 보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소리가 나는 것 같은 구조물로 다가가지만, 사실 그곳에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사이에서 관객은 공간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오완석, 질문 5
 

‘생각이 떠오른다’ 말해야 하나요, 책 내용을 눈으로만 읽고 있을 때 딴생각이 종종 생겨납니다. 순간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면서, 머리로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두세 페이지는 훌쩍 넘겨져 있습니다. 이때 “아, 내가 또 딴생각을 했구나” 하고, 그 생각의 기억을 붙잡아서 메모를 남깁니다. 어떤 책이 재미있게 읽힌다면 작업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을 책에 빼앗긴다는 마음이 드니 참, 아이러니인 셈입니다.


오완석, 질문 6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마다 드로잉과 텍스트를 메모합니다. 그렇게 모은 메모를 선별해 구체화합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형태가 완성된 작업도 있으며, 관객이 완성하는 작업도 있습니다. 작업을 구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생각을 적는 ‘메모지’입니다. 저는 도화지를 잘라서 직사각형 형태의 메모지를 만듭니다.

이 메모지의 크기는 약 33x11cm 정도이며 가방, 책상, 선반에 두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마다 수시로 적습니다. 생각을 저장하는 저만의 방식으로, 작업과 일상생활 어디든 지니고 다닙니다. 이번 인터뷰 촬영을 계기로 한 벽면에 그간의 드로잉 일부를 펼쳐 놓게 됐는데, 한눈에 보니 그동안의 생각의 흐름이 잘 들어오더군요. 앞으로는 이렇게 공간에 펼쳐 놓고 구상해보려 합니다.

오완석, [Case], 아이디어 설치, 2011~

오완석, [Case], 아이디어 설치, 2011~

오완석, [Case], 아이디어 설치, 2011~

오완석, [Case], 아이디어 설치, 2011~


오완석, 질문 7
 

작품 [Case]는 ‘아직 없음’을 관객의 생각에 근거해서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에서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점은, 질문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질문을 받은 순간 관객의 몸은 현실에 있지만, 정신은 생각(을 위한 장소) 어딘가에 다녀오게 됩니다. 관객이 본, 그곳에 ‘있는 것’은 현실에서는 ‘아직 없는 것’, 즉 ‘아직 없음’입니다. 저는 이것을 ‘없음의 발견’이라 생각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작업은 ‘내가 만약 작품을 만든다면, 그 크기는 ________일 것이다’라는 문장을 관객이 완성하기를 요청합니다. 돌아온 대답을 구분해보면 성실한 치수 기재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한 것, 서술형으로 글짓기를 한 것, 심지어 소망을 적은 것도 있습니다. 답지들을 모아 벽면에 질문과 함께 디스플레이하기도 하고, 치수에 맞는 케이스를 제작해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부터 주변 동료들에게 질문하기 시작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확장해, 현재까지 모은 답변이 대략 5,000여 개입니다. 모든 대답이 계획대로 기록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질문해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깁니다. 마치 제가 자신의 작업을 빼앗기라도 한 듯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며, 인터뷰 이후에 실제로 작품을 만들고는 제게 케이스를 요구하기도 하더군요.

오완석,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 오브제, 2012

오완석,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 오브제, 2012

오완석,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 철, 2012~2018

오완석,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 철, 2012~2018


오완석, 질문 8
 

어느 날 작가 7명과 벌인 해프닝입니다. 작업실 바닥에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한 명이 들어갑니다. 나머지 사람은 안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이에 적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의 소요 끝에 모두의 순서가 끝났습니다. 이 행위로 느낀 점은 사람은 타인에게 투영시킨 자신의 생각을 마치 사실인 양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해프닝은 작품 [중요한 생각만 하는 네모]로 이어집니다. 바닥에 그려진 네모는 단순한 구획이지만, 관객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도구가 됩니다. 저는 관객이 그 네모 안으로 들어가 네모 안과 밖에서의 의식의 변화를 경험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관객의 모습을 봤습니다. 사실 이러한 변수도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 작업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작업 의도와 연결되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오완석, [36.5], 메트로놈 사운드, 오브제, 2013

오완석, [36.5], 메트로놈 사운드, 오브제, 2013

오완석, [∠216.5 ? c = ∠180 ? + 36.5 ?c], 고무 점토, 2018

오완석, [∠216.5 ? c = ∠180 ? + 36.5 ?c], 고무 점토, 2018


오완석, 질문 9
 

[36.5]는 하나의 원판에서 사람 체온(36.5 ?c)만큼의 중심각을 지니는 부채꼴 조각을 떼어내 회전시킨 것입니다. 회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완벽한 원이 되었다가 다시 비게 되기를 반복하는 이미지를 만든 것입니다. 이 원이 완전해질 때마다 메트로놈 사운드를 발생시켰습니다. 숫자는 긴말을 간단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어 종종 활용하곤 합니다. [∠216.5 ?c = ∠180 ? + 36.5 ?c]도 그러한 경우인데, 땅바닥을 180도로, 사람을 지칭하는 숫자를 36.5도라고 하면 사람과 땅이 만나 216.5도가 됩니다. 여기에는 온도와 각도에 대한 언어유희의 측면도 있습니다.


오완석, 질문 10
 

개념은 작업의 씨앗이라 비유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씨앗에 물을 주듯 작업마다 스토리를 만듭니다. 작은 오브제에서부터 전시공간을 가득 채우는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씨앗은 다양한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념이 작업으로 나오기까지는 씨앗이 식물로 자라는 것만큼이나 물리적인 시간을 동반합니다. 식물이 자라듯 개념이 어떠한 방향이나 형태로 확장되고 변화하는 과정이 작업의 완성이라 생각합니다.


맞물리는 세계들

인터뷰를 위해 작가의 작업실에 방문했다. 버스 터미널로 마중 나온 작가의 차를 얻어 타고 한참을 더 달려 들어가던 길, 창밖으로는 하늘과 산과 들판만이 연신 펼쳐지고 있어 삶의 공간과는 분리된 작업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첫 개인전은 대전의 한 카페에서, 두 번째 개인전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최근 수도권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지만, 작가는 여전히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에 머물며 외부의 조건이 아닌 스스로의 동력으로 작업을 지속해가고 있다. 그 동력은 무얼까.

작업실에 머무는 동안, 입구에 놓인 [36.5]에서 메트로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동그라미 형상이 채워졌음을 지시하는 소리였다. 형상을 완성시킨 부채꼴 조각은 이미 궤도를 따라 제 자리를 비워내고 있었을 것이었다. 소리는 다만, 달의 이지러져야 다시 차오를 수 있듯, 오완석 작가의 작업 세계의 모티프와 움직임들도 서로가 서로의 계기가 되면서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 순환의 고리 속에서 책상 맡의 [zero base module]에서 떨어져 나온 손바닥만한 0은 동그란 모듈이 되어 [-0+305]에서 전시 공간을 채울 만큼 커졌다가, [36.5]에서 적당히 덜어내어지고 채워지는 반복 운동을 수행한다. 작가가 주로 앉는 자리에는 [zero base human]의 모빌 조각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빌에 달린 것은, 한 장의 평면 좌우에서 절반씩 오려 접힌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아 하나가 된 형상이다.

우아름 / 미술비평


· 추천의 변

답할 수 없는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종종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예술이 삶보다 무거울 수 있을까. 동시대 미술은 그 어느 시기보다 무겁고 진지하다.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 전쟁과 난민, 차별과 혐오 등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 역사적 문제, 그리고 그 안에 갇혀 고통받는 인간과 공동체의 목록은 끝이 없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인류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감하는 일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만 점철되었는가. 예술의 다른 가치들은 어디로 가 있는가. 다른 가치들을 추구한 예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전 테미아트레지던시 입주 작가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오완석 작가는 말수가 적었다. 작품도 마찬가지로 담담했다. 신문지를 오려 음양을 만든 오브제, 한 가지 물감을 유리에 겹겹이 칠해 반전된 형태를 보여주는 회화 등 최소한의 형태와 색, 제작기법만을 이용한다. 거창한 사회적 주제나 소재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단순하고 명료해보이지만 위트 있는 그의 작품은 발상의 전환을 촉발시킨다. 많은 이야기를 앞다투어 전달하려는 동시대 미술의 작품들과 달리 오완석의 작품은 느긋하고, 조용하다. 최소한의 이야기를 하거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기다린다. 관객이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번잡한 세상의 소음 속에서 떠나 침묵 속에 잠시 머물 수 있게 배려한다.

바닥에 무심하게 선을 그어 구획한 [중요한 생각을 하는 네모]나 주위 작가나 관객들에게 예술작품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으로 구성된 [Case]와 같은 작품들은 관객들이 눈으로 보기보다 생각을 하게 만든다. [-0+sound]처럼 사운드와 반복적인 모듈의 집적으로 완성된 공간에서 소리는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머문다. 매일 보는 사물을 변주하고,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 오완석은 동시대 미술이 점점 보기 힘들어진 미덕들을 갖추고 있다. 시각적 스펙터클 뒤에 숨지도, 중요하고 거대한 사회적 화두에 몸을 기대지 않고, 궁금한 질문들을 던지고, 요즘 현대인들이 가장 하기 힘들고 하지 못하는 일인, 자기와의 대화로 이끈다.

추천인 이수정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오완석

오완석은 1983년 태어났다. 충남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2013년 카페 안도르에서 첫 개인전 [0 + ? -0]을, 2017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마이너스 0]을 열었다. 또한 [집 그리고 길](대전시립미술관, 2013), [흔들리는 경계](테미예술창작센터, 2014), [빛2014, 하정웅 청년작가초대전](광주시립미술관, 2014), [퍼블릭아트 뉴히어로](JCC 아트센터, 2017), [미니멀 변주](서울대학교 미술관, 2018) 등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4 하정웅 청년작가상, 2015 퍼플릭아트 뉴히어로에 선정됐다. 현재 대전과 세종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완석 - 생각이 싹트는 드로잉 (헬로! 아티스트, 네이버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