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 |||||
작성자 | 철** | 작성일 | 2019-08-01 | 조회수 |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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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림
구상을 벗어버린 모든 그림이 추상화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화면에 직접 지시하는 대상이 없어도 어떤 작가는 자신의 캔버스 위로 더운 숨이나 차가운 고드름, 습하거나 꾸덕꾸덕한 것들을 쌓고 그려낼 수가 있다. 미술이 전부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여기, 앞서 말한 이것에 재주가 좋은 한 작가가 있다. 그녀는 진득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말하는 작가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일상 중에 마주하게 된 매력적인 순간에 대해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기법(wet on wet : 앞서 바른 물감이 마르기 전 다음 도료를 바르는 페인팅 기법)으로 분명하게 그려낸다. 100호 가까운 사이즈의 캔버스를 하루 시일에 채워내는 것, 작가로서 그것은 분명 용기다. ·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용기 작가는 꽤 오랫동안 미술을 공부했다. 미술 관련 중학교에 다녔으니 그녀가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전이었을 것이다. 그 세월만큼이나 작가는 자신의 주변 작가 혹은 지인들이 무엇을 만들고 그리는지 관찰했고 다양한 매체를 다뤘다. 작가는 학부 시절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러다 대학원을 마치면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리라 결심했고 그렇게 유학을 떠난 런던에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환이었다. "꼭 유화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다만 런던에서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히스(heath)라고 정리되지 않는 초야 같은 곳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정원이나 들판과 달리 정리되지 않은 수목과 잡초, 웅덩이 같은 게 가득한데 그런 것들을 보는 게 좋았어요. 자주 봤습니다. 마냥 예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었고 적합한 매체를 찾다 그렇게 유화를 조금씩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학부 시절 작가는 재료의 질감에 골몰했었다고. 그 시절부터 미국의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작가의 작품을 즐겨 보았다. 하얀 물감 이외의 컬러는 일절 쓰지 않으면서 캔버스 위로 그림을 그려내는 로버트 라이먼의 작업은 재료의 텍스처를 통한 회화적 표현을 배우기에 훌륭한 교본이었다. 또한 작가는 이미 말끔하게 정돈된 아름다움보다 그것과 조금은 더럽고 어지러운 것의 중간, 경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분채에 아교를 균일하게 섞어가면서 이뤄지는 동양화적 채색보다는 조금은 더 무질서하고 동물적인 질감이 필요했다. "핀란드에서 레지던시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눈길을 걷다 신발 바닥을 보았는데 새하얗던 눈이 진흙과 뒤섞여 회갈빛의 애매한 컬러들이 보였어요. 마냥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모습이었어요. 제가 포착해서 그리는 순간들을 대개 그런 모습들인 것 같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크게 두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150호 넘는 사이즈의 캔버스 위로 구체적인 지시물 없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가득 채워 넣는 것, 다른 하나는 이러한 패턴이 철학적인 단어 뒤에 숨지 않는, 작가의 오롯한 감각으로부터 출발한 이미지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피부로 느낀 자극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고 그러므로 사소하지만 쉽게 박리될 수 없는 감각에 대하여 그것을 커다란 스케일로 확장해 스스로 마주하는 것, 이는 곧 정직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관객과 작품 사이로 공기가 흘러 다닐 수 있도록 우리는 삶에서 불현듯 나타나 슬픔이나 권태, 분노 따위의 악당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영화를 종종 보게 된다. 주인공이 비브라늄을 온몸에 두르고 한 소녀에서부터 지구, 우주에 이르기까지 못 구하는 것이 없는 구조 전문직인 경우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빅히어로의 숨 가쁜 구조 행위를 목격하는 것이 꼭 우리의 구원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이와 반대로 공간적, 혹은 시간상으로 여유를 둠으로써 작품 안팎으로 일정의 공기를 만들어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영화가 있다. 작가는 그런 공기를 머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흔히 말하는 그런 큰 얘기에 관한 작업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근데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일상을 얘기하는 것에 더 눈이 갔고 그렇게 주변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더 작은 자극도 크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일상으로부터 출발한 제 작업이 보는 이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환기하면 바라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관객과 제 작품 사이로 약간의 공간이 있고 공기 같은 게 흐르면 좋겠습니다. 캔버스 위로 너무 촘촘한 묘사를 하지 않는 것도, 휴먼스케일 이상의 세로적인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체험적 감상을 유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작가는 작품명이 간단한 편이다 [화가의 정원(The Painter’s Garden)], [페인티드 페인팅(Painted Painting)]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부르는데, 앞서 공기에 관해 얘기한 부분과 일맥한 이유에서다. 또한 작가는 항상 여백에 대해 생각한다. 캔버스 위로 혹은 곁으로 시각적 혹은 개념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관객이 작품을 그저 관찰하다가, 그렇게 끝내 주변만 맴돌다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동양화 베이스의 작가이기 때문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우스개처럼 만화 영화 '시간탐험대'의 캐릭터 '돈데크만'을 불쑥 이야기했다. 또 '게이트웨이(gateway)'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다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큰 사이즈인 작가의 작업 안으로 관객들이 진짜로 걸어 들어갔다 왔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 이 시대에 볼만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작가가 회화적(painterly) 이미지에 대해 역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원근감이 만들어내는 3차원적 환영이나 두꺼운 관념적 덩어리를 캔버스에 눌러 담는 것이 아닌, 평면적 매체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기법을 계속해서 찾는 중이다. 즉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성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러한 여백을 그려내는지를 살펴보는 것 또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정통적 회화성(painterliness)에 대한 논쟁 혹은 고민이 미술사에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가 더욱 다양해졌다. 현재, 단순히 그것들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오감을 향하는 자극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회화 작가로서 김미영 작가는 회화적 '바람', '에너지', '방향성' 등을 표현하거나 '추운 겨울 구레나룻 끝에 맺히는 고드름의 서걱거림', '정원에 핀 꽃들이 머금은 형광 빛'과 같이 흔히 예사로 생각되기 쉬운 매우 구체적인 감각을 직접적으로 캔버스 위에 올려놓는다. 이것들은 매우 구체적이라 경우에 따라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아주 크고 반복적으로 그려 작가는 세상 단일한 고유의 감각 혹은 조형물을 창조한다. "나는 페인팅(painting)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드러나는 회화의 핵심인 '캔버스의 표면에 물감을 바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화면은 소실점 없이 구성되며 직설적으로 물감이 화면에 묻고 발려지고 튀기고 닦아 내어지면서 물감에서 시각적으로 발현되는 아우라에 나 스스로가 매혹되기를 원한다. 나는 고정된 아이디어로 작업을 시작하기보다 매우 느슨한 생각으로 출발한다." -김미영 작업 노트 중-글 오웅진 / 전시 공간 ‘OF’ 기획자 · 추천의 변 스쳐간 풍경, 계절의 공기, 사물의 기억 등 쉽게 이미지화할 수 없는, 하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의 감각은 어떻게 평면에 안착될 수 있을까. 김미영 작가는 주변을 감싸는 일상의 감각에 집중하며 캔버스에 ‘물감 바르기’를 지속한다. 스스로를 일종의 매개체이자 통로로 설정하며 감각을 포착하고 평면으로 옮기는 작가는 특정 서사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순간의 자국들을 캔버스에 바르고 겹치며, 또 덩어리로 뭉치고 섞으며 실재하는 감각의 패턴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낸다.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 연속적 흐름을 가설하고 여러 시점을 겹치는 작업에는 동양화의 오랜 전통과 추상표현주의의 형식이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비슷한 호흡의 터치를 반복하는 작업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다양한 회화적 실험과 훈련을 거듭하며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감각과 마주한 캔버스의 표면을 연결하는 작가는 외부 공기를 투영하는 그리기를 통해 감각의 체험을 유도한다. 추천인 권혁규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김미영 김미영 작가는 2008년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를 전공하고 2014년 왕립예술대학교 회화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마쳤다. 파리, 런던,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다양한 나라에서 레지던시 및 전시를 마쳤고 2012년 갤러리 도스의 [Disconnected Connection]을 시작으로 2016 [Sunlight House] 레스빠스71, 2017 [Wet on Wet] 이화익 갤러리, 2018 [Painted Painting] 갤러리 기체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0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Wonderful Pictures]을 시작으로 국내외 단체전에 다수 참여했다. 김미영 작가 홈페이지 www.meeyoungkimstudio.com [네이버 지식백과] 김미영 -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림 (헬로! 아티스트, 네이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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