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산 | |||||
작성자 | 철** | 작성일 | 2019-01-14 | 조회수 | 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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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實際)를 상상하게 하는 조각
우리는 흔히 영화나 드라마 속 연출된 상황이 마치 실제 사건이나 공간인 것처럼 보일 때,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허산의 조각 작품을 보면 현재 내가 존재하는 공간의 리얼리티, 즉 실제성을 고민하게 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관찰을 유도하는 까닭이다. 일상에 존재하는 듯한 익숙한 형태의 작품들은 전시 공간 안에서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자유롭게 배치돼 묘한 불편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불편함은 우리의 관습적인 인식에 물결을 일으키며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한다. · 조각과 비조각의 경계 공사 현장도 아닌데 멀쩡한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위층과 아래층을 떠받치는 기둥은 부서져 있고, 그 안에는 유물 발굴 현장인 듯 청자가 끼워져 있다. 부서진 파편들은 고스란히 주변에 흩어져 있다. 벽에는 까만 마스크가 덩그러니 걸려 있고 브론즈 블록은 청테이프로 벽에 고정돼 있다. 분명 전시장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왔음에도 기묘한 공간 구성에 흠칫,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닌지 머뭇거리게 된다. 허산 작가는 조각을 공간에 스며들게 하는 연출로 관객에게 흔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적으로 공간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전환한다. 그의 작업 세계는 재미있게도 한 갤러리에서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됐다. “제가 인터뷰를 할 때 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어느 갤러리의 공사 현장을 제가 작품으로 오해한 일이 있었거든요.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사하던 인부들이 와서 비키라는 거예요.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제 공사 현장이었던 거죠. 제가 공부하던 시절 장소 특정적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기도 했고 그런 교육도 많이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관찰의 경험을 작업적 소재로 차용하게 된 것 같아요.” Site-specific Art, 장소 특정적 미술. 전시 공간이 되는 건축물이나 주위 환경을 작품의 재료로,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허산의 조각 역시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익숙한 공간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의 조각이 빚어낸 불편함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당연하게 여겨지던 공간의 구조에 대한 지각을 뒤흔든다. · 관성적인 생각에 물음표를 던지다 허산의 작업은 보통 사람들의 관습적 인식을 깨부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모든 환경을 꼼꼼히 바라본 그는 공간과 공간에 들어설 사람들의 익숙함을 깬 불편함을 공간에 심는다. 최근 열린 개인전 <일상의 특이점들> 또한 그간 이어온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블랙홀의 중심이나 빅뱅의 순간처럼 수학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상의 한 점을 의미하는 특이점. 그는 실재와 허구,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대립하는 개념의 작업이 우리의 관성적인 사고에 물음표를 던지면서 진짜와 가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관객들은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는 순간의 상황을 특이점으로 보고 그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물이 100℃를 넘으면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고 수증기로 변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간의 인식에도 순간적으로 확 변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눈앞에 놓인 사물을 작품이라고 인식했을 때 그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다른 사물도 작품이지 않을까? 하고 인식이 확장하게 되죠. 그런 변화를 끌어낼 요소들을 공간 안에 설치해봤어요.” 실제 사용되는 비닐봉지와 그 안에 담겨 있는 브론즈 식물, 애매한 지점에 걸려 있는 검정 마스크 등은 중간에 부서진 기둥과 함께 처음 보는 순간 기묘하고 어색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관객은 이내 전시 공간 안의 작품임을 인지하게 되는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작품인지를 다시 고민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해나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허산은 단순히 전시공간 안에서의 작품과 비작품 사이를 고민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관습에 얽매여 보지 못하는 이 사회의 실제와 실재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 몸을 움직여 관찰해야 보이는 것들 허산의 작업이 흥미로운 점은 오감으로 관찰해야 보인다는 데 있다. 관객은 방을 이리저리 걸음으로써 기울어진 정도를 알 수 있고 벽이나 기둥에 박힌 도자기를 보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거나 까치발을 디뎌야 한다. 조각과 조각이 아닌 경계를 넘나들며 어디까지가 조각 작품인지 알아내거나, 어느 선까지를 작품으로 이해할지는 오롯이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의 몫이다.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패턴이 있어요. 전시장도 그렇고 보통의 경우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정해진 동선에 따라 움직이게 되죠. 전시장을 예로 들면 시각의 범위가 정해져 있어요. 천장이나 바닥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바닥을 기울인 작업인 [경사각(Inclined Angles)]도 그렇고, 벽 아래편에 도자기로 만든 병을 넣은 것도 그런 변화를 주기 위해 한 작업이었어요.” 본래 조각이란 매체 자체가 몸을 움직여 개입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허산의 작업은 그 움직임을 더욱 확장시킨다. 사방을 돌아보며 관람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허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내밀어야 하는 등 좀 더 큰 움직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쌓이며 인지의 변곡점에 도달하게 된다. · 공간의 제약이 사라질 때 더 큰 매력이 발산될 그의 조각 그의 조각 작품은 단순히 인식의 전환만을 유도하지 않는다. 인지의 변곡점을 끌어내려는 시도 이면에는 인식의 전환 이후에 따라오는 관객 개개인의 실제에 대한 상상이 숨어있다. 작가에 의해 연출된 상황 속 조각들을 바라보며 관객은 공간의 이야기, 조각 작품의 이야기 등 공간에 놓인 조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실제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그러나 뻔함으로 불리는 관습적 인지능력에 반기를 드는 그의 조각은 그 자체가 가진 매력에도 불구하고 갤러리라는 공간이 가진 일반화된 관념으로 인해 제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갤러리에 놓였을 때와 실생활에 비집고 들어갔을 때, 분명히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은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죠. 허가를 받는다든가 하는 부분에서요. 지하철역 기둥 같은 곳에도 제 작업을 설치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낙원상가의 경우도 아래 기둥이 많잖아요. 그런 곳에 악기도 놓고 낙원상가의 역사적 맥락까지 더한 설치를 한다면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도 같아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서 아직은 해보고 싶다는 바람만 갖고 있어요.” 그의 조각이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정확한 답을 내어주지는 않지만, 그가 보여주는 조각 vs 비조각, 실제 vs 허구, 익숙함 vs 낯섦이라는 공식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실제성’의 실체를 고민할 계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기준과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더 깊은 눈을 갖게 된다. 글 김희정 / 칼럼니스트 · 추천의 변 허산은 작은 풍선에 의해 기울어진 갤러리 바닥, 무너진 벽이나 부러진 기둥 사이에서 노출된 기이한 유물 그리고 화이트큐브 이면에 숨겨진 정원 등 실재와 환영 사이에서 낯설고 기이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가 연출한 비일상적이도 초현실적인 공간의 매력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고고학자가 되어 때로는 탐정이 되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리하게 되는 자연스런 과정은 타인의 삶과 외부 세계에 대한 은밀하고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상황극에 우리를 초대하여 미완의 내러티브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하는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추천인 임근혜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허산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슬레이드예술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07년 브라이튼 대학 미술상 수상을 시작으로 2011년 ‘The Open West’ 대상 수상, 2013년 영국 왕립 조각가협회 신진 작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과 독일 등에서 개인전 및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이후 한국에 돌아와 활동을 시작, 다양한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었다. 영국 정부 예술 컬렉션 및 영국, 네덜란드 한국의 개인 컬렉터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허산 - 실제(實際)를 상상하게 하는 조각 (헬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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