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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작성자 철** 작성일 2019-01-08 조회수 226

이정모 관장에게 책은 과학과의 연결고리다

 

이정모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는 분야별 전문가를 만나 직업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사람, 바로 서울시립과학관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정모 관장이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한 그는 우리가 좀 더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과학의 소통을 이끄는 그를 만나 과학이 우리 삶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아봤다.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꿈이 없었던 아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어요. ‘설마 없었겠느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정말이에요. 그냥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었어요. 대학교 땐 놀고 데모하느라 공부도 안 했고요. 졸업할 때쯤 뭘 할지 몰라서, 일단 대학원에 가기로 했어요. 연구의 재미를 알게 된 건 바로 그때예요. 그러다 해외의 잘 갖춰진 환경에서 연구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죠. 독일은 학비도 공짜고, 학점이 좋을 필요도 없었거든요. 막상 독일에 가니 언어 때문에 힘이 들긴 했어요. 하지만 좋았던 점이 훨씬 많죠. 언제든지 실험실에 갈 수도,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사용해 볼 수도 있었어요. 배우고 연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던 거예요.

이정모 1

독일 과학 수준의 비결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독일에는 과학의 대중화가 자리 잡혀 있어요. 그렇다고 과학관이 많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수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죠. 의외로 독일 사람들의 과학 수준을 이끈 것은 책이에요.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한 것이 고전적인 방법이라는 게 재미있는데요. 독일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교양 과학서가 존재해요. 저 또한 독일에서 처음으로 교양 과학서를 접했어요. 덕분에 전공도 아니었던 천문학, 물리학, 지구과학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게 됐죠. 과학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은 물론 저의 세계도 바뀌게 되었고요. 이런 면에서 독일에 가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과학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던 계기가 됐으니까요.

과학과 대중을 잇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icator)’

우리나라에도 과학과 대중의 사이를 잇는 거간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주 적임자였죠.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거든요(웃음). 그 뒤로 자칭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 말하며 대중에게 과학을 전파하고자 책도 쓰고 강연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정모 2

처음 쓴 책은 ‘달력과 권력’이에요. 쓰게 된 계기가 재미있는데요. 독일의 한 잡지에서 퀴즈를 다 맞추면 노트북을 준다고 하길래 도전했지 뭐예요. 첫 번째 문제는 ‘1001년 1월 1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는 총 며칠인가’였어요. 문제를 풀려면 중세사와 윤년의 규칙을 알아야 했는데, 이미 알고 있었으니 자신만만했죠. 그런데 웬걸, 제가 적어 낸 답과 정답이 무려 열흘이나 차이가 나더군요. 충격에 빠져선 그 잃어버린 열흘을 찾기 위해서 달력과 관련된 모든 책을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 내용을 엮은 것이 저의 첫 번째 책이고요. 책을 쓴다는 건 재미있는 일인 거 같아요.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대중과 소통도 가능하니까요.

보는 과학을 넘은 ‘하는 과학’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국내에는 총 137개의 과학관이 있어요. 그중 136개의 과학관의 주 타깃은 어린이지만 서울시립과학관은 다르죠. 청소년과 성인이 타깃이에요. 처음 부임했을 때 ‘이미 있는 과학관을 또 만들어야 할 것인가? 뭔가 다른 걸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를 두고 고민했어요. 그러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곳,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실패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학은 보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되레 ‘하는 과학’이 중요하죠. 하는 것에는 책에서 배우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어요. 이곳 실험실을 찾은 학생들은 직접 메스를 들어 돼지 심장을 갈라 보죠. 그러면 2심방 2심실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요. 외울 필요가 없는 거죠.

과학의 올바른 대중화

신화로 설명되는 시대가 있었다 하면, 요즘은 신화의 스펙트럼이 점점 줄어들고 과학의 영역이 늘어가는 시기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잘 살려면 과학을 알아야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사실 과학의 대중화 운동은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어요.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죠. 어느 날 제 딸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배웠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유레카’ 단어의 뜻은 말하면서도 부력의 원리는 알지 못하더라고요.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쉽게만 다가가려다 보니, 정작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과학은 어렵지만, 알면 안전할 수 있고, 또 세상을 위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과학 대중화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의 연장선으로 대중이 과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대중의 과학화도 이뤄져야 하죠.

이정모 3

과학을 알았더라면?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과학을 알면 혼란스러울 일도 적어질 거예요. 전국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살충제 달걀을 예로 들어볼게요. 이 사건으로 서민들은 비싼 달걀을 사 먹어야 했고, 빵집과 양계장은 망했죠. 망한 양계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다시 세금을 쏟아야 했고요. 과연 이게 필요했던 일일까요? 조금만 과학적으로 접근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살충제 수치를 계산해 보니, 60kg의 사람이 매일 5개를 먹는다고 한들, 건강에 이상이 없는 정도의 양이더라고요. 물론 기준치를 넘긴 건 문제이지만, 전국민이 그렇게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었단 얘기죠.

또,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웨이브가 암을 유발한다는 얘기, 아마 들어 보셨을 거예요. 마이크로웨이브는 리모컨에서 쓰는 적외선보다 낮은 에너지인데, 어떻게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해 발암물질을 만들겠어요. 이처럼 우리가 ‘하더라’ 하는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결국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것이죠.

과학은 쉽지 않아요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과학은 분명 어려워요. 하지만 어디 과학뿐인가요? 철학, 예술, 경영 모두가 그래요. 그럼에도 우리가 다른 분야보다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극복해야 하죠. 그러려면 첫째, 좋아하는 과학자가 있어야 해요. 좋아하는 작가를 통해서 문학세계를 넓혀 가듯 말이죠. 아이들과 함께 서점에 가 보시는 걸 추천할게요. 그리고 스스로 과학책을 고르게 하세요. 처음엔 서툴겠지만 점점 자신에게 맞는 책을 알게 될 거예요. 좋아하는 분야, 출판사도 생기겠죠. 그 후엔 자연스럽게 퍼져나갈 거고요. 또 좋아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통해 많은 분들께서 자연사에 대해 알게 되셨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을 찾고, 좋아하는 공간을 찾는 것, 어려운 과학과 친해지는 방법이에요.

이정모 관장의 추천 책

개미제국의 발견

<개미제국의 발견>
최재천 저
사이언스북스
2014년 7월 29일
상세보기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과학책에 입문하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인데요. 우리나라 최초로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책이자, 그 수준을 높인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익숙한 곤충인 개미를 주제로, 1만 2천 가지의 종 중 특이한 종을 다루고 있죠. 책을 읽으면 개미제국 내에서 여왕개미, 일개미, 병정개미 등 어떻게 분업해서 살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고, 생태계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개미의 협동과 공생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동물의 세계가 얼마나 재미있으며, 과학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아름다운 문체로 보여주고 있죠.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 저절로 ‘같이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만화) 갈릴레이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만화) 갈릴레이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정창훈 글
유희석 그림
주니어김영사
2008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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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를 만화로 풀어낸 책이에요. 지동설에 대한 갈릴레이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잘 보여주면서도 쉽게 풀어낸 게 특징인데요. 글을 쓰신 정창훈 선생님은 이 책을 완전히 꿰뚫고서 재미있게 쓰시면서, 더불어 갈릴레오의 허점들도 잘 짚어내셨어요. 또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자세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법, 다른 타인을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서도 학습할 수 있죠. 그래서 과학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자, 생활의 태도이며 의심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데요. 이 책이 그 과정을 이해시키고 있죠. 과학에서는 고전이랄 게 없지만, 이 책만큼은 과학에서도 고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까막딱따구리 숲: 은사시나무 숲 생명 이야기

<까막딱따구리 숲: 은사시나무 숲 생명 이야기>
김성호 저
지성사
2011년 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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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한국 딱따구리 가운데 가장 큰 까막딱따구리의 번식과정을 기록해 놓은 책이에요. 저자 김성호는 5년 동안 같은 곳을 가서,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과정을 기록했어요. 글에서 보이는 그의 자연과 과학에 대한 태도는 감동적이기까지 한데요. 가령 책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요. ‘10시 38분, 결국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집니다. 13시 25분, 수컷이 조용히 숲으로 들어옵니다. 파랑새를 의식해서인지 소리를 내지 않고 둥지에 접근합니다. 7번째 먹이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느낀 바를 생태학적으로, 또 문학적인 필체로 보여주고 있어요. 새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자연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뛰어난 과학책이라고 생각해요.


산소: 세상을 만든 분자

<산소: 세상을 만든 분자>
닉 레인 저
양은주 역
뿌리와이파리
2016년 10월 31일
상세보기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서 낸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소개하고 싶어요. 벌써 17권이 나왔는데요. 매권 삼엽충, 공룡 등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죠. 과연 이렇게 어려운 책이 잘 팔릴까 싶었지만, 실제로 이 책이 인기를 끄는 걸 보고 한국 대중의 수준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어요.

17 중에서도 꼭 한 권만 골라야 한다면 닉 레인의 ‘산소’를 추천할게요. 보통 산소는 생명에 꼭 필요한 원소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산소는 독이기도 해요. 멀쩡한 쇠판에 산소가 결합하면 녹슬어 없어지고, 양초에 산소가 결합하면 타서 없어지니까요. 이 책은 38억의 진화설을 산소라는 분자를 통해 화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보통은 진화설을 설명하기 위해 공룡을 등장시키지만, 그렇지 않아요. 대신 진화라는 큰 그림을 섬세하게 엮어내고 있죠. 진화에 관해 관심이 있으시거나, 자칭 과학 덕후라고 말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른 시선으로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저
돌베개
2017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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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타고난 이야기꾼인 김탁환 작가의 소설이에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8편의 이야기를 다룬 중 · 단편소설집인데요. 책에는 세월호와 관련된 사람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가족들, 잠수부, 잠수부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슬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작은 기쁨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이 책 서두에는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라는 신영복의 글귀가 인용돼 있죠. 이는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제는 세월호의 슬픔을 다른 힘으로 발휘해 세상을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이 책이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설 디딤판이 되어 주고 있죠.

[네이버 지식백과] 이정모 - 이정모 관장에게 책은 과학과의 연결고리다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