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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종
작성자 철** 작성일 2018-12-31 조회수 299

미완의 꿈을 향해 이카루스, 날다

 

 

이혁종 작가

이혁종 작가

이혁종 작가는 제 몸을 땅속에 파묻거나 건물 벽에 매달며 현실에서 문화예술에 대해 따져 묻고, 주변 식당에서 얻어온 밥풀을 유리창에 붙여서 생활의 한계와 꿈꾸는 이상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는 작업을 했다. 버려진 나무를 주워 깎은 조각품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다 돌연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미궁에서 밖으로의 도약을 꿈꾸었다. 이후 지역에서 다년간 공동체 예술을 실험하고 현재 레지던시 표류기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지역민들의 생활문화 동아리를 기획, 설계하는 [도깨비 연방(Community Space 'Dokebi-Yonbang')],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만들어 지역의 주요 산업 폐기물로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든 [황새둥지(Hwangsaedungji_Stork Nest)] 등 커뮤니티아트 작업에 매진하다가 현재 '레지던시 표류기'라는 이름으로 전국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유랑하며 작업한다.

그가 건물 벽에 자신을 매단 고통스러운 작업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엽기 사진'으로 취급되며 악플 세례를 받았고, 자신과 동료 예술가들이 폐품으로 만든 작품을 유통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려 했던 '이카루스 프로젝트'는 기대만큼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으며 스스로 무려 '거버넌스(협치) 아트'라고 이름 붙인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과의 이견으로 주도적 역할에서 물러서야 했다. 이카루스는 날아오르지 못했고, 협치는 잠정중단되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에도 이혁종 작가는 끊임없이 새롭게 작업하고, 탐구하며, 기획하고, 저술한다. 어쩌면 그는 이 모든 실패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제가 죽은 뒤에 판단할 문제입니다. 참고로 제가 계획한 제 수명은 126세입니다."라고 답하는 이혁종 작가. 그는 잔뜩 진지한 태도로 농담을 멈추지 않는다.

이혁종, [역사 연구(A Study of History)], 2003년

이혁종, [역사 연구(A Study of History)], 2003년자기 설치 시리즈 3, 4 hour

이혁종 인터뷰 질문

2003년, 졸업반이 되어 미술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미술 작업을 통해 만족할 만한 보상(소통과 경제적 보상)이 주어질까, 또 작품의 제작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등의 고민에서 실행한 작업이었지요.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것을 노트에 구상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때의 떨림, 처음으로 공개 장소에서 많은 사람과 마주하는 형식의 직접성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도감을 주었습니다. 몇 시간씩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처지에 스스로 처한 상황이어서 당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의식의 집중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좋아하는 나를 발견하고 싹 틔우는 계기였습니다.


이혁종 인터뷰 질문

제 작업 모습이 갓 나온 휴대전화기 사진기에 실려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죠. 그렇지만 새롭게 펼쳐진 온라인의 또 다른 현장은 흥미로웠습니다. 댓글을 통해 최선을 다해 소통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인상 깊은 체험이었지요. 수백 개의 열렬한 반응과 만연한 냉소에 고온, 저온 화상을 동시에 입었습니다. 물론 진심 어린 대화도 있었고요. 당시에 접한 예술에 대한 냉소와 적대는 지금까지 작가로서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이혁종 인터뷰 질문

대구 잡이 배에서 큰 고생을 했고, 생각보다 버는 돈도 적었습니다. '이리 구르나 저리 구르나 인생 매일반'이라는 속세의 깨달음을 얻었지요. 밤낮없이 영화 '해무'에 나오는 것과 거의 똑같은 어선의 갑판 위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뱃멀미에 고생 좀 하다 보니 다시 마음은 일렁이는 파도 위에 앉아서 폭풍을 피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갈매기에게 갔습니다. 미술이 제 마음속에서 해소된 것이 아니라 억눌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눌린 것의 반발력이었지요.

그렇게 익숙지 않은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해방된 후 때마침 동료의 권유로 2007년 '부평 설치미술축제'에 추천되었습니다. 저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 기획자에게 편지를 썼고, 그 절실함과 솔직함에 인상을 받았던 기획자는 저의 편지를 도록에 그대로 실었습니다. '이렇다 할 미술계 이력은 없지만, 나름의 예술적 고민을 껴안은 삶이 있었노라고. 뭐든지 해보고 싶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혁종, [날개 달린 사람(Winged Person)], 2007년

이혁종, [날개 달린 사람(Winged Person)], 2007년유리문 위에 주변 식당에서 구한 밥알을 그대로 붙임, Variable Size

이혁종, [핵, 핵, 멜팅다운(Haeg Haeg(Korean Say Nuclear), Melting Down)], 2011년

이혁종, [핵, 핵, 멜팅다운(Haeg Haeg(Korean Say Nuclear), Melting Down)], 2011년유리, 테이크아웃 용기 뚜껑, 질경이, 설탕, 백열등, 자전거 발전기, Variable Size

 
 
이혁종 인터뷰 질문

졸업 후 사회 이리저리 방랑과 스스로 훈련을 하면서 인생은 재미없어도 해야 하는 먹고 사는 일과 배가 부르면 저절로 드는 딴생각 또는 꿈꾸기의 이분법적으로 구성된다는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그걸 부평구청이라는 공공 공간에 미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탁발(동냥?)해 얻은 밥풀로 날개 달린 사람을 표현한 거죠. 너무 단순한 표현이라 메시지는 남사스러운 데가 있었지만, 밥풀이라는 일상적 재료가 평소와 다른 질서에 의해 모여서 햇빛이 굴절되고 산란하는 형상의 신비함과 모호함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밥풀을 아무 매개물이 없이 그대로 유리창에 붙이는 형식은 어떤 해답을 찾은 듯하여 쾌감을 주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고민하던 생태학적인 재료학적인 고민의 답 말입니다. 아무 덧붙이는 오염물질 없이 가뿐하게 붙었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떨어져서 갈 길을 가는 재료의 순환과정이 주는 간소함이 당시 저의 엄격한 윤리에 저촉되지 않아서 흡족했습니다.


이혁종 인터뷰 질문

그 계획은 아직 완료된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으며, 저는 지속해서 틈을 보고 있습니다. 고대의 이카루스는 서양(일직선의 기독교 시간관)의 시간을 날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상대적인 동양의 순환적 시간관으로 굴절시켜 아래위로 순환하는 모델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카루스는 적어도 설계상으로는 고대 서양의 이카루스보다 더 '스마트'합니다.


이혁종 인터뷰 질문

말장난(언어유희)과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을 즐깁니다. 그 안에 유머나 위트의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심각한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어주고, 받아들이기 쉽게 해줍니다. 반대로 농담 같지만, 그 안에 씨앗과 뼈가 있는 어법이 된 거죠. 농담은 예나 지금이나 계급이 낮고 사회적 자본이 적은 이들이 취하는 지혜이자 전략입니다. "제국의 성은 화살이 아니라 웃음으로 무너진다."라는 말도 있지요. 지금 즉시 성공하지 못하는 대기만성형 인간은 자신을 달래며 삶의 곡절과 순간마다 유머와 농담을 윤활유처럼, 양념처럼 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쌓여 문화와 저력이 되겠지요.


이혁종 인터뷰 질문

우리가 지칭하는 문화예술은 지역과 삶 속에서 여전히 협소한 의미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공미술도 누군가 대리자와 권위자가 공공장소에 표현한 결과물이지요. 이와 대조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이 직접 자신의 문화를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아트는 예술적으로 분명히 새롭습니다.

이혁종, [도깨비연방(Community Space ‘Dokebi-Yonbang’)], 2011-2014년

이혁종, [도깨비연방(Community Space ‘Dokebi-Yonbang’)], 2011-2014년커뮤니티 공간 설계 및 프로그램 운영

이혁종 인터뷰 질문

과거 살던 동네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왔을 때 전력을 다해 참여했습니다. 지역사회복지관과 함께 '동네 예술가'그룹의 일원이 되어 재활용 목공 공작소 '안방', 커뮤니티 카페 '도깨비방', 농사 프로그램 '우주농' 등 일상생활 속에서 삶을 새롭게 느끼고 기쁨을 주는 취미활동 동아리를 예술적으로 기획, 설계하고 운영하는 실험으로 시작했지요. 지역 전통시장인 도깨비시장의 공영주차장이라는 공공장소의 틈새에 자리 잡은 동아리 방들이 점점 확장되어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기금으로 예술가들이 직접 설계하고 시공한 [도깨비연방(Community Space 'Dokebi-Yonbang')]이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저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다양한 이유로 더 관여하지 않지만 지금도 주민자치문화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3년 도깨비연방이 자리를 잡을 즈음 예술가들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커뮤니티 활동과 대안적인 생활문화를 실험할 레지던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지역사회복지관과의 합의가 있었고, 그 결과가 [황새둥지(Hwangsaedungji(Stork Nest))]라는 기획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을 서울시의 공동생활형 공공임대주택 시범사업 대상지(방학 두레주택)에 제안했고, 지층 커뮤니티 공간에 부분적으로 적용된 것이 2014년부터의 [황새둥지(Hwangsaedungji(Stork Nest))] 작업이자 활동이지요. 대안적인 삶의 방식과 밀접한 '손수 만들기' 및 생활문화 프로그램으로 생활 속 문화예술에 대한 탐구와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탐구를 아우르는 실험이었습니다. 동료들과 저는 공동주택과 그 공간 한 켠에서 3년간 체류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이혁종, [황새둥지(Hwangsaedungji (Stork Nest))], 2014년~

이혁종, [황새둥지(Hwangsaedungji (Stork Nest))], 2014년~생활문화 커뮤니티

이혁종 인터뷰 질문

[황새둥지(Hwangsaedungji(Stork Nest))] 기획이 2014년 현실화하였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늘 불충분한 타협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당시 공무원들을 만나서 다양한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 들이는 협상과 기획을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새로운 내 모습과 역량을 발굴하는 것이 흥미로웠고 황새둥지 활동의 확장으로 마을회관을 운영하는 주민자치 조직인 방아골 마을 사람들 협동조합의 홍보이사도 2년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 안에서의 활동은 수많은 역학관계 속에서 성취감보다 소모적인 부침을 주었습니다. 역량 밖의 활동이었습니다. 주민들로부터 부정적 반응도 있었고, 처음의 의도가 와전되기도 했지요. 커뮤니티 아트의 가능성과 그 이상의 문제점, 한계를 알았습니다. 예술가와 문화활동가들이 지역에 거점을 가지고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미완의 꿈입니다.


이혁종 인터뷰 질문

어떤 이들은 커뮤니티 아트를 신자유주의의 지원과 관리에 포획된 '키치(Kitsch, 저급한 예술)'로 판단합니다. 그런 비판에는 부당한 구석이 있지만, 지금의 커뮤니티 아트는 혁신적이라기보다는 양식화, 범주화되어 양산되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도깨비연방(Community Space 'Dokebi-Yonbang')]과 [황새둥지(Hwangsaedungji(Stork Nest))] 등에서 실행한 커뮤니티 작업에서 한발 물러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 커뮤니티 아트를 계속 신선하게 활성화하려는 관심은 지속하고 있으며 무언가 우회로를 통한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습니다. 개인적 작업과 지역, 커뮤니티에 밀착한 작업 사이에서 연결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장기적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혁종 인터뷰 질문

나 자신의 배양만이 목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작업에 있어서 '자기 소외를 면하자'는 입장이 더 올바른 해석이겠지요. 나 스스로 개인 작업과 지역 커뮤니티 활동, 저술 활동, 기획자로서의 작업을 한 데 모아서 본 일이 없었고, 지금이 그 적절한 때라고 생각해서 '인생의 갈림길에 꽂는 푯말'처럼 전시를 차렸습니다. 저는 현장 해설가를 자처하며 '[자아제국의 박람회(Pax Egoria Documenta)]의 접경지대이자 일부'인 관객을 매일 극진하게 맞이했습니다. 자아제국은 늘 타인과 타자(사물)와의 접점을 통해서 자신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갱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배양을 위해서는 관객이라는 타인의 관찰과 조언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관객도 무언가를 얻겠지요.

이제껏 해온 작업을 스스로 '실패'라고 규정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우회로를 통한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는 이혁종 작가. 무제한의 예산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를 묻자 돌아온 답. "신이여 이 잔을 내게서 치워주세요. 그러나 부득이 하다면 예산을 크게 써서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겠사옵나이다." 그러고는 "낙후한 제조업 기반의 지방 중소도시나 북한 등에서 새로운 커뮤니티 아트와 문화기획의 합성물인 '거버넌스 아트'를 구현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에게 예술가는 체제 속의 "룸펜(Lumpen) 기생자"이자 동시에 "무엇이든 접근할 수 있는 유연한 입지를 다지며 사회 다양화, 유연화와 혁신적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자기 몸을 혹사해 가며 시도한 자기 설치 작업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웃음거리로 소비되며 냉소와 멸시를 받았지만,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고, "적들의 화살을 모아 동풍을 이용해서 불화살로 갚아 큰 승리를 얻은 적벽대전의 제갈량처럼 언젠가 대중을 향해 돌려줄 날을 기다려 본다"며 웃는다. 여기서 이혁종 작가가 장난스럽게 말하는 '복수'란 예술을 통해 더 의미 있고 유익한 자극을 주는 소통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어쩌면 오랫동안 자기를 관리하면서 살아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예술의 주제가 될 겁니다. 재앙적 세계가 올지라도(올수록)." 소박한 표현에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진지한 모색에 부러 장난스러운 농담을 섞는다.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혁종 작가의 이카루스가 부디 그 유쾌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기를.

정규영 / 문화예술부기자


· 추천의 변

공공미술이란 시대에 따른 지배논리와 그 대항지식의 실천에 의하여 의미와 활동의 반경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수많은 작가와 기획자가 미술의 공공성을 통하여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찾으려 하였고, 그들의 열정에 화답하듯 다양한 지원과 정책 그리고 기획이 뒤미쳤다. 이혁종은 예술에 대한 회의로부터 삶의 본질을 찾아 헤매는 오이디푸스처럼 미술의 바깥을 에둘러 다니다가 예술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았다. 본인의 증언처럼 그 시도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재차 확인한 아픈 상처가 되었다. 물론 원하는 결과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도깨비 연방], [황새둥지]라는 성과도 나타났다.

이처럼 이혁종은 지속적으로 오늘날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좇으면서 예술가란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상태를 연구하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로 상정한다. 일련의 과정은 창작행위로 수렴되는데, 이렇게 ‘넝마철학조각가 리씨’라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가 탄생하였다. 앞으로 리씨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삶과 정치, 노동과 창작, 생활과 예술이 혼합된 형태가 어쩌면 가장 오래된 미래의 모습이란 사실을 그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인 정현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이혁종

이혁종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목숨을 건 도약_ 이카루스, 생태주의와 자본주의 사이를 날다]_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2010년 [마이너스 자본주의 숍]_브레인팩토리, 2011년 [넝마출학조각가 리씨와 그 후원자들의 21세기]_사이아트갤러리, 2018년 [자아제국의 박람회]_인천아트플랫폼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했으며, 지역 프로젝트 및 저술작업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혁종 - 미완의 꿈을 향해 이카루스, 날다 (헬로!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