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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나 - 상상과 현실 사이
작성자 철** 작성일 2018-11-09 조회수 599

상상과 현실 사이

 


 
우한나 작가

우한나 작가

인류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이야기'일 것이다. 구전된 이야기나 전설, 신화 등은 긴 역사 동안 우리와 함께했다. 그만큼 이야기를 만들고 듣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한 활동이다. 허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상하는 일은 더 나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힘든 현실에서 우리는 공상을 통해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때로는 이야기에서 느낀 재미로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이처럼 이야기는 어떤 구실을 함으로써 의미가 있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우한나 작가는 혼자 이동을 할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면을 상상하곤 했다. 시시할 수 있는 현실에 상상을 덧대어 현실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무언가에도 나름의 이야기를 붙여 특별한 무언가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상 속 물건들이 우한나 작가의 작품에서는 신선하게 보이는데, 이는 작가의 상상과 연출력이라는 새로운 필터 때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은 단순히 작가의 상상을 구현하는 데에서 그 역할을 끝내지 않고, 상상하는 일을 관객들에게도 권하며 관객들의 예술적 활동을 유도한다.

우한나, [단순한 의식(The Simple Ceremony)], 2017년

우한나, [단순한 의식(The Simple Ceremony)], 2017년mixed media, 600x600x300cm, installation view

· 의문과 답변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

우한나는 특정 상황을 배치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구성해낸다. 흔한 물건들로 특별한 시각적 상황을 연출하여 관객들이 나름의 이야기를 구성해내도록 일종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연출된 상황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본 관객들은 작가가 만든 무대 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야드비가의 식탁(The table for Yadwiga)]은 복수를 준비하는 누군가의 무기고에 대한 상상으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상상 안에서 복수를 준비하는 사람은 식탁을 무기고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집 안에서 공개적으로 보이는 식탁 위에 자연스럽게 무기를 올려놓는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를 상상하며 복수를 준비하는 주인공을 구체화한다. 의수, 가발, 뾰족하고 작은 나사못으로 만들어진 손 무기들, 탬버린, 파랗게 칠해진 파스타, 수직으로 박힌 커트러리(cutlery) 등을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주인공을 설정하고, 이 설정 상황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관객들은 마치, 특정 상황이 설정된 공간에 들어가 문제를 풀어야 탈출할 수 있는 방에 들어온 사람들처럼 각자의 방법으로 작품을 풀어낸다.

우한나, [야드비가의 식탁(The table for Yadwiga)], 2017년

우한나, [야드비가의 식탁(The table for Yadwiga)], 2017년steel, kettle, artificial hand, epoxy, wig, fork, knife, steel net, chain, clay, artificial leather, needle, 180x140x166cm, 그래픽 디자이너 맛깔손(Mat-kkal)과 협업

특히 [야드비가의 식탁(The table for Yadwiga)]을 보는 사람들은 그 식탁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가진다. 하지만 식탁의 주인공을 상상하는 일은 그 범위가 넓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복수하는 사람이 사용할 거 같은 도구들과는 거리가 있다. 도끼와 못처럼 흉기로 보이는 물건도 있지만, 탬버린이나 머리카락처럼 복수라는 상황과는 무관해 보이는 물건들도 있다.

[야드비가의 식탁(The table for Yadwiga)]을 보는 사람들의 상상 속 복수자의 모습은 전형적인 하나의 모습으로 모여지지 않는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무기들을 보며 우한나 작가가 가정한 복수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상상은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품을 보며 많은 궁금증과 가정을 품고, 또 각자의 궁금증에 답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다양하고, 새로운 우리만의 창작물을 만나게 된다.

[에이비 수트(A.B.Suit)] 역시 작가가 특정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상상을 통해 만든 작품이다. 이 작업은 미국의 어느 팝 가수를 위해 가상의 무대 의상을 제작한 것이다. 우한나 작가는 그 가수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공격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잊고 있던 새로운 멋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고 더 나아가 그녀를 위한 의상을 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에이비 수트(A.B.Suit)]는 의상이라고 하기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신발과 하의는 우리에게 친숙한 의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상의는 어떻게 착용하는지조차 상상이 어렵다. 이처럼 특이한 외양을 한 의상을 보며 관객들은 우한나 작가에게 영감을 줬던 미국의 어느 팝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게 된다. 의상은 노출이 과감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불필요한 것들이 생략되어 보인다. 이 의상은 특수한 무대 위 상황에도 어울리지만, 순발력이 필요한 전투 상황에도 어울려 보인다. 이 옷은 어떤 무대에 선보일 옷일까. 그 무대에 불리는 노래는 어떤 가사를 담고 있을까. 이 옷을 착상한 후의 모습은 어떨까. 다양한 질문들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다양한 답들이 떠오른다. 관객들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맞는 답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상황을 마음속에 그려보게 된다.

[야드비가의 식탁(The table for Yadwiga)]과 [에이비 수트(A.B.Suit)]는 그래픽 디자이너 맛깔손(Mat-kkal)과 협업을 통해 [더 리벤지, 잇츠 마 파워 허!(The Revenge, It's Ma Power, Huh!)]라는 타이틀의 전시에서 선보였으며, 작가의 공상에서 비롯된 시각적 환영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우한나, [더 리벤지, 잇츠 마 파워 허!(The Revenge, It's Ma Power, Huh!)], 2017년

우한나, [더 리벤지, 잇츠 마 파워 허!(The Revenge, It's Ma Power, Huh!)], 2017년mixed media, installation view, size variable, 그래픽 디자이너 맛깔손(Mat-kkal)과 협업

"현실을 픽션으로 만들고 누구나 픽션 속의 잘못된 운명을 거스르며 애쓰는 주인공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제 작업의 시작이 됩니다. 그게 저 자신이 될 때도 있고, 픽션 속 주인공으로 여겨질 만한 스쳐 지나간 타인이 되기도 하고, 어떤 무리의 군중을 역사 속 함대처럼 느끼며 비극의 시나리오를 대입해 봅니다. 이러한 익명의 군중, 길가에 쓰러져있는 물건들을 서사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라고 상상해 보는 거예요. 그들을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의 한 장면인 무대 위에 올려보며 작업의 모티브를 얻습니다."

우한나 작가는 인터뷰 중 위와 같은 말을 했다. 현실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물들로 특별한 상상을 하고, 이를 동기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업 과정은, 우한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감상 과정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 비현실적 오브제의 실용성

미술에서 '오브제'는 일상생활용품이나 자연물처럼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물건을 작품에 사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기존 용도와는 상관없이 물건을 작품에 등장시킴으로써 사물의 새로운 인상이나 의미를 부여한다.

우한나 작가의 작품에는 갖가지 사물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이 사물들은 본래의 역할과는 무관하게 작품 안에서 새로운 주인공이 된다. 다소 예술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날것의 물체를 수집하여 작품화하는 방식은 어색한 맞물림 속에서 신선한 자극을 준다.

우한나, [뎀플레쉬 19:55(DEM flash 19:55)], 2017년

우한나, [뎀플레쉬 19:55(DEM flash 19:55)], 2017년digital image, A4

우한나, [뎀플레쉬 05:29(DEM flash 05:29)], 2017년

우한나, [뎀플레쉬 05:29(DEM flash 05:29)], 2017년digital image, A4

우한나, [뎀플레쉬 23:59(DEM flash 23:59)], 2017년

우한나, [뎀플레쉬 23:59(DEM flash 23:59)], 2017년digital image, A4

 
 

[뎀플레쉬(D.E.M Flash)]는 작가의 미완성 상태의 작은 오브제 작업들을 촬영한 기록사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물체들은 우한나 작가가 토템이라 여기며 만든 것이다. [뎀플레쉬(D.E.M Flash)]는, 작지만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가진 이 오브제 작업들이 빛에 반사되는 순간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작품에는 커튼과 줄자, 드라이버와 털실 등 친숙한 물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물체들을 알아보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는 물체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물들은 각자 쓰임에 어울리는 대상이 있다. 줄자의 경우 사람의 인체가 어울리고, 드라이버는 못이나 공구와 어울린다. 하지만 [뎀플레쉬(D.E.M Flash)]에서 줄자는 사람의 인체 치수를 재는 도구가 아닌 커튼을 묶는 끈으로, 드라이버는 공구가 아닌 고무 점토에 얽힌 구조물로 쓰인다. 이처럼 기존 물체들이 다르게 쓰이는 상황 속에서 익숙한 물체들은 평소의 의미에서 벗어나 낯선 오브제가 된다. [뎀플레쉬(D.E.M Flash)]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줄자와 커튼, 드라이버와 털실 등은 토템이 되기도 하고, 초자연적인 상황의 연출을 돕는 시각적 오브제로도 보인다.

플래시를 터뜨려 오브제 작업을 찍은 사진에, 후반 작업을 더 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은 마치 초자연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결과물은 다소 조악해 보이는 연출 사진처럼 보이는데, 이는 B급 가짜 뉴스의 보도사진을 연상시킨다. 한 눈으로 보아도 가짜 같은 모습을 만들고, 여기에 사진이 찍힌 시각을 표기함으로써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모순적인 연출은 우한나 작가가 가지는 허구의 상상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가진다는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한나 작가에게 상상과 공상은 현실에 기록될 수 없는 허상의 것이 아니라, 예술적 작업을 이끄는 강력한 동기로 작동하고, 어느 현실 시점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는 실존이 된다.


· 현실을 풍부하게 관찰하기

무언가를 상상하거나 막연히 마음속에 그려보는 활동을 의미하는 단어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상상', '망상', '공상'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 중 '공상'이라는 말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실현될 가능성이 낮은 무언가를 그려보는 일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이 작고,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이라고 해도 그 생각이 현실에 영향력이 없을까.

우한나는 본인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삶을 버텨내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한나의 작품은 작가의 시각으로 조금 더 집중해서 본 것들에서 출발하는데, 관객들 역시 이러한 결과물들을 보고 일상생활에서 평소와는 다른 생생함을 느끼길 우한나 작가는 희망한다. 어떤 대상을 지켜보면서 가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 대상에 대한 애착과 남다른 시선을 전제로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흔히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더욱 빛나게 한다. 우한나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활동을 강화하는 훈련법처럼 작용하며, 전시장 밖에서도 그 여운을 지속한다.

강승민 / 칼럼니스트


· 추천의변

우한나의 작업은 군중 속에서 개인을 드러내는 방식을 탐색한다. 특히 도시의 일상에 묻혀있는 개인의 다름에 대해, 그들의 다른 목소리와 그 발화의 메세지를 조형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있다. 어둠이 깔린 을지로의 풍경 위에 낮 동안 가라앉아 있었던 시선들이 떠오르고 서로 교차하는 상황을 겹쳐 놓아 도시에서 개인들이 서로 마주하는 방식을 연출하는가 하면, 휘두를 수 있는 막대 모양의 사물에 캐릭터를 대입하여 각기 다른 상황과 성격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며 발언하는 퍼레이드를 연출하기도 한다.

천, 클레이 등의 소재를 미세하게 조합하고 붙여 만든 개별 사물들로 하나의 집합, 하나의 장면을 구축하는 그의 작업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사물의 의미를 비틀어 그 사물이 사용되어 온 방식과 사물에 투영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꼬집는다. 사물의 기호를 해체, 조합하고 새롭게 상상하며 만들어지는 우한나의 작업은 수동적이거나 정지하는 상태를 넘어 관습과 규칙에 저항하는 발칙하고 경쾌한 운동을 만든다.

추천인 김해주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우한나

우한나 작가는 도시인들의 이야기에 대해 몰두해 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입체를 기본으로 영상이나 음악이 함께 가미하는 설치미술을 한다. 2016년 첫 개인전 [CITY UNITS]를 을지로에 위치한 작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열었으며, 2018년 두 번째 개인전 [SWINGING]을 열었다. 2017년 [Lotus Land]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x2 part1_The revenge, It's ma power, Huh!] 시청각에서 단체전을 했으며, 최초예술지원(2018), 청년예술단_팀 샌드페이퍼스(2017)으로 선정되어 서울문화재단의 기금을 수혜했다.(http://woohannah.com)

[네이버 지식백과] 우한나 - 상상과 현실 사이 (헬로!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