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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 - 캔버스 밖으로 확장하는 회화
작성자 철** 작성일 2018-10-29 조회수 202

캔버스 밖으로 확장하는 회화

 

 

최수정 작가

최수정 작가

Meta- 라는 접두어가 어떤 단어에 붙으면, 그 단어는 본래 가진 의미에서 '상태의 변화' 또는 '무언가를 넘어선'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다. 메타 회화적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회화를 넘어선, 회화 그 이상의 무언가. 그것이 메타 회화다. 최수정 작가의 작업 세계 또한 메타 회화로 설명될 수 있다. 캔버스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 회화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

그녀의 작품은 회화 하나로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이 지닌 조건과 작품 설치를 통한 서사의 맥락에 따라서 또 다른 이야기가 파생될 수도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종국에는 회화라는 매체가 가진 본성은 물론 내재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우리가 매체로서 회화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고유한 영역을 넘어서며 회화로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하고 다양한 시도로 저만의 이야기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최수정 작가. 편견도 두려움도 없는 그녀의 과감한 실험실로 함께 들어가 보자.


· 촘촘히 짜이고 꼼꼼히 세워지는 회화라는 건축물

최수정 작가의 작업은 평면적인 회화임에도 하나의 건축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그녀의 작업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먼저 캔버스에 담긴 전체 구조를 보면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가 그것을 구성하는 세밀한 이미지들이 오밀조밀하게 구성돼 있다. 파편화된 다양한 이미지들이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는 형태다. 몇 겹의 차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켜켜이 쌓여 독특한 심상을 만들어낸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캔버스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실로 자수를 놓아 연결하기도 하고, 그림을 거는 것이 아닌 설치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화폭 안에서 조립된 이미지들이 실재하는 공간과 만나면서 관계를 맺고 하나의 튼튼한, 그녀만의 회화 건축물로 완성되는 것.

자화상과도 같은 [호모센티멘탈리스(homosentimentalis)]만해도 그렇다. 파편화된 컬러풀한 이미지들 사이로 캔버스를 뚫고 나온 실이 연결고리를 만들고, 두 개의 눈 안으로 뻗어 나오는 빛은 그 이면의 아득한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사이사이로 스며든 빛에 반사된 표면 이미지는 텅 빈 곳에서 이미지가 유영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최수정, [호모센티멘탈리스+무간 설치(Homosentimentalis+interminable nausea installation)], 2017년

최수정, [호모센티멘탈리스+무간 설치(Homosentimentalis+interminable nausea installation)], 2017년painting installation, 가변크기

"단순하게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 만화>와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라는 작품을 섞어놓은 느낌을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주 만화>에서는 다양한 시공간이 계속 뒤덮이면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흐르거든요. 그리고 <질투>라는 작품에서는 드러나는 표면만 따라가면서 집요하게 심리를 파고들어요. 이미지가 주는 서사적인 느낌은 <우주 만화>, 표면의 전개는 <질투>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요. 그런 식의 겹침이 표면적인 매체의 심상을 구조적이고 입체감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페인팅을 이루는 요소들을 생각했을 때 물감이나 붓질 같은 물리적 속성들과 회화적 공간의 레이어라든가 하는 것 외에도 이를 둘러싼 조건들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보는 편이다. 빛 같은 것. 공간에 명암을 줄 때 실제 거리가 같음에도 빛에 의해서 거리감이 깊어지고 아득해지고 환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며 때론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면서 그 이미지를 더 도드라지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그려지는 빛이 아니라 외부에서 닿는 빛도 중요하죠. 빛을 포함한 공간도 비슷해요. 저는 캔버스 표면 자체의 직물에서부터 확장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요소들이 페인팅의 표면적인 이미지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다양한 서사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최수정, [그림동굴그림 설치(Paintingcavepainting installation )], 2017년

최수정, [그림동굴그림 설치(Paintingcavepainting installation )], 2017년painting installation, 가변크기

큰 그림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이고 어두운 느낌에 자잘한 이미지들의 명랑한 분위기와 선연한 색감이 더해지며 빚어내는 대비, 공간과 표면이 만들어내는 대비 등이 종합돼 최수정의 회화 건축물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반드시 정해진 틀에 따라 조립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레고처럼 회화라는 견고한 블록을 그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활용해 자신의 무의식적인 세계를 자유롭게 구축해간다.

"페인팅이라는 매체는 보통 프레임 안에서 끝나는 구조적 이야기를 통해 말을 걸어요. 그런데 그 프레임 밖으로 나오고 싶은 충동들도 동시에 있거든요. 그래서 그 자체로 공간이 되는 캔버스와 그 캔버스가 놓일 공간까지 회화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이중사고_통로(Double Think_Passage)]라는 작품의 경우 설치할 때 두 개의 캔버스를 마치 문처럼 걸었어요. 그리고 살짝 문이 열린 것처럼 틈을 주고 그 사이로 무언가가 보이게 뒤편에 다른 작품을 설치했죠.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상황으로 캔버스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어요. 물론 보시는 분들의 생각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따라서 더 많은 이야기가 파생될 수도 있겠죠."

최수정, [이중사고_통로(Doublethink_passage)], 2017년

최수정, [이중사고_통로(Doublethink_passage)], 2017년painting installation, 각 150 x 300cm


· 양극의 거리를 가늠해가는 과정

또 하나 그녀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회화라는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뿐만이 아니다. 그런 시도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거리'가 관객의 사고를 더욱 자극한다는 것이다. 본래 극단적인 것에 끌리는 편이기도 하다는 작가는 삶과 죽음이든, 나와 또 다른 내면의 자아이든 대상과 대상 사이의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간극을 그림에 담아낸다.

최수정, [無間_interminable Nausea 설치(Interminable Nausea installation )], 2015년

최수정, [無間_interminable Nausea 설치(Interminable Nausea installation )], 2015년painting installation, 150 x 450cm

"존재 자체의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이 있잖아요. 나랑 다른데 친해지고 싶기도 한 마음이 생기죠. 따뜻하고 가까운 관계도 있지만 뜨겁고 고통스러운 관계도 있거든요. 대상과 대상 사이에는 그런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사람 대 사람일 필요는 없죠. '무간'이라는 개인전을 할 때 설치한 작품 중에 [달콤한 나의 집(Sweet my home)]이 있는데요. 싱싱한 꽃을 뜨거운 조명 아래 뒀어요. 불 자체도 온화하고 그 빛 아래에서 꽃 색깔도 무척 화사했고 생동감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조명의 뜨거움에 꽃이 말라 죽어요. 따뜻하고도 뜨거움, 그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 거예요. 가까워지고 싶어도 가까워져서는 안 되는 혹은 가까워질 수 없는 그런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요."

최수정, [달콤한 나의집_곧 갈게(Sweet my home)], 2014년

최수정, [달콤한 나의집_곧 갈게(Sweet my home)], 2014년mixed media, 가변크기

<이중사고_호모센티멘탈리스> 전시에서 역시 간격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중사고란 두 개의 상반된 견해를 동시에 가지면서 이를 모두 수용하는 사고방식을 뜻하는데 이 맥락에 맞춰 전시를 공간을 나눠 구성했다. 호모센티멘탈리스 역시 최수정 작가가 '대상과 대상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예다.

최수정, [호모센티멘탈리스(Homosentimentalis)], 2017년

최수정, [호모센티멘탈리스(Homosentimentalis)], 2017년acrylic on canvas and embroidery, 150 x 150cm

"호모센티멘탈리스는 감정을 가치로 정립한 사람이에요. 복잡하지만 고독하고 할 말은 많은데 말은 할 수 없는, 생각은 많지만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침묵의 얼굴이죠. 얼굴, 해골 같은 이미지가 회화를 더욱 가면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죠. 어두운 면은 다양한 무의식 속의 이미지들로 구성되고 캔버스 앞뒤를 실이 넘나들면서 서로를 엮기도 해요. 그렇게 전체적으로 입체감을 주고 거리를 만들어내죠. 회화가 표면 위의 이미지로 머물기보다는 물리적인 오브제로 확장돼 관객과 비슷한 에너지를 유지한 채 거리를 두고 마주하길 바랐어요."

· 연극적 회화

최수정의 작업에서는 연극적 회화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녀는 페인팅을 일종의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표면 위의 이미지가 공간을 만나 그 공간을 다른 느낌으로 채운다는 것에서 공간을 덮어씌우는 가면 같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표면이 공간으로 나와 공간의 심상을 만드는 상황, 공간에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질 때 표면에서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상당히 연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화라는 가면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연극적 상황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최수정, [이중사고_homosentimentalis의 방 설치( Doublethink_homosentimentalis' room)], 2017년

최수정, [이중사고_homosentimentalis의 방 설치( Doublethink_homosentimentalis' room)], 2017년mixed media installation, 가변크기

"전시에서 소리도 많이 들어가요. 그 소리는 작품과 되게 밀접하게 붙어있어요. [호모센탈리스의 방(Homosentimentalis room)] 같은 설치의 경우, 폐쇄적인 얘만의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메가폰의 소리가 나오는 부분을 벽으로 향하게 붙여서 그 소리가 작품이 설치된 공간으로 퍼지지 않고 벽을 타고 윙윙거리게 했죠. 마치 시커먼 마음속에서 웅얼거리듯이 소리를 집어삼킨 거죠. 마치 호모센탈리스가 말하지 못하고 웅얼거리는 것처럼요. 그 밖에 <확산희곡> 전시에서는 그림들을 배우처럼 무대 위에 걸었고, 그래서 이를 보러 무대 위에 올라간 관객이 배우가 되기도 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출했어요.

이렇듯 페인팅은 페인팅 안에서 이야기가 끝날 수도 있지만, 전시라는 맥락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역할과 생각이 있잖아요? 그런 우리가 다양한 타인을 만나면서 서사가 발생하듯이 페인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무수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가능성, 그것이 연극적 회화로서 회화라는 매체의 폭을 넓혀준다고 생각해요."

최수정, [확산희곡_돌의 노래 전시전경(Extensive Drama_A Song of Stone)], 2013년

최수정, [확산희곡_돌의 노래 전시전경(Extensive Drama_A Song of Stone)], 2013년mixed media, 전시전경


· 회화 속을 산책하며 관객이 만들어내야 할 서사

최수정의 회화는 관객이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새, 해골, 애니메이션 캐릭터, 휴양지 등 파편화돼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유도한다. 흐름에 따라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마치 위아래 혹은 옆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우주를 산책하는 것 같다.

"자잘한 이미지들은 기본적으로 현실 속 이미지들 중 제 무의식에 남아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각각에 의미들은 있어요.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요. 가령 새는 경계 없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동물이잖아요. 새의 눈을 보면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히스테리한 느낌이 있어요. 때론 환각적인 느낌을 받기도 하죠. 그래서 가면을 볼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짜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서 회화를 가면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을 가져요.

그렇지만 제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관객이 작품과의 사이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스스로 느끼고 그 안에서 유영하며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렇게 다양한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제가 바라는 바예요."

최수정, [위아래양옆(Bottom to top, left to right and viceversa)], 2017년

최수정, [위아래양옆(Bottom to top, left to right and viceversa)], 2017년acrylic on canvas and embroidery, 180 x 360cm

최수정, [불, 얼음 그리고 침묵 (Ice, Fire and Silence)], 2018년

최수정, [불, 얼음 그리고 침묵 (Ice, Fire and Silence)], 2018년mixed media, 가변크기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사진: 김상태

회화 표면과 관객 사이의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거리, 그 사이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가늠하고 조율하는 그녀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매체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회화의 이면을 탐구해가는 그녀야말로 회화 실험가가 아닐까? 거듭되는 실험을 통해 발산하는 그녀의 에너지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발현이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김희정 문화 칼럼니스트


· 추천의 변

최수정은 회화의 세계를 표면과 공간, 감정의 긴밀한 관계로부터 탐구해 왔다. 작가는 회화와 설치를 공감각적으로 배치한 전시 방식을 통해, 표면 아래에 차단된 감정이 공간에 스미고 관람객에게까지 가닿도록 구성한다. 그의 전시는 여타의 회화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제안되는데, 회화와 더불어 빛, 사운드, 오브제, 텍스트가 상호적으로 관계하는 하나의 연극 무대로 구성된다. 이를 작가는 “연극적 회화, 회화적 연극”이라는 주제로 파고들며, 메타-회화적 실험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작가의 회화에서는 전통적인 회화와 같이 시선을 포획하는 중심적 구조나 서사를 읽을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그림의 대상을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고 산발적인 방식으로 그려내어, 의미나 상징에 부여된 무게를 소거 혹은 무의미하게 와해시켜 버린다. 회화를 규정하고 형식화하려는 하나의 지배적 시선을 교란시키는 동시에 완고한 자아의 지배적 논리를 해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최수정의 이 쓸쓸하면서도 소란스러운 회화의 존재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다. 사랑에 빠진 자신의 위대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우스꽝스러워지기를 자청했던 것 마냥.

추천인 심소미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 위원


· 작가소개

최수정

홍익대학교 회화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과 영국 글라스고 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회화를 기반으로 설치나 오브제와 같은 매체를 결합해 회화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04년 개인전 <무엇>을 시작으로 <확산희곡_돌의 노래>, <무간()>, <이중사고: 호모센티멘탈리스> 등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MFA NOW international painting competition 수상 경력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수정 - 캔버스 밖으로 확장하는 회화 (헬로!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