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철학·상담학과
본문바로가기
ender
커뮤니티
자료실

자료실

가공할 헛소리, 그리고 오늘의 미술
작성자 철** 작성일 2018-11-12 조회수 299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예술은 감각할 수 있는 대상의 종류와 범위, 그리고 세계의 영역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층위로 확장했고, 현실의 한계 안에서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감각을 제시해왔다. 특히,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 초험적 인식에 관한 관심은 작가 개개인의 심리와 주관을 반영한 독자적인 내러티브와 결합하면서 현실의 이면을 더욱 날카롭고 흥미진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포스트 인터넷 시대 예술의 한 형태를 짚어볼 수 있는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2010년 이후 국내에서 열린 기획전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두 달간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가공할 헛소리(monstrous moonshine)]도 이와 같은 맥락 안에서 바라볼 수 있다.

 

먼저, 헬로!아티스트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가공할 헛소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시각 언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실재의 감각이 전시라는 일시적인 조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고자 마련된 전시다. 전시에 참여한 김동희, 김실비, 윤지영 세 명의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이미지, 믿음, 이야기, 경험이 현대사회 안에서 어떻게 헛소리, 헛것, 허상으로 가공되는지 주목했다.

헬로!아티스트를 통해 소개된 예술가 중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1980-1990년대 생 작가들 일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게임 등 기술을 접하고 성장해 이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주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인터넷과 가상현실을 활용해 현실 감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확장하는 한편, 실재와 허구를 뒤섞은 가공된 내러티브로 현실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가공할 헛소리]를 동시대 한국 미술과 전시의 역사와 맥락에서 짚어보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이 같은 성향의 작업을 선보인 예술가와 주요 국내 전시를 이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웹사이트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웹사이트


· 무엇을 믿을 것인가? 2010년대 주요 전시를 중심으로

[미디어시티서울 2014] (2018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로 변경)는 아시아를 화두로 삼아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주제로 2014년 개최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소개된 작품 중에는 귀신이나 간첩에 대한 괴담, 영혼, 전통과 무속 등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의 기록적 성격을 띤 작업도 있었지만, 일부는 초월적인 감각을 어떻게 시각예술로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 같은 경향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영매’, ‘아시아 고딕’, ‘냉전극장’, ‘그녀의 시간’, ‘다큐멘터리 실험실’의 주제로 소개된 작업에서 더 두드러져, 괴담이나 미신적인 구술이 어떻게 전달되고 해석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미디어시티서울 2016 -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미디어시티서울 2016 -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2년 후 열린 [미디어시티서울 2016]은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를 제목으로 전 세계가 직면한 현재와 맞닥뜨릴 미래를 담아내는 기획을 선보였다. 이 전시가 소개한 여러 작품 중 특히 상반된 목소리가 부딪히는 도심 광장 같은 공공장소, 사이버스페이스나 소셜 미디어, 그리고 가상현실을 다룬 작품은 포스트 인터넷 시대를 관통하는 동시대 미술을 생생히 전달했다. 그 가운데 차재민, 함양아, 파트타임스위트, 김실비, 김희천, 김익현, 장석준, 박제성, 이미래 등이 감각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디어를 활용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오가는 한편 주제 전달에 있어서 나름의 희극적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흥미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유령팔](2018) 전시 도록 표지

[유령팔](2018) 전시 도록 표지

아울러 2018년 여름 북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 [유령팔] 은 가상공간이 현실과 연결되는 방식과 맥락에 집중한 전시로, 강정석, 김정태, 람한, 박아람, 압축과 팽창(김주원, 안초롱), 그리고 [가공할 헛소리]에서도 소개한 김동희가 참여했다.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여전히 사지의 존재와 고통을 느끼는 심리적 증상인 ‘환각 사지 증후군’을 모티프로 삼은 전시 제목은 현실의 한계에 봉착한 예술가가 가상세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동시대 예술가의 작업을 중심으로

앞서 살펴본 주요 전시에 참여했거나, 개별적으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 통념을 비트는 작업을 진행해 온 예술가들 중 헬로!아티스트에 소개된 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임영주는 2015년 전후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믿어온 미신이나 통념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며 한 집단이나 영역이 공유하는 은어를 다루었다. 과학에 근거를 두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기후와 바람에 대한 기상청의 예보, ‘돌’을 둘러싼 다양한 미신과 믿음, 이를 다루는 동호회 등을 조사하며, 미디어가 노출한 정보나 소문을 암묵적으로 믿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상에 집중했다. 회화와 텍스트, 영상, 설치를 아우르는 몇 차례의 개인전은 동명의 아티스트북으로 출간되었다.

김아영은 기록으로 남았지만 주목 받지 못한 역사를 끄집어내어 조사하고 영상과 텍스트, 사운드와 퍼포먼스로 재구성해왔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리서치를 진행하기도 한다. 2018년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에서 소개한 [다공성 계곡]은 동시대의 이주를 주제로 다룬 작업이다. 인간의 이동과 데이터 전송을 비물질인 광석의 자아에 비유하여 브렉시트와 이민정책, 더 나아가 유럽과 전 지구적 난민문제까지 연상케 한다. 기존 사료에 접근해 연구하고 새로운 허구인 ‘사변 소설적 서술’을 활용하는 그의 작업은 블랙코미디의 면모도 지니며, 관객이 새로운 사유의 영역을 확장하도록 자극한다.


· 실재보다 더 실제 같은

2018년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최윤은 시간을 압축하며 근현대를 거쳐온 우리나라의 특성에 주목한다. 다양한 목적으로 생산되고 분포된 통속적인 이미지나 대상을 조합하거나 실제 대상보다 더 실제 같은 인공물을 만들어왔다. 현실이 가상화되지만 결국 이를 현실로 인식하고 마는 사람들의 관념을 건드리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러한 규범을 뒤흔든다.

김웅현은 작업 주제와 맞닿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알 수 없는 내러티브로 재가공한다. 그의 작업 대부분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와 굿즈로 구성되는데, 모두 연속성을 띠고 서로 연동된다. 김희천은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의 틈과 괴리감을 포착하고 두 세계를 뒤섞어 영상으로 제작한다. 비디오게임과 디지털 매핑, 최근에는 의료 분야의 신기술이 발전하며 뒤따르는 인간과 기계의 인지 문제, 오류와 버퍼링을 직관적으로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김보람은 3차원의 가상공간을 표방하는 영상과 그래픽이 결국 2차원의 화면에 상영될 때 생기는 간극에 집중한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페이스와 새로운 장치를 고안하는데, 관객은 태블릿과 헤드폰을 통해 영상 속 실제 장소와 인물의 퍼포먼스를 동시에 경험하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서 새로운 감각을 획득하게 된다.


· 경험과 인식의 확장을 위한 부단한 시도

예술가들은 작업의 주제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조사, 연구하며, 그것을 시각화하는 방법과 그에 따른 매체 실험을 부단히 시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과정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작품의 형식이 되거나, 작품 해석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간극과 틈, 우리를 둘러싼 소문과 믿음, 미디어를 통한 경험의 정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새로운 감각,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 발전 등이 포스트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파고드는 탐험의 대상이자 작업의 주제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가공할 헛소리]는 이렇게 최근 몇 년간 예술가들의 작업이 교차되는 지점을 짚고 최근 미술의 경향을 소개하는 전시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경민 / 미팅룸 작가 및 시장연구팀 디렉터
문헌조사 지가은 / 미팅룸 아트아카이브 연구팀 디렉터

단행본

아티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