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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학의 문학(자), 문학 속의 제국대학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9-20 조회수 286

소세키, ‘나는 제국대학 출신이로소이다’

도쿄제대 불문과 출신의 다자이 오사무(), 국문과 출신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제국대학이 배출한 여러 유명 작가들이 있지만, 제국대학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작가는 역시나 나쓰메 소세키()를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소세키의 소설은 거의 모두가 제국대학 재학생이나 졸업생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소세키는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문부성 장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유학했다. 유학하는 동안 유럽 근대 문명에 압도되어 그것을 흡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소세키는 점차 서구 문명을 무조건 흡수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으며, 개인이나 국가 모두 주체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자기본위’의 사상을 형성하게 된다.

서구 문명을 흡수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에 대한 회의 사이에서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다 귀국한 소세키는 1고, 도쿄제국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며 힘겹게 생활을 꾸려갔다. 신경쇠약을 치유할 겸 쓴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성공한 이후 소세키는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 전속의 전업작가가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제국대학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메이지 일본의 빛과 어둠을 함께 그리고 있다. 첫 장편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메이지 사회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한다. 이 소설에서 메이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들인 구샤미와 그 친구 메이테이, 간게쓰 등은 모두 제국대학 출신의 학사들이다.

두 번째 장편 《도련님》에서 소세키는 서양의 근대화를 흉내 내기에 급급한 일본 근대화의 문제점을 발랄한 필치로 그려낸다. 소세키는 당대의 조류에 둔감한 우직한 샌님인 ‘나’(도련님)와 수학교사 ‘산미치광이’ 대 제국대학 문학사 출신인 교감 ‘빨간 셔츠’의 대립을 통해 이러한 주제의식을 구현하고 있다.

‘빨간 셔츠’는 동료교사의 부유한 약혼녀를 가로채고, 게이샤와 방탕하게 밀회하면서 도덕적 교육자연하는 교활하고 위선적인 인물이다. 말끝마다 서양의 학설과 잡지에서 읽은 구절들을 내세우지만, 정작 자신의 사상과 교육가적 소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학생들을 이용한 교묘한 술책을 통해 자신에게 적대하는 ‘나’와 ‘산미치광이’를 쫓아낸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이 소설은 ‘나’와 ‘산미치광이’가 위선적인 교감 ‘빨간 셔츠’를 징치하고 학교를 그만둔 후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그 결말이 통쾌한 느낌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는 ‘빨간 셔츠’를 잠시 망신을 주긴 했지만 결국 세상은 근대화를 내세운 경박한 ‘빨간 셔츠’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씁쓸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도련님》에 이어지는 이른바 전기 3부작인 《산시로》, 《그 후》, 《문》도 제국대학의 재학생, 졸업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일종의 연작소설이다. 《산시로》는 5고를 거쳐 상경한 제국대학생 산시로의 우정과 사랑을 다루면서 당대 일본 지식계의 풍경도 아우르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그 후》, 《문》 등은 주인공 이름은 다르지만, 산시로의 졸업 이후를 그리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마음》도 제국대학 출신의 ‘선생님’이 자신의 청년 시절의 비밀과 고뇌를 제국대학의 한 세대 후배인 ‘나’에게 편지 형식의 유서를 통해 털어놓고 있는 소설이다. 이외에도 자본과 문학의 문제를 인상 깊게 묘사한 《태풍》이나 이광수의 《무정》에도 영향을 끼친 《우미인초》 등 소세키 소설 거의 전편에서 제국대학(생)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제국대학이 배출한 작가가 소세키 등 일본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제국대학을 중요한 소재와 장치로 삼은 작품을 남긴 작가가 소세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적지 않은 수의 식민지 청년들이 최고학부인 제국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었다. 그들 각각의 사연을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그 면면만큼은 특별히 언급해 두고 싶다.

수필가 이양하(도쿄, 영문학), 소설가 김사량(도쿄, 독문학), 시인 권환(교토, 독문학), 소설가 김석범(교토, 미학), 비평가 김환태(규슈, 영문학), 시인 김기림(도호쿠, 영문학), 소설가 유진오(경성, 법학)와 소설가 이효석(경성, 영문학), 비평가 최재서(경성, 영문학) 등이 제국대학 출신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줄기를 두텁게 하는 데 기여했다.

졸업을 못했기에 위의 명단에 포함시키진 않았지만, 식민지 문학과 제국대학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뜻밖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춘원 이광수. 이제부터 그와 제국대학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이광수, 경성제국대학 1호 학생

춘원 이광수는 〈문학이란 하오〉(1916), 《무정》(1917) 등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이다. 상해로 망명했던 민족의 지사에서 친일지식인으로 전락한 행적 때문에 비판받지만 그가 한국 근대문학을 만든 세대들의 맨 첫자리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광수가 첫자리를 꿰찬 것이 근대문학 분야만은 아니었다.

이광수는 경성제국대학의 첫 번째 학생이었다. 지난 2012년 최종고 교수가 발굴한 경성제대 학적부에 따르면, 이광수는 1926년 6월에 경성제대 문학과에 입학했다. 와세다대학 3년을 수료한 ‘선과생’의 자격이었다. 아래 학적부 맨 하단에 요즘의 학번에 해당하는 ‘재학번호 1 이광수’가 보인다.1)

춘원 이광수

춘원 이광수

1926년 경성제대는 동숭동(대학로)에 본과를 열었다. 1924년 예과 개설 2년만이다. 경성제대 본과는 문과 2개 반 73명, 이과 2개 반 80명 등 총 157명을 선발했다. 그 중 문학과에 입학한 이광수가 일본인과 조선인을 통틀어 재학번호 1번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광수의 나이 34세 때였다.

예과를 졸업한 본과생도 아니고 방계입학인 ‘선과생’에게 왜 1번 학번이 부여되었는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일본어 음계를 따른 성명 순서로도 ‘이’씨는 1번이 아니고, 가야마 미쓰로()로 창씨개명하기도 훨씬 전이다. 혹시 나이 순이었을까? 여하튼 위의 학적부에 따르면, 1번 학생 이광수는 폐병으로 4차례 휴학했고, 1930년 1월 제적되었다.

영문과의 사토 기요시() 교수는 문단의 중진인 춘원이 굳이 경성제대에 들어온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 이광수는 와세다대학 유학시절 철학을 전공했지만 경성제대에서 ‘영문학을 더 공부해 보고 싶다’고 답했다 한다. 어쩌면, 도쿄 유학시절 열심히 읽었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선망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경성제대에 입학한 이광수는 1929년의 조선문학 수업시간에 《격몽요결》과 《구운몽》을 수업 교재로 쓰는 것을 목격하고 이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2) 한글문학만이 조선문학이며, 외국문학도 한글로 번역되면 조선문학이라고 생각했던 이광수에게 한문으로 된 왕조시대의 초급교재인 《격몽요결》로 하는 제국대학 문학 강의란 가소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광수는 전체적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1932)은 그 단서를 제공한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농촌 출신 변호사 허숭과 서울의 대부호인 윤참판의 딸 정선 사이의 애정 갈등이라는 표면적 서사 속에 농촌 운동과 민족계몽이라는 이광수 특유의 주제의식으로 채워진 소설이다.

이광수는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선악 대립을 통해 그 출신 학교도 민족/반민족적 형상으로 대립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보성전문학교 출신으로 고등문관시험을 통과하고 변호사로 성공한 허숭은 가정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과감히 버리고 고향인 살여울로 돌아가 농민과 민족을 위한 헌신적 삶을 사는 인물로 설정된다.

이러한 진실한 민족적 지식인인 허숭을 질투하고, 그 아내인 정선을 꼬드겨 불륜을 저지르는 양반가의 자제인 김갑진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이다. 소설 말미에 개심하긴 하지만, 김갑진은 부박하고 허영심 많은 인물로 공부에 매진하지 않아 고등문관시험에도 낙방하는 부랑아로 묘사된다. 이처럼 《흙》에서는 보성전문학교(민족)와 경성제국대학(반민족)이라는 대립구도가 작동하고 있다.

《흙》 연재 무렵 의식 있는 경성제대 학생들이 ‘경성제대 반제동맹’ 사건으로 재판 중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립은 악의적이다. 보성전문학교 교주 김성수의 장학금으로 유학하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그 지면에 《흙》을 연재했던 이광수, 또한 경성제대에서는 제적된 이광수의 개인적 감정이 《흙》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염상섭과 교토(제국대학)

여러 측면에서 이광수와 비교되는 위치에 있는 염상섭의 소설 속에서도 제국대학 이야기가 등장한다. 염상섭은 제국대학에 유학한 경험은 없지만, 적지 않은 소설에서 제국대학을 소재로 삼고 있다. 조선인 부호 아버지와 일본인 첩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소재로 한 〈남충서〉(1927)는 그 출발에 해당한다.

염상섭은 이른 시기부터 혼혈 문제를 다룬 아주 드문 작가였다. 그는 《사랑과 죄》의 유진, 〈해방의 아들〉의 마쓰다 등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혼혈아들을 통해서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그 혼혈아들의 원형에 해당하는 남충서는 제국대학 출신으로 반체제 단체인 ‘PP단’의 수장으로 제시된다.

《광분》(1929)에서는 제국대학(생)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미국 유학 출신의 식민지 부르주아 민병천 일가 내에서 일어나는 추문과 간통, 살인 사건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염상섭은 여기에 당대 사회주의(아나키즘) 연극 운동과 광주 학생의거를 알리는 전단 배포 사건 등을 결합시키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허구 속에 다시 허구의 인물이 등장한다. 자산가 민병천의 딸인 민경옥과 사상이 ‘붉은’ 연극단원 주정방은 연인 사이이다. 자산가의 딸과 가난한 연극배우와의 연애가 인정받긴 어려웠다. 민경옥은 부모로부터 결혼을 압박받자 교토제대 의학부 졸업반인 주정수라는 가상의 인물과 연애한다고 둘러댄다. 주정수의 학벌은 결혼 압박을 사라지게 했다.

이 소설에는 또 다른 의대생 이진태가 등장한다. 침착하고 과묵한 경성제대 의대생 이진태는 경성제대 동창회 간부이자 전()조선학생친목회의 제국대학동창회 대표로 참여하여 광주학생의거 사건을 알리는 전단지 사건의 주모자가 된다. 이광수와는 달리, 염상섭은 ‘광분’한 식민지 자본주의의 타락에 대항하는 윤리적 모색을 경성제대생을 통해 제시했다.

염상섭의 대표작인 《삼대》도 제국대학의 흔적이 담긴 소설이다. 교토의 3고 학생인 조덕기는 나서서 싸우지는 못하지만 운동에 나선 동족들을 보살피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토제국대학 법학부에 진학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경성제대에서 상과를 전공하기를 권한다. 이러한 권유에 조덕기는 ‘경제과라면 좋지만 상과는 싫다’고 답하고 있다.

염상섭의 《삼대》 초판본

염상섭의 《삼대》 초판본

이들 부자 사이의 문답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조덕기가 말하는 ‘경제과’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가와카미 하지메()가 가르치고 있던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자본가의 아들에게 경영학을 전공하고 가업을 이으라는 권유에 경제학과에 가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염상섭이 《삼대》에서 교토라는 공간을 활용한 데에는 그 자신의 이력과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다. 그의 큰형 염창섭은 교토에서 일본 육군 대위로 근무했고, 염상섭을 불러와 교토부립2중학교에 유학시킨다. 염창섭은 군대 제대 후 교토제대 경제학부에 입학하여 1927년에 졸업했다. 그 자신의 교토 체험과 형의 이력 등이 염상섭의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셈이다.

교토부립2중학교를 졸업한 염상섭은 게이오대학 예과에 입학한다. 이후 그는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등 다양한 진보적 사상을 적극적으로 섭취하고 <조선독립선언문>을 작성 배포하며 시위하다가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하여 작가가 된다. 다양한 사상운동자들과 연결되어 있고, 마르크스 경제학에도 관심을 둔 조덕기는 청년 염상섭의 형상이 투사된 인물이 아닐까.

김남천이 그린 제국대학

카프작가 김남천도 식민지 말기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 여러 소설 속에서 제국대학에 대한 인식을 남겼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장편소설 《사랑의 수족관》(1940)이다. 이 작품은 남주인공 김광호가 대흥콘체른 사장 딸 이경희와 만나 오해로 헤어졌다가 그 오해가 풀려 결혼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대중소설이다.

단순한 대중연애소설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에는 식민지 말기 새로운 주체 형성의 모색이 담겨 있다. 남주인공 김광호는 교토제국대학 출신의 토목기사이다. 그는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객관성의 세계가 펼쳐지는 자신의 직업에 자긍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이다. 이런 점에서 김광호는 이전까지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에서 이신국 가()는 퇴폐와 치정과 음모가 넘실되는 부정적 형상으로 제시된다. 카프작가였던 김남천이 자본가의 가정을 부정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주목할 점은 그 부정적 윤리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바람직한 윤리적 주체의 면모가 과거와 같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설집이 간행되었을 때 채만식은 “조선문단의 허다한 장편들 가운데 《사랑의 수족관》의 김광호처럼 젊은 사람으로 치기가 없는 인물을 그려낸 작품은 아마도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정》의 형식이나 《고향》의 김희준은 김광호에 비하면 완연히 어린애들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3)

채만식에게 김광호는 이전 세대의 대표격인 이형식, 김희준을 어린아이로 보이게 만드는 ‘치기가 없는 성인’이며 ‘만년 반석’이라는 안정된 과학적 지식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인물로 이해되고 있다. 채만식은 김남천이 민족주의(이광수)와 사회주의(이기영)를 대체한 새로운 과학기술적 남성 주체를 창출했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시기는 중일전쟁이 전면화하고 중국 대륙의 요충지를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점령하고 있던 때이다. 일본군의 전승과 그를 통해 재편되는 제국의 질서 속에서 식민지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등은 낡은 사상으로 치부되었다. 사상이 사라진 시대 과학은 열등한 식민지적 자아를 성형하여 보편자가 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처럼 보였다.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었다. 만주로 출장가서 그 땅을 측량하며 “기술이 하나하나 자연을 정복해 가는 그 과정에 흠빡 반하고” 있는 김광호는 이성과 과학정신(남성적 힘)을 표상하는 제국의 기술적 주체였다.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굴레를 과학기술이라는 보편의 수단을 통해 벗어던지고 만주를 종횡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김남천의 사상적 모색이 제국 이데올로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귀결된 것처럼 오해될까 두렵다. 그렇지만, 김남천이 같은 제국대학 출신이더라도 과학기술적 주체가 아니라 인문사회적 지식인을 다룰 때는 그 상황이 달라진다. 식민지말기 김남천이 발표한 〈낭비〉, 〈경영〉, 〈맥〉 등의 일련의 전향 연작 소설 속 제국대학생의 형상은 그 사례이다.

이들 연작에서 김남천은 경성제대 영문과 출신 강사 이관형이라는 인물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이관형은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강사 임용을 기다리는 대학원 3년차 학생으로 제시된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헨리 제임스의 이중적 정체성을 ‘부재의식’으로 정의한 강사임용 논문을 준비하지만, 제대의 교수들은 논문의 집필 의도를 추궁한다.

이관형은 끝내 제국대학 강사에 임용되지 못한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관형이 영문과 출신의 최재서나 이효석 혹은 유진오 등을 모델로 삼았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누구를 모델로 했든 간에 이러한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 걸쳐 있는 이관형의 분열적 정체성과 강사임용 좌절은 김남천이 끝까지 회의하고 동요했던 어떤 지점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문학가라는 병’, 유진오와 이효석

김남천 소설 속 모델로 거론될 정도로 유진오와 이효석, 최재서 등 경성제대 출신 문학자들의 존재는 간단치 않다. 한국의 근대문학사에 이들이 남긴 공과는 결코 적지 않다. 그들의 문학적 행로에 대해 길게 말할 겨를은 없지만, 이들이 일반의 문학 인식에 끼친 작품 외적 기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근대문학은 역사적 제도였다. 요즘은 예전만 못하지만, 지난 세기 한국 사회에서 누리던 문학과 작가의 사회적 위상은 남달랐다. 그러한 문학 제도와 작가의 지위는 자명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위상은 문학에 생을 투신한 수많은 문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허나 문학에 대한 일반의 의식이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 작가들은 천재성을 지녔지만 다분히 불안정한 룸펜의 형상으로 인식되었다. 〈날개〉와 〈오감도〉의 작가 이상을 떠올려 보라. 그의 이미지는 병적이고 일상의 규범에서 벗어난 보헤미안적 일탈자이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에 가깝다.

유진오
이효석

유진오(왼쪽)와 이효석(오른쪽)

일상의 삶에서 동떨어진 일탈적 집단처럼 느껴지는 문단에 사회적 통념상 성공이 약속된 최고 학부의 졸업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선인, 일본인을 통틀어 경성제대 1등으로 입학하여 다시 수석으로 졸업한 뒤, 보성전문학교 법과 교수가 된 유진오가 소설가를 자처하면서 ‘소설’은 더 이상 ‘소설 나부랭이’가 아닌 고상한 무엇이 될 수 있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작가 이효석의 경우도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경성제대 예과의 문과는 A, B조로 나뉘어 있었다. A조는 법학과로, B조는 문학과 · 사학과 · 철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A조 학생 이효석은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법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문학과(영문학 전공)에 진학했다.

요즘 감각으로 바꿔 말하면, 법률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서울대 법학과에서 영문과(국문과)로 전과한 셈이다. 지금까지 찾아본 바로는 경성제대에서 법학부를 포기하고 문학부로 진학한 것은 이효석이 유일했다. 이처럼 이효석도 작품뿐만이 아니라 그 선택만으로도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셈이다.

문학이 학력과는 전혀 무관한 예술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사회적 평판이 높은 대학을 나왔다고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출세가 보장된 법학부를 포기하고 문학을 선택하거나, 법학 교수이면서도 자신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작가’로 자처한 이들의 행로는 문학(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 제국대학 문학부의 교양주의를 분석한 다카다 리에코의 《문학가라는 병》은 유진오와 이효석의 사례가 동시대 제국대학 문학부를 선택한 학생들의 지향과 유사한 것이었음을 알려준다. 다카다에 따르면, 서양 근대교양에 대한 독서와 숭배를 거쳐 온 고등학생들은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수재임에도 좌경으로 수난의 길을 걸은 사람”에 대해 공감을 느꼈다.

이를테면 1고생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안락한 환경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출세만을 생각하는 삶은 싫지만, 스스로 그런 삶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모두 버리는 길로 미처 한 걸음을 더 내딛지는 못하는 대신, “법학부를 버리고 문학부를 선택”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유진오와 이효석을 흔히 ‘동반자 작가’라고 명명하거니와, 예과(고등학교)의 수재였던 이들이 법학부를 선택하지 않고 문학과로 진학하거나(이효석), 법학부 진학 이후에 철학과로 전과를 모색한 것(유진오)은 1고를 졸업하고 도쿄제대 법학부가 아니라 교토제대 철학과를 선택한 마르크시스트 도사카 준() 등의 궤적과 유사한 것이었다.

제국대학 문학부를 선택한 이들 수재들은 출세를 버리고 문학을 선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특권화한 엘리트들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국대학의 문학(자), 문학 속의 제국대학 (제국대학의 유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