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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학교에 가는가?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9-27 조회수 186

진화의 관점은 학교 교육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당신은 넓은 벌판에 권총을 들고 서 있다. 정면을 겨누고 지표면과 평행하게 한 발을 쏜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총알을 같은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뜨린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수백 미터 멀리에, 떨어뜨린 총알은 바로 당신 발밑에 떨어질 것이다. 어느 총알이 먼저 땅에 도달할까? 총으로 쏜 총알? 그냥 떨어뜨린 총알?

대다수 사람은 떨어뜨린 총알이 총에서 발사된 총알보다 먼저 땅에 닿으리라고 예측한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어서 공중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것이라고 추론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필자도 이렇게 예측했다. 맙소사! 틀렸다. 정답은 ‘둘 다 동시에 땅에 도달한다.’이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에만 작용하여 총알이 공중에 더 오래 있게 해주는 힘은 따로 없다. 중력이 두 총알에 공통으로 작용하여 동시에 땅에 닿게 한다.1) 변명 같지만, 필자만 틀린 게 아니다. 필자의 옆방을 쓰시는 교육학 전공 교수님께도 이 문제를 여쭈었더니 틀리셨다.

왜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틀릴까? 문제를 너무 배배 꼬아놓아서? 그러기는커녕, 이 문제는 물체의 낙하를 단순 명쾌하게 묻는 문제다. 과학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라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놓고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등 확실히 그런 측면이 있긴 있다. 하지만, 왜 애초에 과학 지식이 대중에게 잘 스며들지 못하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틀리는 주된 이유는 물체는 외부로부터 ‘힘’ 혹은 이른바 ‘임페투스(impetus)’를 부여받음으로써 비로소 운동하게 된다는 잘못된 직관적 믿음을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그냥 떨어뜨린 총알과 달리,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앞으로 나가는 힘을 전달받아서 내부에 저장했다. 이 힘이 다 소모되면 그제야 총알은 힘없이 수직으로 급강하리라고 사람들은 예측한다.(애니메이션에서 절벽 너머로 질주한 악당이 문득 자신이 허공에 떠 있음을 깨닫고 갑자기 추락하듯이 말이다.)2)

과학 지식은 왜 대중에게 잘 스며들지 못하는가.

과학 지식은 왜 대중에게 잘 스며들지 못하는가.<출처: 셔터스톡>

이러한 직관적 믿음은 뉴턴의 관성의 법칙, 즉 정지한 상태는 운동하는 상태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며 물체는 외력이 없는 한 자신의 원래 운동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는 과학 법칙에 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은 공을 손가락으로 밀면 마찰력 때문에 공이 좀 굴러가다 멈추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들에게는 물체의 운동에 대한 잘못된 직관적 믿음의 하나인 ‘임페투스’ 이론이 세상을 충분히 잘 설명했을 것이다.3)

우리의 조상들이 직면했던 먼 과거의 세상은 사람, 동식물, 사물, 수량, 언어 등 다양한 영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성공적인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다방면의 지식을 저절로 쉽게 학습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우리는 모두 직관적인 물리학자, 생물학자, 지구과학자, 심리학자, 공학자 그리고 수학자이다. 문제는, 이처럼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이 종종 틀린다는 것이다.4)

아이들이 먼 과거의 환경에서 번식에 중요했던 특정한 지식을 선천적으로 잘 습득하게끔 태어난다는 사실은 왜 장기간에 걸친 정규 교육과정이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진화의 관점은 학교 교육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왜 그토록 많은 아이가 수학 포기자가 되는가? 왜 십수 년간 한국어를 배워온 어른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가?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간에 따라서 종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불평하는가?

아이들은 먼 과거의 환경에서 적응적이었던 지식을 쉽게 잘 배우게끔 태어난다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취학 전에 ‘영어유치원’을 다닌다. 한글, 수학 학습지를 푼다. 과학, 태권도, 피아노, 미술, 논술, 발레, 중국어 학원에 다닌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코딩 조기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아이들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는 태도에는 태어날 때의 마음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상태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텅 빈 상자 같은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온다. 머릿속에 지식이 차곡차곡 쌓인다. 나중에 시험 시간이 되면 지식을 꺼내어 답안을 작성한다. 어려서부터 지식을 많이 축적한 아이가 이긴다.5)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돈 그리고 아이의 체력이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비결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텅 빈 상자가 아니다. 수백만 년 전 수렵-채집 환경은 가족, 내집단과 외집단, 표정, 언어, 동물, 식물, 인공물, 무기물, 시공간, 수량, 기하, 셈 등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찬 이질적인 세상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각 영역에서 생존과 번식에 중요했던 정보들 그 자체에 흥미를 가졌고 잘 습득하게끔 진화하였다. 보상과 처벌이 없어도, 그냥 이유 없이 어떤 일이 재미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친구와 수다 떨기나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를 너무나 사랑한다. 옛날에는 이런 일들이 각각 사회적 지능과 운동 능력을 향상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6)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구들과 함께 놀며 즐거움을 느낀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구들과 함께 놀며 즐거움을 느낀다.<출처: 셔터스톡>

각 영역에서 선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 체계는 각 영역에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해주는 틀인 이른바 ‘직관 이론(intuitive theory)’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직관 이론에는 직관 물리학, 직관 생물학, 직관 심리학, 직관 공학, 직관 수학, 직관 경제학, 언어 등이 있다. 직관 이론은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현상에 대한 과학 이론을 배우기 전에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나름대로 품는 추측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아이들은 물체를 밀거나 당기면 물체가 조금 움직이다가 마찰력 때문에 멈추는 모습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이로부터 “물체는 외부로부터 ‘힘’을 부여받아야만 움직인다.”는 직관 이론을 발달시킨다.7)

직관 이론은 그냥 잘못된 지식―예컨대 “성인은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틀린 정보―과 뚜렷이 구별된다. 첫째, 직관 이론은 논리적이고 일관된 믿음들의 체계다. 둘째,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직관 이론은 모든 정상인의 마음속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셋째, 직관 이론은 튼튼해서 이를 반증하는 증거나 주장을 접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앞의 예를 계속 들면,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외부에서 ‘힘’을 부여받지는 않았다는 관성의 법칙을 들으면 많은 일반인이 내심 못 미더워한다.8)

요컨대, 소규모 사회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우리의 조상들에겐 학교가 따로 없었다. 성공적으로 번식하기 위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했던 지식을 배우는 일에는 별다른 보상이 없어도 강한 동기가 부여되고, 학습 자체도 식은 죽 먹기처럼 이루어지게끔 우리의 마음이 진화하였다.

학교는 우리가 잘 배우게끔 타고나지 않은, 현대 생활에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곳

학교는 호모 사피엔스에겐 낯설다. 한 곳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지식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행위는 고작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전 국민이 적어도 초등교육을 반드시 이수하게끔 하는 제도는 겨우 이백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진화발달심리학자 데이비드 비요크룬트(David Bjorklund)가 말했듯이, “아이들은 연령별로 나누어진 교실에서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서 낯선 비친족 어른으로부터 장시간 교육을 받게끔 진화하지 않았다.”

왜 학교는 아이들에게 독서, 작문, 외국어, 수학, 과학, 사회, 기술, 체육, 예술 등을 가르칠까? 각 영역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 체계들에 바탕을 두어 인류는 지난 1만 년 동안 눈부신 학문적,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몇몇 영역에서는 직관 이론이 해당 학문 분야를 꽃피우는 올바른 토대가 되었다. 예를 들어, 모든 아기는 세 개 정도의 물체를 활용해 간단한 덧셈 혹은 뺄셈을 하는 능력을 저절로 발달시킨다. 물론 이러한 계산 능력은 수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다른 많은 영역에서, 직관 이론은 과학적으로 틀린 첫걸음을 내딛게 했다. 임페투스 이론이 뉴턴 역학으로 부정되었음은 이미 살펴보았다. 또 다른 예로, 사람들은 생물의 내부에 그 생물이 살아서 움직이게 만드는 본질이 내재해 있다는 직관 생물학을 발달시킨다. 이러한 본질주의 이론은 종은 불변하지 않으며 시간에 따라 진화한다는 현대 진화생물학과 어긋난다.

이제 학교의 존재 이유에 다다랐다. 학문적, 기술적 진보를 통해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세대를 거쳐 전승됨에 따라 사회 안에 하나의 균열이 생겼다. 각 영역에서 특화된 인지 체계를 통해 누구나 저절로 갖게 되는 ‘일차 지식(primary knowledge)’과 관찰과 실험 등을 통해 학계에 확립되고 전파되는 ‘이차 지식(secondary knowledge)’ 사이의 틈이 점차 커졌다. 진화교육심리학자 데이비드 게리(David Geary)에 따르면, 학교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함이다. 즉 아이들이 저절로 잘 배우게끔 타고나지는 않은, 그러나 사회에서 유능한 구성원으로 자라는 데 꼭 필요한 ‘이차 지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체계가 학교 교육이다.

학교는 누구나 저절로 갖게 되는 ‘일차 지식’과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확립되고 전파되는 ‘이차 지식’ 사이의 틈을 메우는 곳이다.

학교는 누구나 저절로 갖게 되는 ‘일차 지식’과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확립되고 전파되는 ‘이차 지식’ 사이의 틈을 메우는 곳이다.<출처: 셔터스톡>

잠시 정리하자면, 학교는 우리가 저절로 잘 배우는 일차 지식과 명시적인 지도와 반복 학습을 통해 애써 익히는 이차 지식 사이의 틈을 메우는 곳이다. 이제 각 영역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 체계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직관 이론들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자.

언어: 듣고 말하기는 쉽다. 읽고 쓰기는 어렵다.

듣고 말하기는 참 배우기 쉽다. 이를테면, 영어 사용자들에게 한국어는 습득하는데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언어라지만 우리 한국인에겐 먼 이야기다. 지구상 어디서나 아이들은 생후 두 살이 되면 말문이 트인다. 네 살이 되면 온종일 재잘대서 부모의 혼을 쏙 빼놓는다. 어떤 엄마는 아기가 빨리 말을 터득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 못 하는 갓난아기를 붙잡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사실,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다. 그저 아기가 자라면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이따금 듣게 해주면 그만이다. 이러한 입력 정보만 주어지면 모든 정상적인 아기들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모국어를 유창하게 듣고 말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고고학적, 신경학적, 해부학적 증거들은 음성 언어가 적어도 10만 년 전에 출현한 심리적 적응임을 입증한다.9)

애석하게도, 문자를 읽고 쓰는 것은 배우기 어렵다. 말로는 부모를 쥐락펴락하는 유아들이 한글을 익히느라 몇 년을 고생한다. 아이 방에 한글 학습지, 연필, 종이들을 잔뜩 쌓아놓기만 하면 어느 날 홀연히 아이가 한글을 깨우치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한글이 야호> 같은 교육방송 프로그램도 보고, 한글 학습지도 꾸준히 풀고, 부모로부터 혼도 좀 나야 간신히 한글을 배운다.

문자를 읽고 쓰는 것은 듣고 말하는 능력보다 습득하기 어렵다.

문자를 읽고 쓰는 것은 듣고 말하는 능력보다 습득하기 어렵다.<출처: 셔터스톡>

심지어 십수 년간 한글을 공부한 대학생과 일반인들조차 여전히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글쓰기 노하우를 전하는 강좌나 실용서들이 주목받는 모습은 그만큼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커다란 두통거리임을 알려준다. 글쓰기가 말하기만큼 쉬웠다면 <대통령의 글쓰기>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같은 책들이 결코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을 텐데!

문자는 겨우 8천여 년 전에 처음 발명되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기에 특화된 심리적 적응이 진화할 시간은 없었다. 신경과학자들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등 다른 목적을 수행하게끔 진화된 심리적 적응들이 글을 읽을 때도 동원됨을 밝혀냈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종이 위에 쓰인 단어(예: “전화”라는 글자)를 보고 이 상징이 가리키는 실제 사물의 이미지(예: “☎”)를 뇌의 저장고에서 꺼낸다. 단어가 내는 소리(예: “전화”라는 소리)에 이 이미지(예: “☎”)를 연결함으로써 비로소 단어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실제로 사물의 형상 같은 시각 정보 처리에 관여하는 뇌의 부위인 측두엽과 후두엽이 글을 읽을 때도 활성화된다.10)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유아들이 대개 한글도 빨리 읽는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요컨대, 일차 지식에 해당하는 듣고 말하는 능력은 언어에 특화된 심리적 적응 덕분에 저절로 쉽게 배울 수 있다. 이차 지식에 해당하는 읽고 쓰는 능력은 다른 기능에 특화된 심리적 적응들을 임시변통으로 끌어다 쓰기 때문에 명시적인 지도와 고된 훈련을 거쳐야만 간신히 배울 수 있다.

직관 수학: 초보적인 수학 능력은 있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어렵다

기쁜 소식이다. 인간은 1부터 3(혹은 4)까지 수를 세고, 1부터 3(혹은 4) 사이에서 빼고 더하고, 양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고, 더하면 양이 많아지고 빼면 양이 줄어듦을 이해하는 심리적 적응을 진화시켰다. 이런 기초적인 수학적 능력들은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영유아기의 특정 시기에 저절로 나타난다. 실행 과정도 매끄럽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이런 지식을 익히고 통달하게끔 강하게 동기 부여가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수학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처럼 초보적인 수학 능력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번식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발달하리라 기대된다. 실제로 다른 영장류나 조류에서 초보적인 수학 능력이 확인되었다. 붉은털원숭이는 사과 조각이 각각 세 개와 네 개가 들어 있는 두 그릇 가운데 항상 후자를 선택했다.11)

인간의 기초적인 수학 능력은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영유아기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기초적인 수학 능력은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영유아기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출처: 셔터스톡>

생후 다섯 달이 된 아기들도 작은 수를 더하거나 빼는 능력이 있음이 발달심리학자 캐런 윈(Karen Wynn)이 행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작은 무대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누군가의 손이 내려와 무대 위에 뽀로로 인형을 하나 놓는다. 차단막이 올라와 뽀로로 인형을 시야에서 가린다. 그리고 또 다른 뽀로로 인형을 쥔 손이 공중에서 내려와서 차단막 뒤에 인형을 놓는다. 빈손이 퇴장한다. 이제 차단막이 치워진다. 인형은 몇 개 있을까? 1+1=2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두 개가 있으리라 예측할 것이다. 만약 무대에 인형이 한 개나 세 개 놓여 있다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워할 것이다. 다섯 달 된 아기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즉 작은 수를 더하거나 빼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불가능하게 비추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생후 다섯 달 된 아기들도 무대를 더 오래 쳐다보았다.12)

이제 슬픈 소식이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쌓아 올린 수학 법칙과 발견들은 워낙 최근의 발명품이므로 우리가 이들을 잘 배우게끔 진화하지는 않았다. 수학 교과서를 온통 차지하는 이런 지식들에는 십진법, 받아 올림이나 받아 내림이 있는 덧셈과 뺄셈, 곱셈, 나눗셈, 분수, 지수, 확률, 퍼센트, 이차함수, 미적분 등이 있다. 이들을 숙달하려면 명시적인 가르침과 지속적인 반복 학습이 필요하다. 대다수 사람은 세 자리 이상의 큰 수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일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지만 다량의 물품을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현대 사회에서 유능한 구성원으로 기능하려면 정규 교육을 통해 큰 수를 다루는 법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배워야 한다.

직관 생물학: 본질주의적 사고는 현대 생물학을 이해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얼마 전에 나갔던 어떤 모임에서 생긴 일이다. 필자가 진화심리학을 전공한다고 소개했다. 한 분이 호기심과 당혹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설마 생물이 진화했다고 정말로 믿는 건 아니시겠죠?”

생명 현상을 이해할 때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품는 직관 이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본질주의(essentialism)이다. 생물의 모든 특성은 내부 어딘가에 숨겨진, 눈으로 볼 수 없는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이다. 유기체의 본질은 고정불변하고(한 번 호랑이면 영원히 호랑이다), 균일하고(모든 호랑이는 근본적으로 똑같다), 불연속적이고(호랑이는 다른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천부적이라고(호랑이다움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다) 간주된다. 예컨대, 취학 전 유아들은 소와 돼지는 각기 다른 본질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소의 본질이 소가 뿔이 나게 하고, 돼지의 본질이 돼지가 꿀꿀 소리를 내게 한다고 믿는다.13)

생물의 외형이나 행동이 달라지더라도 본질은 변치 않는다는 본질주의적 사고는 전 세계의 전래동화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운 오리 새끼>, <개구리 왕자>, <콩쥐 팥쥐>, <미녀와 야수>, <소가 된 게으름뱅이>, <호랑이 형님> 등이 그 예다. 게으름뱅이가 쇠머리 탈을 쓰는 바람에 소가 되었지만, 사람의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대목은 본질주의를 잘 보여준다.14)

전래동화는 생물의 외형이나 행동이 달라지더라도 사람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본질주의적 사고를 잘 보여준다.

전래동화는 생물의 외형이나 행동이 달라지더라도 사람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본질주의적 사고를 잘 보여준다.<출처: 셔터스톡>

물론 본질주의적 사고는 과학적으로 틀렸다. 단순히 틀렸으니 덮어두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일반 대중은 현대 생물학의 지식을 접할 때도 여전히 자신에게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직관 이론(본질주의)의 틀을 부지불식간()15)에 적용하기 때문에 현대 생물학을 오해하고 회의하기 쉽다.

예컨대, 아이들은 유기체의 내부에 본질이 있음을 ‘알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반면에 어른들은 ‘유전자=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유기체의 본질에 부여하는 속성 가운데 상당수는 유전자의 속성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전자는 고정불변하므로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전자는 균일하므로 한 종에 속한 개체 간의 차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유전자는 천부적이므로 태어날 때 없었던 형질은 전적으로 외부의 환경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말할 필요 없이, 이처럼 잘못된 직관 이론을 적용하여 현대 과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흔히 과학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낳는다.16) 필자에게 어떻게 (비상식적인) 진화 이론을 받아들이냐고 진지하게 물었던 어떤 분처럼 말이다.

정리하자. 학교 교육은 우리가 잘 배우게끔 타고나지는 않은 지식,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하게끔 도와주는 작업이다. 수백만 년 전 소규모 수렵-채집 사회에서 진화한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발적인 놀이와 탐색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끔 진화하였다. 아이들에게 맞는 효율적인 교수법을 개발하려면 이러한 진화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학습은 본래 즐겁다.’거나 ‘맹목적인 암기보다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명제와 달리, 로그 함수를 미분하기처럼 진화적으로 생소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상세한 가르침, 철저한 반복 훈련, 외부적 보상이 어느 정도 필수적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로그 함수를 어떻게 미분하는지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해법을 혼자서 잘 찾아내게끔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잘 배우게끔 타고나지 않은 지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칠지 고민하는 곳이 학교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는 왜 학교에 가는가? - 학교 교육의 진화심리학 (본격 진화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