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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서 국가로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7-18 조회수 838

플라톤의 영혼 불멸과 이상국

 

영혼에서 국가로 대표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영혼 불멸의 증명

플라톤에게서 영혼의 불멸에 대한 믿음은 그의 사상 체계 전체를 지탱하는 토대의 역할을 한다. 체계를 정초하는 중요한 관념이기에 철학자로서 이를 그저 증명되지 않은 ‘믿음’으로 남겨둘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파이돈’에서 그는 마침내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영혼의 불멸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한다.

‘파이돈’은 글라우콘이라는 청년이 사형선고를 받은 스승을 방문해 그가 형의 집행을 앞두고 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의연한 자세로 자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외려 동요하는 지인들을 안심시키려 한다. 육체와 달리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 없다는 것이다. 미심쩍어하는 지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네 가지 논증을 동원한다.1)

첫째는 이른바 ‘주기론 논증(cyclic argument)’이다.2) 이 논증은 ‘모든 것이 그 반대물과 주기적으로 교체된다.’는 자연철학적 관찰에 토대를 둔다. 즉,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듯이, 삶 다음에는 죽음이 있고 죽음 다음에는 삶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죽음 다음에 삶이 이어진다면, 이어져야 할 그 삶은 반드시 재탄생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재탄생하려면 영혼은 죽어서 신체를 떠난 후에도 그 어딘가에는 계속 있어야 한다. 고로 영혼은 불멸해야 한다. 우리가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듯이 영혼 역시 삶과 죽음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려면 잠든 후에도 내가 존재하듯이 죽음 후에도 영혼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기설 논증(argument from recollection)’이다.3) 우리는 현실에서 ‘같은’ 물건들을 본다. 하지만 같다고는 해도 그것들이 서로 완전히 같은 것일 수는 없다. 이때 우리가 그 같음의 불완전함을 아는 것은 ‘완전한’ 같음의 관념(같음의 이데아)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완전한 같음의 관념이 감각 경험을 통해 들어온 것일 리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태어나기 전에 습득한 것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영혼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사실 이 논증은 이미 ‘메논’에서 소개된 바 있다. 따로 기하학을 배우지 않은 노예 소년이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어떤 선험적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서 본 것의 기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친화성 논증(affinity argument)’이다.4) 세상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육체의 눈으로 보는 감각적 세계로, 그 세계 안의 모든 것은 가변적 · 가멸적 · 가분적이다. 다른 하나는 정신의 눈으로 보는 이지적 세계로, 그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은 불변적 · 불멸적 · 불가분적이다. 우리의 신체는 그 성격이 전자에 가깝고, 우리의 영혼은 그 성격이 후자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신체는 감각 세계에 더 친화적이고, 영혼은 이데아 세계에 더 친화적이다. 따라서 평소에 충분한 철학적 훈련을 통해 육체가 끼치는 해로운 영향에서 자유로워진 영혼은 육체의 죽음 후에 신체에서 떨어져 나와 초월적인 이데아 세계를 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들로 지인들을 설득하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소크라테스는 뒤에서 영혼의 불멸을 입증하는 마지막 논변을 소개한다. 이른바 ‘생명의 이데아 논증(argument from the Form of life)’5)으로,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유지하면서 반대자가 될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뜨거움이 뜨거운 채로 차가움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서로 대립되는 성질들을 내포한 사물들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영혼’ 또한 이미 그 말 안에 생명을 함축하고 있으므로 그것의 반대를 함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영혼은 자기 안에 생명의 반대, 즉 죽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 것은 당연히 파괴도 불가능하다. 고로 영혼은 불멸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 부분

위의 세 번째 논증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영혼이 이데아 세계에 친화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영혼은 불변적 존재인 이데아와 동질적이나 이데아 그 자체는 아니며, 이데아 세계와 감각 세계 사이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영혼은 늘 어디를 향할지 존재 방식을 결정하도록 요청받는다. 플라톤은 이를 영혼의 삼분법으로 설명한다. 우리 영혼은 이성(nous) · 기개(thymos) · 욕망(epithymi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성은 진리를 따르라 명령하고, 욕망은 육체적 쾌락을 따르라고 유혹한다. 이때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개이다. 그 결정에 따라 영혼은 이데아 세계로 비상할 수도 있고, 영원히 물질의 세계에 묶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말한 슈퍼에고 · 에고 · 이드의 삼분법을 닮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현대적 의미의 개인성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 이성 · 기개 · 욕망의 드라마는 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적 갈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초개인적인 힘들이 그 사람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현상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렇다 해서 영혼의 관리에서 개인이 발휘하는 주동적 역할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영혼을 이성이라는 기수가 이끄는 쌍두마차에 비유한다. 기개라는 말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 하고, 욕망이라는 말은 저 아래 땅으로 곤두박질치려 한다.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이 두 말의 움직임을 이성이 다스려야 영혼이라는 마차가 제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쌍두마차

영혼의 쌍두마차

육체를 떠나 영원불멸하는 ‘영혼’의 교설은 피타고라스를 통해 동양에서 유입된 신비주의 사상이었다. 당시 사교 집단 중 하나인 오르페우스 교도들에게 종교란 개인의 영혼에 관한 것이지 국가를 향한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세인의 눈에는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는 소크라테스 역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도록 오도하는 사교 집단의 교주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의도를 전적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플라톤은 스승에게 뒤집어 씌워진 오해를 벗겨내려 했다. 영혼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국가를 버리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도피주의적 교설이 아니라, 실은 참된 국가를 수립하고 운영하기 위한 매우 적극적인 철학적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세 계급

플라톤은 영혼의 이론을 국가의 이론과 연결시킨다.6) 연결은 영혼과 국가의 유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의 영혼이 이성 · 기개 · 욕망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듯이, 국가 역시 통치자 · 수호자 · 생산자의 세 계급으로 되어 있다. 이성 · 기개 · 욕망의 기관이 우리 머리 · 가슴 · 배에 있다고 주장했듯이, 이 세 계급도 국가의 머리 · 가슴 · 배를 이룬다고 했다.

원래 발달하지 못한 단순한 사회에는 생산자 계급만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거기서 먼저 수호자 계급이 떨어져 나오고, 거기서 다시 통치자 계급이 갈라져 나왔다. 세 계급의 영혼을 플라톤은 금속에 비유한다. 통치자 계급은 금(), 수호자 계급은 은(), 생산자 계급은 동()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 부분

영혼의 세 부분

이 중 어느 계급에 속하느냐는 물론 영혼의 구성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영혼의 세 부분 중 ‘욕망’이 강한 이들은 생산자가 된다. 이들은 돈을 위해 사는 이들로, 재산을 소유하고 가정을 꾸리며 노동과 여가의 평범한 일상을 영위한다.

욕망보다 기개가 강한 이들은 수호자가 된다. 이들은 영웅적 행위를 위해 사는 이들로, 용감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국가를 지키는 전사가 된다. 이들 수호자 중에서 특출한 이성의 능력을 갖춘 이들은 따로 선발되어 엄격한 교육을 받는데, 교육이 끝나면 이들은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된다. 이들은 진리를 위해 사는 이들로, 최고의 덕목인 철학적 지혜로 무장하고 있어 국가 공동체를 선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통치자 · 수호자 · 생산자

통치자 · 수호자 · 생산자

통치자가 될 이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최고의 교육과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된다. 열여덟 살까지 먼저 문학 · 음악 · 기초수학을 배우고 스무 살까지는 육체적 · 군사적 훈련을 받는다. 여기서 걸러진 소수의 인재들은 스무 살부터 고급 수학을 배운다. 이 과정을 마치면 서른 살부터 5년 동안 변증술과 도덕철학을 공부하고, 15년에 걸쳐 그동안 배운 것을 공적 영역에서 실습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과정 끝에 마침내 쉰 살이 되면 최고의 지식과 선의 관념을 완벽히 갖춘 최고의 철학자로 거듭난다. 그가 바로 국가의 통치를 담당할 철인 왕이다. 일종의 절대군주제인 셈인데, 플라톤은 이 철학적 군주제가 욕망이 아니라 지성에 근거한 통치이기에 절대 독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스파르타 젊은이들의 훈련

스파르타 젊은이들의 훈련

실제로 그의 이상국에서 통치 계급은 지배자로서 그 어떤 특혜도 누리지 못하고 외려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그 나라에서는 통치자와 수호자 계급 모두 막사에서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그들은 생산자 계급으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받는데, 음식은 매우 간소하며 그 양도 제한적이다.

이들은 재산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을 허용하면 재산을 불리는 데에 권력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가질 수도 없다. 국가와 가족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관계는 수호자 계급의 번식을 위해 특정 시기에 제도적으로 행해지는데, 이 ‘성스런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사회에서 공동으로 양육한다.

한마디로 지배계급이 ‘스파르타식’ 생활을 하는 셈인데, 실제로 이상국을 구상할 때 플라톤은 스파르타를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배계급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기 때문에 사회의 압도적 다수는 손쉬운 생산자 계급의 삶을 선택한다.

반면 재산보다 명예나 영광을 더 중요히 여기는 영혼들은 생산자 계급의 쉬운 삶을 포기하고 어려운 수호자 계급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통치자 계급에 속하는 이들은 재산이나 명예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 어려운 삶을 선택했을까? 그들이 통치자가 된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보다 더 열등한 이들에게 통치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그 어려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플라톤의 사주덕

국가의 운영에는 지혜 · 용기 · 절제 · 정의의 사주덕(cardinal virtues)이 필요하다. 통치자의 덕은 물론 지혜다. 여기서 지혜란 곧 선에 대한 통찰을 가리킨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 통치자가 되려는 이들은 쉰 살이 될 때까지 혹독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이 교육과 훈련에서 여성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들 역시 남성과 동등한 훈련을 받은 후 수호자가 되어 동일한 무기를 지급받을 수 있고, 그들 중 탁월한 지성을 가진 여성은 다시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아 통치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국가에서 남성만 기용하는 것은 신체의 반쪽만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이 철학사에 최초로 등장한 페미니즘 사상이다.

우리는 정치를 그저 이해관계의 조정으로 생각하나, 플라톤에게 정치란 무엇보다 시민들의 도덕적 완성을 향한 실천이었다. 통치는 곧 동굴 속 수인들을 바깥세상으로 이끄는 것과 같았다. 시민들을 좋은 삶과 바른 삶으로 인도하려면 좋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좋음의 인식이 바로 ‘지혜(phron?sis)’다.

고로 통치자는 애지자(), 즉 철학자여야 한다. 통치자에게 지혜가 필요하듯이 수호자에게는 ‘용기(andreia)’가, 생산자에게는 ‘절제(s?phrosyn?)’가 요구된다. 한편, ‘정의(dikaiosyn?)’는 모든 계급에 두루 요구되는 덕목으로 각자 제게 합당한 몫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플라톤에게 사회정의란 각 계급이 제 분수를 지켜 다른 계급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군주정(혹은 귀족정)이 최선의 정치체제라 보았다. 이 이상국을 지탱하는 네 기둥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차례로 명예정 · 과두정 · 민주정 · 전제정의 타락한 정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통치자가 ‘지혜’의 덕을 잃어버리면, 그때는 철인 대신에 전사들이 통치하는 군사정권이 등장한다. 이 명예정이 ‘용기’와 같은 군사적 덕목마저 잃어버리면 권력은 돈 많은 소수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과두정에는 낮은 수준이나마 절제의 덕이 있는데, 그 알량한 ‘절제’마저 사라지면 이제 민주정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민주정 하의 방종은 필연적으로 전제정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 최악의 정체에서는 ‘정의’ 자체가 사라져 정치에 오직 불의만 남게 된다고 한다.

다섯 개의 정체

다섯 개의 정체

플라톤의 이상국에서는 각 계급이 각자 저마다의 덕을 실천한다. 통치자는 ‘지혜’를, 수호자는 ‘용기’를, 생산자는 ‘절제’를 갖추고 각자 제 위치에서 본분을 지킴으로써 마침내 ‘정의’가 실현된다. 이것이 최선의 국가, 즉 선의 이데아를 구현한 국가다.

앞에서 그는 인간의 영혼을 기수가 끄는 쌍두마차에 빗댔는데, 이 비유는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 기수의 역할을 하는 것은 통치자 계급이다. 이들이 고삐를 잡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두 마리 말, 즉 수호자 계급과 생산자 계급을 적절히 통제하고 그로써 국가라는 마차는 모험주의적으로 흐르거나 시시해지는 일 없이 영웅적 실천과 비루한 일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올바로 달릴 수 있게 된다.

지혜에서 법률로

사실 플라톤의 이상국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현실의 국가들이 끝없이 근접해 가야 할 하나의 윤리적 이상에 가깝다. 하지만 아무리 지고한 이상이라도 현실에 적용될 수 없다면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그 때문일까? ‘법률’에서 그는 좀 더 현실적인 국가의 관념을 제시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통치에서 법률보다 통치자의 수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고정된 규칙으로서 법은 그저 평균적 상황만을 규정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 국가를 ‘성문화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놀라운 변화다. 하긴, 군주제가 아무리 이상적이더라도 현실적으로 이상적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한, 통치를 군주의 자의보다는 차라리 법에 맡기는 게 안전할 게다.7)

한마디로 ‘국가’가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 국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법률’이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바람직한 국가의 구상이다. 여기서 플라톤은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국가를 예로 든다.

그 도시는 크레타섬 남쪽의 마그네시아로, 12개 부족에 속하는 5,040명의 성인 남성들로 이루어진 작은 국가다. 마그네시아는 현실의 아테네와 ‘국가’에 등장하는 이상국 사이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이상 국가를 향해 상승하는 도정에 있는 현실 국가라 할 수 있다.

이 도시에도 민회가 있으며, ‘법률의 수호자’로서 공무원들이 존재한다. 나라의 일은 추첨으로 선발된 공무원이 맡으나, 일반 시민 역시 중요한 사안에서는 배심원으로 법률의 집행에 직접 관여한다.

국가의 최고 권력은 소수의 지혜롭고 뛰어난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위원회다. 이들은 이상국의 통치자들처럼 수학 · 신학 · 천문 · 법률 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다만 형이상학을 배우지는 않는데, 이는 교육의 초점이 초월적 세계보다는 현세의 일에 맞추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가족이나 재산을 가질 수 없는 이상국의 지배층과 달리, 마그네시아의 공무원들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으며, 가족을 이루도록 결혼도 허용된다. 이 점에서 마그네시아는 플라톤의 ‘국가’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하지만 ‘국가’에서처럼 이 나라에서도 저술이나 음악 활동 모두 국가의 검열에 맡겨진다. 여기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교육과 훈련을 받고, 무기도 지급 받는다.

그리스의 여전사

그리스의 여전사

플라톤의 이상국은 종종 현대 전체주의 국가의 원형이라는 비난을 받곤 한다.8) 그 점에서 마그네시아는 종종 플라톤의 이상국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이 나라에서는 ‘인간이 불멸에 도달하는 방법은 출산’이라는 인식 아래 결혼이 법률로 강제된다. 서른다섯 살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하는 남성은 국가에 벌금을 물어야 한다.

출산 의자 위의 여인

출산 의자 위의 여인

인간의 불멸이 출산에 달려 있기에, 국가에서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윤리 경찰을 이용해 불시에 가정 검문도 한다. 국가에서 권장하는 우생학적으로 올바른 섹스가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나아가 임신과 출산이 성행위의 본래 목적이라는 인식 하에 오직 그 목적에 부합하는 성행위만 허용한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는 금지된다.

그리스의 동성애

그리스의 동성애

이 점에 관한 한 ‘법률’의 분위기는 초기 대화편과는 사뭇 다르다. 이를 보면 동성애를 찬미하는 ‘향연’의 견해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것이고, 플라톤 자신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로 갈수록 플라톤은 더 보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마그네시아에서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신들은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불경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따라서 입법자는 법률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기해야 한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유 중의 하나가 무신론자라는 혐의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유신론 입법을 바람직한 예로 기술하는 보수성은 왠지 선뜻 받아들이기 거북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혼에서 국가로 - 플라톤의 영혼 불멸과 이상국 (철학 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