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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근원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7-16 조회수 152
세계의 근원

<출처: 셔터스톡>

카오스에서 탄생한 우주 만물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고대인들이 이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이야기(mythos)’를 지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우주기원론(cosmogony)은 ‘뮈토스’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득한 옛날부터 지구의 모든 민족들은 저마다 세계의 탄생 과정을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심지어 인도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수십 개씩 갖고 있을 정도였다. 지중해 주변에 모여 살았던 그리스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의 탄생을 묘사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헤시오도스(Hesiodos, ?~?)를 통해 전해진다.

태초에 무한하고 캄캄하며 텅 빈 공간인 혼돈 카오스가 있었다. 뒤를 이어 넓은 가슴을 가진 대지 가이아와 영혼을 부드럽게 하는 사랑 에로스가 나타났다. 카오스로부터 그윽한 어둠 에레보스와 밤 닉스가 생겨났고, 에레보스와 닉스 사이에서 천공() 아이테르와 낮 헤메라가 태어났다. 가이아는 별이 빛나는 하늘 우라노스와 바다 폰토스를 낳았고,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는 하늘과 땅을 채워줄 대자연의 존재들이 탄생했다.1)

‘우라노스와 가이아’, 이탈리아 사소페라토에 있는 로마 별장 바닥 모자이크, 200~250년경

‘우라노스와 가이아’, 이탈리아 사소페라토에 있는 로마 별장 바닥 모자이크, 200~250년경

고대인들은 이처럼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 신화를 사용했다. 여기서 자연은 신적인 존재들로 묘사되고, 우주 만물의 탄생은 이 초자연적 존재들 사이의 생식 및 교접 활동으로 설명된다. 세계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의인법과 비유법을 동원해 인간의 가족 관계를 무정한 우주에 투사해버린 것이다.

이 오랜 전통이 깨지는 것은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서다. 그즈음 소아시아의 밀레투스라는 곳에서 세계를 이야기가 아니라 가설과 이론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등장한다. 이 방식을 통해 그리스인의 사유는 신화(mythos)에서 논리(logos)로 넘어가게 된다.

자연을 ‘물질’로 보기 시작하다

기원전 7~8세기만 해도 호메로스(Homeros, ?~?)나 헤시오도스는 세계를 여전히 이야기로 설명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가 되면 이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학자들이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이야기를 짓는 것보다는 가설과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세계에 대한 이 새로운 유형의 설명 방식을 사람들은 곧 ‘철학’이라 부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에 따르면 이 새로운 사고의 창시자는 탈레스(Thales, 기원전 ?~?)였다고 한다.

헤시오도스로 추정되는 그리스 시인(왼쪽)과 탈레스(오른쪽)
헤시오도스로 추정되는 그리스 시인(왼쪽)과 탈레스(오른쪽)
 

헤시오도스로 추정되는 그리스 시인(왼쪽)과 탈레스(오른쪽)

 

시인들의 ‘이야기’는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어 논박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들은 진리로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시인들은 종종 자신들의 이야기가 신에게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즉, 제 이야기는 멋대로 꾸며낸 허구가 아니라 신이 불러주신 진리라는 것이다. 헤시오도스 역시 ‘신통기(Theogony)’의 서두에서 “뮤즈들이 내게 영적 목소리를 불어넣어 주셨다.”라고 말한다.

귀스타브 모로, ‘헤시오도스와 뮤즈’, 1857년

귀스타브 모로, ‘헤시오도스와 뮤즈’, 1857년

반면 철학자들은 어떤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려면 우선 증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탈레스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기하학의 정리를 보자. ‘원과 지름이 만나는 두 점 A, B와 원주 위 임의의 점 C를 잇는 삼각형의 각도 B는 90도다.’ 정리는 증명을 필요로 한다. 비록 탈레스의 증명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늘날 이 정리의 다양한 증명들이 존재한다.

탈레스의 정리

탈레스의 정리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우주(cosmos)의 모든 사건을 신들(theos)의 활동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탈레스는 자연을 설명하는 데에 신들의 존재를 배제한다. 자연을 ‘인격’이 아니라 ‘물질’로 본 것이다.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응 역시 달라진다.

일식을 예로 들어보자. 아주 오래전부터 고대인들은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지는 것은 신들이 진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에 변고가 일어나면 신들을 화나게 한 자신들의 부덕을 찾아 교정하려 했다. 자연을 물질로 보면 어떨까? 그 경우 일식은 신들의 진노와 관계없이 천체의 회전에 의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순수 물리적 사건에 불과하다. 주기가 있다면 당연히 예측도 가능하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30?)는 탈레스가 실제로도 일식을 예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리디아와 메디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5년 동안 지속되었다. 리디아가 이긴 전투도 많았고, 메디아가 이긴 전투도 많았다. …… 전세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은 터라, 여섯 번째 해에 또 다른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전투가 무르익어갈 무렵 대낮이 갑자기 한밤으로 변해버렸다. 이 사건은 실은 밀레투스 사람 탈레스가 이오니아인들에게 미리 경고하는 조로 예언한 것이었는데, 그가 지목한 해에 실제로 일식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본 리디아와 메디아 사람들은 즉각 교전을 멈추었고, 똑같이 두려워하며 평화조약을 맺었다.2)

리디아와 메디아의 전쟁 중에 일어난 일식

리디아와 메디아의 전쟁 중에 일어난 일식

탈레스가 예측했다는 그 일식은 정확히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식을 예측한 것으로 보아 탈레스는 일식의 원리를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과학적 인식이 당시에 널리 공유된 것 같지는 않다. 리디아와 메디아 사람들은 여전히 일식을 신들이 자신들의 싸움에 화가 났다는 징조(omen)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혜보다 무지가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일식을 신들의 분노로 보는 무지 덕분에 두 나라가 화평을 맺게 되었으니까.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 아르케

한편, 그리스 문명의 터전인 지중해 연안은 활성 단층이어서 예로부터 지진이 많았다고 한다. 탈레스는 지진의 원인 역시 신의 존재를 배제하고 설명하려 했다. 탈레스는 구체(혹은 원반) 모양의 대지가 배처럼 거대한 물 위에 떠 있다고 믿었다. 그 물에 파도가 쳐 땅이 흔들릴 때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로마의 저자 세네카(Seneca, 기원전 4?~기원후 65)는 이 이론을 소개하며 “어리석으니 …… 기각하라.”라고 말했다.3) 비록 후대의 눈에는 부족하지만 당시 이는 아주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간에서는 지진이란 분노한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땅을 내리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Iliad)’에서도 제우스는 포세이돈을 “땅을 흔드는 자”라 부른다. 중요한 것은 이 점이다. 적어도 탈레스는 지진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시인들처럼 신들을 불러내지는 않았다.

‘히포캄포스를 탄 포세이돈’, 아테네에서 발굴된 흑색상 도자기, 기원전 6세기경

‘히포캄포스를 탄 포세이돈’, 아테네에서 발굴된 흑색상 도자기, 기원전 6세기경

하지만 우리가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로 부르는 데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철학’은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혹은 몇 개)의 원리로 환원시키는 ‘추상’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추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머그잔과 도넛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위상수학에서는 둘을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왜? 둘 다 하나의 구멍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쪽 귀에 피어싱을 한다면 당신도 위상수학적으로는 도넛과 같은 신세가 된다.

머그잔과 도넛

머그잔과 도넛

머그 · 도넛 · 장갑 · 양말 · 타이어 · 금메달 · 병따개 등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해도 모두 ‘구멍이 하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추상을 통해 각양각색의 사물들이 가진 다양성을 지우고 그것들의 바탕에 깔린 하나의 공통적 원리를 추적해 나갈 수 있다. 그 원리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으로서, 모든 것이 그로부터 생성되어 결국 그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의 바탕에 깔려 있어 그것들을 각각 다양하게 변형시켜주는 실체.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물들의 토대이자 원리라고 말하는 것.4)

이를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는 ‘아르케(arche)’라 불렀다. 그리고 본격적 의미에서 철학은 아르케, 즉 “그로부터 다른 사물들이 생성될 수 있는 어떤 기체(physis)가 필연적으로 하나 혹은 그 이상 있어야 한다.”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이 세상의 아르케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그것을 ‘물’로 보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추정한다. “아마도 모든 생명의 자양분은 물기를 가지고 있으며, 뜨거운 것조차 습기로부터 창조되어 습기를 먹고 살기 때문이었으리라.” 만물이 물에서 나왔다는 탈레스의 주장은 우리 귀에는 황당하게 들린다. 하지만 지표면의 70퍼센트가 물로 덮여 있고,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70퍼센트가 수소로 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이 그리 많이 빗나간 추정은 아닌 셈이다.

이 세상의 아르케를 찾아서

그 이후에 등장한 철학자들은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탈레스의 견해를 수정하려 했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85?~528?)는 아르케를 ‘공기’라고 했고,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기원전 540?~480?)는 ‘불’이라고 주장했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0?~430?)는 앞선 견해들을 종합하여, 아르케는 하나가 아니라 물·불·공기·흙의 네 가지라고 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추상’은 아직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데, 그것은 여전히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사물을 아르케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반면 감각 너머에 있는 추상적 실체들을 아르케로 내세운 이들도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르케로 ‘무한자(apeiron)’를,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5?~?)는 ‘존재’를 내세웠으며,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기원전 460?~370?)는 ‘원자’를 내세웠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0?)는 ‘수’를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게다.

세계의 근원

탈레스는 강이나 바다는 물론이고 산과 들, 도로와 건물, 책상과 의자까지도 물의 변형에 불과하며, 그것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고 언젠가 다시 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는 물이 생명체처럼 살아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모든 사물이 살아 있다는 믿음을 철학에서는 물활론(animism, )이라 부른다. 사실 이는 그리스에서 매우 특이한 주장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애니미즘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는 왜 사물이 살아 있다고 보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신들의 도움 없이 자연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들이 자연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물질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 탄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물질은 살아 있어야만 한다.

탈레스에게 물질에 생명이 있다는 확신을 준 것은 아마도 자기 현상이었을 것이다. 실이나 머리카락을 문지르면 서로 들러붙는다. 자석은 쇳조각이나 쇳덩이도 끌어당긴다. 그 엄청난 힘에 놀란 그리스인들은 원인 모를 힘을 가진 자석을 ‘헤라클레스의 돌’이라 불렀다. 이를 보면 탈레스가 물이 살아 있다고 생각한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한편, 탈레스는 그 물이 “신들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당혹감을 준다. 우리는 탈레스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신들의 개입을 배제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탈레스가 말한 ‘신들’은 아마도 신화 속의 인격적 신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을 것이다. “신들로 가득 차 있다.”라는 말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생기(生氣)로 가득 차 있다.”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지구가 추락하지 않는 이유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689)에서 ‘실체(substance)’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을 힌두의 우주론에 비유한다. “지구는 왜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어느 인도인은 거대한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그럼 그 코끼리는 무엇이 떠받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거대한 거북이.”라는 대답을, “그럼 그 거북이는 무엇이 떠받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나도 모르는 어떤 것.”이라 대꾸한다.5)

결국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거북이 역시 다른 무언가에 지탱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 무언가가 뭘까? 어쩌면 ‘뱀’일지도 모르겠다. 힌두 신화의 또 다른 버전에 따르면, 그 거북이는 다시 거대한 뱀이 지탱하고 있다니까.

21개의 세계를 짊어진 거북이가 신들과 보호와 영원의 상징인 세계 뱀 ‘세샤트’ 위에 얹혀 있다.

21개의 세계를 짊어진 거북이가 신들과 보호와 영원의 상징인 세계 뱀 ‘세샤트’ 위에 얹혀 있다.

이렇게 세계를 떠받친 거북이를 ‘세계 거북(World Tortoise)’이라고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거대한 거북이는 인도만이 아니라 중국과 북미 등 세계 여러 곳의 신화에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은 세계의 모습을 어떻게 표상했을까?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 북아프리카가 알려진 ‘세계’의 전부였다. 그들은 그 세계의 바깥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을 뿐이고, 그 바다가 세계의 주위를 마치 띠처럼 두르고 있다고 믿었다. 나아가 대지는 납작한 원반 모양이며, 그 위를 반구형 천개가 덮고 있고 땅 아래는 하데스라 불리는 명계() 혹은 타르타로스라 불리는 아득한 심연()이 있다고 보았다. 비록 세계 거북의 신화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세계 역시 그 모양이 물에 떠 있는 거북이를 닮았다.

호메로스 시대의 세계지도와 세계상
호메로스 시대의 세계지도와 세계상
 

호메로스 시대의 세계지도와 세계상

 

탈레스가 생각하는 세계의 모습 역시 호메로스 시대의 세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탈레스는 대지가 납작한 원반이 아니라 둥근 구체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특정 지역에서 보이는 별자리가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이는 지구가 평평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별의 관측을 항해에 이용하려 했던 탈레스는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나아가 탈레스는 그 둥근 대지가 거대한 물 위에 떠 있다고 보았다. 바다의 일렁임 때문에 땅이 흔들리는 것이 지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탈레스의 세계관에서는 심연의 자리를 거대한 바다가 차지한다. 그렇게 보면 탈레스의 세계상이야말로 호메로스 시대의 것보다 더 물에 뜬 거북이의 둥근 등짝을 닮은 셈이다.

탈레스의 세계상

탈레스의 세계상

물론 두 세계관 사이에는 이런 현상적 차이를 넘어서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호메로스 시대의 세계관에서는 지리적 대상들이 모두 인격적 존재로 의인화되어 있다. 거기서 대지는 가이아, 바다는 오케아노스, 지하 세계는 하데스 그리고 심연은 타르타로스와 같은 신으로 나타난다.

반면 탈레스의 세계관에서 대지는 그냥 대지, 바다는 그저 바다일 뿐이다. 지진 역시 포세이돈의 분노가 아니라 지구를 떠받친 대양의 물결이 일으키는 순수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설명하는 호메로스의 방식이 이야기 짓기(mythopoiesis)라면, 탈레스의 것은 근거 짓기(logopoiesis)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왜 물보다 흙이 더 무겁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대지가 물 위에 떠 있다는 이상한 주장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탈레스의 세계관에는 아직 고대인들을 괴롭혔던 아주 중요한 물음이 빠져 있다. 어떻게 이 땅이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아래로 추락하지 않고 제자리에 떠 있는가? 고대인들은 그것은 무언가가 이 땅을 떠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대답대로 땅은 거대한 코끼리가, 그 코끼리는 거대한 거북이가 떠받치고 있다면 그 거북이를 떠받쳐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계속 물으면 결국 ‘무한 소급’에 빠지게 된다. 영어에는 ‘아래로 계속 거북이(turtles all the way down)’라는 말이 있다. 이 역시 무한 소급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지구가 추락하지 않고 공간에 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고대인들의 방식으로 답하려 들면 “거북이 아래에 거북이 아래에 거북이 아래에 거북이…….”라고 반복할 수밖에 없다.

거북이

이 물음에 답하려면 ‘중력’의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아득한 고대에는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물음 자체를 제기하지 않거나 혹은 답하지 않은 채로 남겨놓았다. 탈레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초로 이 문제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시도한 이는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납작한 원기둥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구가 그 어떤 것에도 지탱되지 않은 채 공간에 떠 있다고 주장했다. 평형을 이룬 천평칭이 정지해 있듯이 우주의 모든 끝점이 평형을 이루어 정 가운데에 있는 지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는 것이다. 비록 훗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비웃음을 사긴 했지만, 적어도 아낙시만드로스의 이 설명이 지구가 어떻게 떠 있는가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답변이었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각주

  • 1)

    Hesiod, Theogonie Ubrsetzt und erlautert von Raoul Schrott, Carl Hanser Verlag Munchen, 2014, s.13.

  • 2)

    Herodotus, Henry Slatter, The Nine Books of the History of Herodotus, High Street, 1846, Vol. I 74.

  • 3)

    Georg Wohrle (ed.), Thales, Walter de Gruyter GmbH & Co KG, 2014, p.101에서 재인용.

  • 4)

    Aristotle, Metaphysics, 983 b6 8?11.

  • 5)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London, 1689, Book II ch. XXIII sec.2.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의 근원 - 아르케를 찾아서 (철학 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