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 | |||||
작성자 | 철** | 작성일 | 2018-03-07 | 조회수 |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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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란 이처럼 나에게 타자의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현전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를 객체화시키고 즉자화시키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와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시선을 통한 투쟁에 가담하여 그의 시선이 갖는 힘을 한번 호되게 경험하고 난 뒤에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나는 타자의 시선을 방어할 틈도 없이 그에 의해 항상 바라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의 시선이 부재(不在)하는 상황 또는 그가 나를 실제로 바라보지 않는 상황에서조차도 그에 의해 내가 항상 바라보이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나는 뒤에서 누군가가 내게 손대는 것이 딱 질색이다. 등 따위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볼 수도 없는 사람이 내게 수작을 부리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그들은 제멋대로 농을 걸 수도 있고, 게다가 그들의 손은 보이지도 않는다. 손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얼마든지 우리를 보지만 우리는 그들을 볼 수가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륄뤼는 남편 앙리(Henri)뿐만 아니라 정부인 피에르(Pierre)도 싫어한다. 그들은 기회만 나면 그녀 뒤에 가서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앙리는 항상 륄뤼의 뒤에 붙으려는 거의 광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륄뤼의 이와 같은 반응은 더욱 첨예화된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그녀는 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붙잡혀 있다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등 뒤에서 보내는 시선을 경험한 그녀는 정부인 피에르와 육체관계를 갖고 난 뒤에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방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을 사르트르의 다른 문학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가령 『자유의 길』의 두 번째 권인 『유예』에서 다니엘(Daniel)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에서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네. 알겠나, 마티외, 아무도 없었어. 그러나 그 시선은 거기에 있었어.……나는 구석으로 몰리고 웅크렸지. 나는 관통당하고 동시에 불투명했지. 나는 하나의 시선 앞에 존재하고 있었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단편집 『벽』의 첫 번째 단편인 같은 제목의 「벽」에서도 볼 수 있다. 「벽」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명인 파블로(Pablo)는 잠깐 잠이 든 사이 총살당하는 꿈을 꾼다. 그는 이 꿈속에서 적에게 용서를 빌며 죽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장면이 같이 있던 벨기에 의사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순간 의사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정말 일을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놈들은 나를 벽으로 끌고 갔는데, 나는 악을 쓰면서 용서해달라고 애걸하고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 벨기에 의사 놈을 바라보았다. 잠결에 아우성이나 치지 않았는지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수염을 쓰다듬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러한 반응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객체화시킴으로써 나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타자의 존재론적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반응들은 또한 역으로 내가 타자를 바라보는 자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더욱 강한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계기를 통해 위에서 지적했던 타자의 시선에 대한 두 번째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이 두 번째 반응은 첫 번째 반응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와는 달리 나는 이제 타자가 나를 전혀 바라볼 수 없는 상태에서 타자를 일방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가령 위에서 보았던 「은밀」의 륄뤼는 니스(Nice)에 있는 별장에서 정부인 피에르와 같이 지내게 되면 온종일 벌거벗고 있을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항상 그를 앞장세우겠다는 각오를 다짐하고 있다. 당신은 니스의 내 별장으로 와야 해. 별장은 하얀색인데, 대리석의 계단이 있고, 바다를 향해 있으며, 우리는 온종일 벌거벗고 살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벌거벗고 계단을 올라가다니 참 우습기도 하지. 나를 볼 수 없도록 그를 반드시 앞장세우고 말 테다. 그렇지 않고는 발 하나 올려놓을 수도 없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가 눈이나 멀었으면 하고 기도할 테다. 그런데 내가 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타자를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위치나 상태를 선호하는 것은 신(神)의 위치에 서려는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비록 사르트르가 신을 논리적으로 모순된 개념으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절대로 객체가 되지 않는 주체, 영원히 절대적인 시선을 가진 주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타자가 나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그를 일방적으로 바라보려는 반응과 관련하여 지적할 수 있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일방적으로 바라보려는 행동과 옷을 입는다는 것의 의미이다. 단편집 『벽』의 세 번째 단편인 「에로스트라트」의 주인공인 일베르(Hilbert)의 의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위에서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수직 시선(regard vertical)에 대해 부주의하며 방어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위에서 굽어보아야 하는 법이다. 나는 불을 끄고 창가에 기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위에서 내려다보인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앞을 단정하게 꾸미고 때로는 뒤도 살피지만, 그 모든 효과란 1m 70㎝ 키의 구경꾼들을 위해 꾸며져 있을 뿐이다. 누가 도대체 7층에서 내려다보는 실크햇의 모양에 주의를 하겠는가? 그들은 어깨와 머리를 짙은 색과 호사한 옷감으로 방어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 그들은 인간의 이 커다란 적, 즉 수직으로 떨어지는 시선과 대적할 줄 모른다. 따라서 일베르는 자신의 시선을 일방적으로 보낼 수 있고, 남들이 전혀 자신의 시선을 예측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평생을 보내기를 원한다. 또한 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정신적 우월성 역시 바로 이러한 물질적 상징에 의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7층의 발코니. 내가 일생을 보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정신적인 우월성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상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 우월성은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나의 우월성이란 무엇인가? 위치의 우월성,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 자신 안에 있는 인간 위에 자리잡고 내려다본다. 그러기에 나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과 에펠탑의 위층과 사크레 쾨르 성당과 들랑브르 가(街)의 건물 7층에 있는 내 집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비할 바 없는 상징들이다. 일베르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생각은 결국 타자가 나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만이 그 타자를 일방적으로 바라보려는 반응의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베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주체의 자격, 즉 그들을 일방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항상 객체로 포착하고자 하는 생활을 평생 영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행동은 급기야는 다른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도 항상 끼고 다니는 장갑을 벗지 않는 행동으로도 이어진다. 또한 창녀인 르네(Renee)를 호텔방으로 데려가 강제로 옷을 벗기는 대신 그 자신은 목까지 옷을 입고 심지어는 장갑까지 낀 채 좋은 기분을 만끽한다. 여자는 쑥스러운 몸짓으로 이리저리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벌거숭이가 되어 걷는 것보다 여자를 더 거북하게 하는 것도 없다. 그들은 발꿈치를 땅에 붙이는 법이 없다. 창부는 허리를 구부리고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한편 나로 말하면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곳 안락의자에 조용히 앉아 목까지 옷으로 휘감고 장갑까지도 끼고 있었다. 이 무르익은 여자는 내 명령대로 온통 벌거숭이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일베르가 이처럼 벌거벗고 있는 르네 앞에서 흡족해하는 이유는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옷을 입는다는 것이 옷을 입고 있는 자의 객체성을 감추며, 주체성을 보호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선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 (장 폴 사르트르, 2004. 6. 15., ㈜살림출판사)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18663&cid=41762&categoryId=4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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