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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의 역사학적 세계관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3-07 조회수 738

랑케는 헤겔같이 역사의 통일성을 목적론적으로 본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자신을 전개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고, 그의 목적론은 목적이 없는 목적론이다. 세계사적 행위가 만드는 미래는 시간 속의 어떤 개별적 지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 행위가 어떤 의미로는 시간을 만든다. 그 행위는 역사형성이다. 그 행위가 지속적 영향을 갖는 한에서 그렇다. 그 영향은 한편으로 행위의 의미를 구성하고, 다른 한편 역사학자에게 일련의 사건들의 전체를 그 행위의 역사에 속한 것으로, 즉 통합된 것으로 이해하게 한다. 세계사에 속한 행위는 단순히 역사학적이지 않고 역사적이다. 역사적 행위는 중대하고 또 연쇄의 통일성을 형성한다. 그것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정합적이게 한다.

랑케가 사용하는 참으로 세계사적인 행위라는 개념은 바로 다음을 통해 정의되어 있다. 그것이 그것인 때는, 그것이 역사를 만들 때, 곧 자신에게 지속적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영향을 낳을 때이다. 역사적 연관의 요소들은 따라서 사실상 이 요소들을 결합시키고 무의미한 것을 이러한 연관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그런 무의식적 목적론에 의해 규정된다.(207)

랑케는 세계사적 행위들을 자유의 장면들이라고 말하고, 자유는 미래를 낳는 힘 속에 놓여 있다고 본다. 자유는 힘과 결부되어 있지만, 그러나 자유로운 힘이라고 해도 힘의 표현에 있어서는 제약되어 있다. 자유로운 힘이 만나는 제약이나 저항을 랑케는 필연성이라고 부른다.

자유의 옆에는 필연성이 서 있다. 그것은 이미 형성된 것, 억압될 수 없는 것 속에 놓여 있는데, 이것은 모든 새로이 생겨나는 활동의 토대이다. 있어온 것이 있게 될 것과 함께 연관을 구성한다.(208)

개인의 자유는 필연성에 의해 제한된다. 역사 속의 힘은 개인의 모나드적 주관성이 아니다. 모든 개별화가 이미 힘에 의해 각인되어 있는 한, 개별성은 주관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힘이다. 헤겔은 그 힘을 정신에 위치시키고, 랑케는 국가 체제들에 위치시킨다. 그는 국가를 실재적인 정신적 존재들과 신의 생각들이라고 부르면서 그것들을 인간의 설계에 의한 피조물이 아님을 암시한다.

국가들도 역시 랑케에게는 살아있는 힘들이다. 그는 그것들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여, 그것들은 '일반적인 것'의 부분들이 아니라, 개별성들, 곧 '실재적인 정신적 존재들'이라고 한다. 랑케는 그것들을 '신의 생각들'이라고 부르고 이로써 그것들을 현실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형성체들의 고유한 생명력이지, 어떤 인간적인 정립이나 욕구 또는 인간이 엿볼 수 있는 계획이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211)

헤겔의 사변적 역사관에 맞선 반-헤겔적 역사학자들은, 랑케에서 보듯 신학적이고 미학적인 자기개념화에 이른다. 역사학자는 신이거나 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역사학자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완성을 나타낸다. 신학적 자기이해는 랑케의 다음의 말에서 긍정된다.

나는 신성에 대해 ― 내가 감히 이러한 언급을 해도 된다면 ― 이렇게 생각하는바, 곧 신성은 그 앞에 정말로 아무런 시간도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인류를 그 전체성에 있어서 조망하고 어디서나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214)

슐라이어마허는 더 나은 이해에 대해 말하나 랑케의 신격화된 역사학자의 이해는 신적이고 동시에 미학적이다. 모든 시대를 동등하게 좋게 보는 역사학자의 의식은, 모든 시기의 예술을 동시성에로 데려오고 그래서 모든 작품들을 동등한 솜씨를 지닌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들을 동등한 관용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는 미학적 의식에 접근한다. 미적 의식이 그 자신을 그의 시대로부터 추상하듯이 역사학자는 랑케가 말하듯 그 자신을 소멸시키고 모든 것을 위에서 공정하게 영원이란 형상아래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랑케는 역사학자를 신만이 아니라 예술가로도 파악한다. 신학과 미학의 혼합이 헤겔의 관념론에서 벗어나려는 랑케의 시도의 결과였다. 그러나 가다머는 바로 그런 혼합이 바로 헤겔이 예술의 종교라고, 곧 그 자체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라고 부른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학자가 극작가와 공동으로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극작가처럼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 원소[세계]를 '자기 외부에 놓여 있는 어떤 것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사물들을 직관하는 일에 순수하게 몰두하는 것, 곧 세계사의 이야기를 추구하는 사람의 서사적인 태도는 사실상 시적이라고 불릴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역사학자에게 있어서 신은 개념의 형태가 아니라 '외적 표상'의 형태로 모든 것에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랑케의 자기이해를 사실상 이러한 헤겔의 개념들에 의하지 않고서 더 잘 묘사할 수는 없다. 랑케가 이해한 바로의 역사학자는 헤겔이 예술종교의 형태라고 서술한 절대적 정신의 형태에 속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랑케의 역사학적 세계관 (가다머 『진리와 방법』 (해제), 2005년~2006년,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92808&cid=41908&categoryId=4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