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의 윤리는 칸트의 도덕률이 안고 있는 가능성과 문제에 대해 정신분석이 제시하는 하나의 해답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승화는 윤리를 육체의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욕망의 긍정이라는 급진적 형태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 라캉은 칸트의 윤리학이 지닌 잠재적인 힘을 끌어내어 성적인 욕망과 충동에 적대적인 전통적인 윤리를 극복하고 억압과 금지가 아닌 육체의 긍정과 욕망의 만족에 기초한 급진적인 윤리를 세우고자 한다. 승화는 그 윤리를 세우는 데 중요한 개념적 초석을 제공한다. 충동은 결코 중용이나 절제로 만족될 수 있는 욕구가 아닌 것은 자명하다. 바로 그러한 충동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잠재적 방식으로 승화라는 정신분석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화는 어떻게 주체에게 억압 없는 직접적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일까? 욕망의 궁극적인 원인으로서 실재 대상은 사실상 접근이 차단된 그리고 욕망이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대상이다. 단지 그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결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재하는 대상을 향한 충동은 어떻게 만족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선 라캉의 승화 공식에 암시되어 있다. 승화는 "하나의 대상을 ······ 물의 품격으로 고양"한다고 라캉은 말한다.(112) 구체적인 하나의 사물이 승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접근 불가능한 실재계의 대타자를 구현하는 대상으로 상승한다. 이를 통해 부재하는 결여의 대상은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승화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물 자체를 체현하는 비범한 대상으로 바꿈으로써 주체에게 실재 대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작업이다. 주체는 이 평범한 사물을 경유하여 비범한 실재 대상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승화는 따라서 대상을 향한 주체의 누를 수 없는 욕망에 만족을 가져다준다.
이때 승화는 예술적 창조행위와도 관련을 맺는다. 예술이 감각적인 대상이나 재현을 통해 감각 너머의 실재를 드러내는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 속에서 재현할 수 없는 물의 품격을 발견하는 승화는 그대로 미적 창조의 성격을 띠게 된다. 프로이트의 승화 개념이 예술적 창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라캉이 정신분석에서의 승화 개념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사회적 인정'이라는 속성을 승화에서 제거함으로써 개념을 급진화 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캉의 승화 개념이 프로이트의 '예술적 창조'라는 특성을 여전히 내포하면서도 그것을 더욱 급진적으로 확장한다는 점이다. 승화는 사회적으로 높은 가치가 이미 부여된 제도권 예술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모든 창조적 행위를 예술로 포괄하는 활동이 된다.
라캉은 예술을 표면의 모방이 아닌 표면 너머의 실재의 드러남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예술작품은 "단지 모방하는 척만 한다."고 그는 말한다.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는 척만 할 뿐 실제로는 현실 너머의 실재를 담아내는 데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술에서는 "실재와의 관계가 ······ 대상을 순화되어 보이게 한다."(141) 즉, 예술 작품 속에 재현된 구체적인 대상이 재현 너머의 실재와 관련을 맺을 때 그 대상은 세속성을 잃고 순수한 대상으로 비범하게 등장한다. 따라서 대상을 실재의 지위로 고양시키는 과정인 승화는 본질적으로 예술적 창조행위에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