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철학·상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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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1-18 조회수 163

'인식론'이라는 말 자체는 근대의 소산이며 'Erkenntnistheorie'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K.라인홀트의 《인간의 표상능력() 신론()의 시도》(1789)에서이다. 영어의 'epistemology'는 그리스어의 'epist?m?(지식)+logos(논리·방법론)'에서 유래되었지만, 이 말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J.F.페리어의 《형이상학원론》(1754)에서이다. 물론 인식의 철학적 고찰은 고대나 중세에서도 신의 인식으로서 행하여지기는 했으나 인간 주체의 인식 문제로서 철학의 중심부문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근세에 이르러서이다.

J.로크의 《인간오성론()》은 이 인식문제의 전환점에 선 것이었고, D.흄 등의 영국 경험론에 의하여 인식론의 근대적 성격은 더욱 명확하게 되었으며 I.칸트에서 대성되었다.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을 사실문제로서가 아니라 권리문제라고 한 점 때문에 '인식비판'의 의미를 가진다. 인식론은 형이상학과 더불어 철학의 2대 부문을 이루지만 양자의 관계에 관하여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로크, R.데카르트, 칸트 등에 의하면 인식론은 형이상학에 우선하고 스피노자, G.W.F.헤겔, A.N.화이트헤드 등에 의하면 그와 반대라 한다. 역사적 또는 문제적으로 본다면 인식론에는 영국 경험론과 마찬가지로 인지()의 근거로서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경험론)과 그것을 이성 기타의 초경험적 계기에서 구하는 이성론의 방향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각과 감각의 상대성이 언제나 인식론의 근본문제가 되는 것을 보아도 명확한 것처럼 경험론은 회의주의()·상대주의로 흐르기 쉬우며, 또 논리·수학 등의 필연성을 심리주의적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그와 반대로 이성론은 검증 불가능한 독단적 사변()이나 가정으로 변하기 쉽다. 칸트는 경험을 인식의 발생과 성립의 근거라고 인정하면서도 직관()·오성()의 선천적 형식에서 학문적 인식의 보편타당성의 근거를 구했다. 주어진 다양성은 외적인 경험으로 부여되지만 그것은 주관의 형식에 의해서 통일되어 현상계가 된다. 칸트는 또 기계적 자연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이 현상계를 직관이나 오성이 미칠 수 없는 예지계()의 물자체()와 대치()시켜서 선행하는 경험론과 이성론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인식론적 입장에는 이것 외에도 실재론과 관념론의 대립도 볼 수 있다.

칸트 이후, 독일 관념론이 발전되면서 다시금 형이상학이 철학에서 중심과제가 되었는데 현대에는 신()칸트학파·현상학파·프래그머티즘·케임브리지학파·논리실증주의·일상언어()학파 등이 새로운 방법과 설문으로 인식론을 중요한 과제로 다루게 되었다. 인식론을 주제로 한 근세철학사를 개관하면 대체로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17∼18세기의 합리론과 경험론, 제2기는 18세기 말의 칸트의 비판주의, 제3기는 19세기 말부터 현대까지이다. 합리론은 데카르트에 의하여 시작되지만 그는 지식에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방법적 회의()로 배제해 버리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진리로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도달하였다.

제3기에서의 여러 가지 입장을 본다면 초기의 실증주의로서는 E.마하, R.아베나리우스, J.듀이 등이 있고, 일원론적 실재론에는 G.E.무어, 신실재론자, 초기의 B.러셀, 화이트헤드나 S.알렉산더의 인식론이 있으며, 이원론적 실재론에는 비판적 실재론자들이 있다. 현대는 이 밖에도 현상론적 또는 관념론적 경향의 인식론이 있지만 어찌되었건 실증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나란히 주류를 이룬다 해도 좋다. 그러나 그 반면 화이트헤드나 알렉산더 같은 사람을 제외하면 앞에서 예를 든 사람들은 형이상학을 배척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식론 [Epistemology, 認識論] (두산백과)

출처-: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6305&cid=40942&categoryId=3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