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상에서 언어의 기능을 통해서 문학과 철학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아왔다. 문학언어의 의의는 지식에 관한 것, 객관적인 현실을 기술하는 데 있지 않고 언어를 통해서 한 작가가 자신이 체험한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이를 독자와 더불어 공유한다는 데 있다. 바꿔 말해, 문학언어는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고, 작가가 구현한 작품 속의 현실과 인생에 대한 느낌이나 태도와 연관된 평가언어이다.
문학의 언어와 달리 철학의 언어는 인식언어에 속하지만, 철학에서 쓰이는 언어는 지식으로서의 언어, 즉 사실이나 사건 등 객관적 세계를 기록·보도하는 언어와는 달리 그것의 논리를 따지고 원칙을 따지는 '언어에 관한 언어'에 가깝다. 이와 같이 철학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언어와는 차원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으며, 지식으로서의 언어에 대해 철학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평가언어로서의 문학에 관한 얘기가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문학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있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문학과 철학이 언어의 기능상 완전히 종류가 다르고, 동시에 차원이 다름을 알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문학과 철학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관계를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문학과 철학에 있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가 가지는 기능이 더 확실해지고, 그럼으로써 철학은 철학으로서 문학은 문학으로서 더욱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문학과 철학과의 관계는 '문학 속의 철학'과 '문학철학'이란 측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리라 본다. '문학 속의 철학'은 하나의 문학언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예술작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작품 속에서 막연하게라도 제시된 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가 시간을 어떻게 보았는가, 그의 시간에 대한 관점이 예를 들어 칸트나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의 시간에 대한 관점과 어떻게 다른가, 혹은 프루스트의 시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은 어떠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혹은 사르트르의 작품 『구토』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관점은 무엇이고, 어째서 그와 같은 결론이 나왔으며, 그 이론이 논리적으로 정확한지의 여부를 따질 수도 있다. 또한 소포클레스나 아누이의 작품 『안티고네』에서 윤리의 기준이 어떤 것으로 결정되었는지, 혹은 최인훈의 『놀부뎐』은 어떤 형이상학을 갖고 있는지를 캐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가 문학 속의 철학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그러한 철학적 바탕을 잘 이해했을 때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 속의 철학은 어디까지나 문예비평과는 다르고, 다만 사상사에 대한 일종의 이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학 속의 철학과 달리 '문학철학'은 단적으로 말해서 문학 자체에 대한, 문학에서 제기되는 여러 원칙의 문제 등에 대한 분석이요 고찰이다. 이것은 미학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문학철학'이란 말은 물론 아직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는 아니지만 과학철학, 언어철학, 법철학 등과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며, 또 그러한 철학이 가능할 것임은 당연하다.
문학작품을 직접 읽지 않고도 우리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떤 작품을 걸작 혹은 졸작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과연 어떤 기준이 적용되었고, 그 기준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따져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작품을 아름답다, 혹은 깊이가 있다고 말하는데, 문학에서 아름답다거나 깊이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문학작품의 객관적 가치평가가 가능한가 아닌가, 그것이 가능치 않다면 어째서 그러한가 등의 문제도 따져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른바 미학의 문제요, 철학적 문제인 것이며, 문학철학의 근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문학과 철학에서 언어가 가지는 각각의 기능은 적잖이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철학이 문학보다 귀하다거나 문학이 철학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귀중한 기능이 있고, 철학은 철학으로서 문학이 못하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점은 문학과 철학이 가지는 엄연히 서로 다른 기능과, 그 두 범주에서 사용되는 두 종류의 언어가 가지는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철학의 가치와 문학의 가치를 보다 더 존중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