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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
작성자 철** 작성일 2017-12-27 조회수 360

철학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

 

지금까지의 언어기능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철학으로서의 언어가 어떤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이와 다른 경우의 언어와 어떻게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가를 대략 살펴보았다. 문학과 철학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아래에서 우리는 문학으로서의 언어가 어떤 것인가를 먼저 언급하기로 하겠다.

문학은 어떤 객관적 사실,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단적으로 말하여 우리는 문학에서 과학적 지식, 즉 물리학·수학·생물학·사회학 등에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지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작가도 독자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물론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어떤 문학작품들에서는 작가 혹은 주인공을 통해서 어떤 주장이나 이론을 전개하는 등 철학적 부분이 얼마든지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 즉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보는 경우와, 그러한 문제를 전혀 도외시하고 그 속에 나타나는 단편적 성분을 예술성과는 아무 연관 없이 끄집어내어 생각하는 경우를 확실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문학이라고 할 때, 우리는 언제나 단편적 부분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를 매개로 한 통일된 유기체로서의 전체 작품을 '문학언어'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작품 내의 인식언어는 문학의, 즉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직 그 언어가 유기체로서의 문학작품 전체에 어떤 기여를 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

한편 문학은 비인식적 언어로 기능하는 것이기에 행위언어와도 구분된다. 물론 한 문학작품이 독자로 하여금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정의감을 불타게 해서 독자에게 어떤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경우도 많고, 작가 자신이 그러한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이와 같은 것이 문학작품의 실질적 효과는 아니다. 이는 문학의 본질적인 것이 못 되며 단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만약 문학의 기능이 그러한 행동을 일으키는 데 있다면, 복잡한 작품을 쓰거나 혹은 읽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전문이라든가 설명서라든가 법령 등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경제적일 것이다.

인식언어도 아니요 행위언어도 아닌 문학은 그러므로 평가언어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 예술작품으로서의 문학은 어떤 지식의 전달이나 이론의 전개에 근본적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떤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문학작품은 어디까지나 한 작가가 자기의 체험, 교양을 밑바탕으로 해서 그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세계의 다양한 현실에 대해서 느낀 것에 대해 취하는 태도임과 동시에 여러 경험에 대한 그의 평가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문학은 언어를 통한 인생의 재체험이다.

물론 평가언어로서의 문학작품이 옳다든가 그르다든가 하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치평가 자체가 객관성을 띨 수 없기 때문이다. 가치란 인간의 감정 혹은 생각과 떼어서 볼 수 있는 사물이나 사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모든 사물, 모든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가치란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채워주는 것과의 관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치 일반의 성격을 알 때 문학의 가치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동물로서의 생리적 욕망을 비롯해서 알고자 하는 지적 욕망, 체험하고 느낀 것을 나타내는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등 인간은 좋든 나쁘든 여러 종류의 욕망을 동시에 갖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학은 과학과는 달리 인간의 표현욕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며, 문학에 있어서 표현의 매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언어이다. 작가는 스스로가 그런 욕망을 직접 스스로 충족시키고자 하며, 그것과 비례하여 자기가 쓰는 작품의 가치가 결정된다. 한편 독자는 자기 자신이 표현할 재능이 없기 때문에 남의 표현에 기대어 간접적으로 작가에 의해 표현되는 것을 봄으로써 독서를 즐기고 문학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경험일수록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것일 뿐만 아니라,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그러한 경험이란 아무리 깊고 새로운 것일지라도 희미한 것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희미한 경험이 '표현의 선수'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손을 빌어 표현되고, 그럼으로써 독자는 작품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고 새삼 참다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문학작품이란 이와 같이 지성 이전에 감성에 호소하며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학은 철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를 우리에게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독자에게 어떤 깊은 경험을 새삼 체험케 하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문학의 언어는 동원되고 언어 사용의 고유한 가치가 결정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철학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 (박이문의 문학과 철학 이야기, 2005. 5. 10., ㈜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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