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들은 언어는 인간의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들은 언어를 떠난 의식을 생각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역설같이 보일지 모르나 어떠한 종류의 언어로도 전혀 표현되지 않는 생각이나 느낌이란 있을 수 없다. 의식과 언어는 같은 심리현상의 표리(表裏)와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
모든 의식현상은 반드시 언어표현과 병행하지만, 의식현상은 이성의 활동으로서의 지적 측면과 감성의 표현으로서의 정적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하늘이 푸르다든가 혹은 높다고 할 때의 우리들의 의식은 지성의 측면을 나타내는 예이며 기분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할 때의 우리들의 의식은 감성의 측면을 나타내는 예가 되겠다.
이와 같이 완전히 다른 기능을 하는 두 개의 의식은 두 개의 다른 언어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같은 하나의 언어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언어가 지식의 지적 측면을 표현하는 것인지 혹은 지식의 감성적 측면을 표현하는 것인지가 혼돈되어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러한 언어기능의 혼란은 특히 문학과 철학의 혼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 문학애호가는 물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또는 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문학자 그리고 작가 중에서도 문학과 철학에 대한 명석한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듯하다.
사실 문학과 철학의 분야가 확실히 구별되지 않는 까닭은 대부분의 문학작품, 특히 고전으로 취급되는 걸작들이 예외 없이 선악이란 윤리적 문제, 진위(眞僞)의 인식적 문제,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에 대한 문제와 같은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도스토옙스키, 사르트르 혹은 카뮈 등 실존주의적 경향을 띤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철학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이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또 나름의 대답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감명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적지 않은 철학저서들이 우리에게 철학적인 내용뿐 아니라 문학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요약해 말하자면, 문학에서 완전히 철학적인 내용을 떼어버릴 수 없는 동시에 철학에서 문학적인 면을 떼어낼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철학이 아니며 아무리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철학저서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문학이 될 수는 없다. 똑같은 언어로 쓰인 두 종류의 언어의 표상은 이렇듯 논리적으로 각기 완전히 다른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문학으로서의 언어와 철학으로서의 언어는 어떻게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