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철학·상담학과
본문바로가기
ender
커뮤니티
자료실

자료실

'철학'의 분류적 뜻과 평가적 뜻
작성자 철** 작성일 2017-07-25 조회수 469

뒤샹의 「샘물」을 빼놓고는 현대 미술사를 얘기할 수 없게 되었고, 에셔의 「폭포」가 미술사가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들의 작품이 미학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이스나 베케트, 보르헤스를 빼놓고 서양의 현대문학을 논할 수 없는 이유도 그들의 작품이 일반대중을 감동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자체를 일종의 '철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존재양상의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철학은 넓은 뜻에서 정보·인지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한다. 그렇다면, 많은 문학작품이 그것의 철학적 내용 때문에 각별하게 읽히고 평가된다면 문학은 반드시 '철학적'이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뜻에서 그러한가?

문학 텍스트를 '철학적'이라 할 때, 우리는 이 언명의 의미는 두 가지로 구별해야 한다. 즉, '철학적'이라는 말에는 분류적 의미와 평가적 의미가 동시에 있다. 한 문학작품을 놓고 '철학적이다'라고 할 때, '철학적'이라는 낱말은 분류적으로는 그 문학작품이 철학의 범주 속에 내포됨을 뜻하는 반면, 평가적으로는 그 문학작품의 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후자의 경우 '철학적'이라는 개념은 곧 중요한 평가적 내포, 즉 '가치 있는'이라는 은유적 의미를 갖는다. '철학'이라는 개념이 이 같은 은유적 의미를 갖게 된 까닭은 철학적 주제가 가장 근원적인 물음의 대상이며, 철학적 사유가 가장 근원적인 대답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정리할 때, '철학적'이라는 말은 문학작품에는 분류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즉, 분류적인 관점에서 한 문학작품을 '철학적'이라 하는 것에는 논리상의 오류가 있다. 왜냐하면 문학과 철학이 구별된 이상, 문학 텍스트와 철학 텍스트는 서로 독립된 분류적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철학적'이라는 낱말은 오직 평가적으로만 문학작품에 적용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철학적 탐구대상이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존재이며, 철학적 사유의 성격이 가장 엄격하고 체계적이란 사실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학작품은 철학적이어야 한다"라는 말은 문학 텍스트를 철학 텍스트처럼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의 모든 문제를 깊이 그리고 넓게 생각하게 하는 문학작품, 즉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예술의 보편적 기능이 그러하듯이 문학의 핵심적 기능이 이미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알고 있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르게 새롭게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있다면, 그러한 문학작품의 창작은 모든 차원에서 관습적 또는 상식적인 것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작업이 될 것이며, 한 문학작품의 가치는 이러한 기능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의 가치는 그것에 담겨있는 철학적 깊이로만 평가될 수 없고 문체, 언어적 기교 등 수사학적 가치도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꽃이 다 같이 아름답고, 엉터리 학생이나 교수도 분류적으로는 역시 학생이나 교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깊이 혹은 가치가 없는, 즉 '철학적'이지 않은 엉터리 문학작품도 분류적으로는 역시 '문학작품'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분류적으로는 문학이 반드시 '철학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철학적이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박한, 즉 '비철학적' 문학작품이 득세하는 오늘의 문학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능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기능은 문학적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및 사회 전체의 시각에서 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철학'의 분류적 뜻과 평가적 뜻 (박이문의 문학과 철학 이야기, 2005. 5. 10., ㈜살림출판사)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18830&cid=41884&categoryId=41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