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왜 논어에 주목하는가? ⑤ | |||||
작성자 | 철** | 작성일 | 2017-07-25 | 조회수 | 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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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왜 읽어야 하는가?
공자처럼 실패를 많이 겪은 사람이라면 왠지 차갑고 우울하고 거친 성격을 가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하지만 『논어』의 첫 장 첫 구절에서 ‘즐겁다’, ‘기뻐하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만나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공자가 실패로 인해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는 개인적으로 가난하고 불우한 삶을 살면서도 참으로 단단한 인품의 소유자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편안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는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초월할 수 있는 최고 경계에 도달했다. 즉 인간의 한계 안에서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최고치에 이르려고 했다는 점에서 위대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사람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려면, 자신의 삶을 제대로 건사하고 주위를 편안하게 하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자세를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자유주의만이 아니라 신분 사회 또는 특권 사회에서 더 큰 울림을 갖는 말이다. 신분이 지위를 결정할 경우 자격 없고 자기 조절력이 없는 사람이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공동체는 재앙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면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고 공정과 신뢰의 가치를 저버려서 공동체가 멸망의 길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렇게 수기치인을 강조했기 때문에 동아시아 사회는 어떤 공동체보다 내부적으로 전쟁의 충돌보다 평화의 공존이라는 장기적인 안정을 누렸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공자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자 사상의 영향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공자로부터 2500년이 지난 시간대를 살고 있다. 공자 시대에 비해 문명과 정의 그리고 평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공자 시대처럼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이후의 삶을 결정하지 않고,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개성과 이상을 맘껏 발휘하고, 사람과 사람이 공통의 규범을 준수하여 인간미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고, 사람과 사람 그리고 국가와 국가가 호혜성에 따라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시대의 “아직 아니다”가 공자 시대의 “아직 아니다”와 다르다. 하지만 “아직 아니다(not yet)”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논어]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모든 ‘사상 자원’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옛날처럼 공자 [논어]의 위상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논어]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 왜 논어에 주목하는가?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대를 초월한 인생 교과서 (논어 명언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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