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왜 논어에 주목하는가? ② | |||||
작성자 | 철** | 작성일 | 2017-07-25 | 조회수 | 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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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學)으로 시작해서 명(命)으로 끝나다 [논어]를 제대로 한번 읽어 보겠다고 마음먹지만, 진입 장벽이 높다. 일단 [논어]는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한문을 모르면 감당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문으로 된 [논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논어]와 그 해설을 함께 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들추면 마음이 달라진다. 읽으면 이해될 줄 알았는데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 우리는 지도를 살피고 내비게이션을 켠다. 내용 파악이 잘 되지 않는 [논어]를 읽는 데도 길잡이 역할을 하는 친절한 안내가 필요하다. 첫 장 첫 구절과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을 살피면 [논어]를 읽을 수 있는 ‘지도’를 갖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
동아시아 문화에는 유일신이 없다. 사람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기를 겪을 때 기도하여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힘에 의존해서 위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 극복의 매뉴얼이랄까 집단 지혜의 결실이 전통이고 문화이고 경전이다. 후대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닥친 문제나 앞으로 겪을 문제를 풀려면 결국 전통과 문화와 경전을 배워서 구체적인 답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논어]의 첫 장 첫 구절이 ‘학(學)’ 자로 시작되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과거의 지혜를 배우고 ‘시습(時習)’을 통해 나의 것으로 만들면, 어떠한 상황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된다. 그러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명(命)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바뀌지 않고 그냥 사람에게 주어진 측면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명은 한계이다. 사람은 노력에 따라 다양한 실력(성적)의 차이를 보이는데, 명은 한계 중에서 가장 최고의 상태에 이른 측면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명은 최대치이다. 만약 한 사람이 개인과 공동체의 한계와 최대치를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축구를 좋아하지만 재능도 떨어지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메시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고 한다면, 되고 싶은 욕망과 되지 못하는 현실의 사이에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목표를 너무 높게 책정하면, 노동자들은 일 년 내내 달성하지 못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질책을 당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명(命)을 모르면, 사람들이 끊임없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과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군자라면 반드시 명(命)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논어]의 첫 장 첫 구절은 사람에게 ‘지금의 나’와 다른 나를 꿈꾸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길을 찾으라는 격려를 하고 있고,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은 사람이 ‘지금의 나’와 다른 ‘미래의 나’를 어디까지 추구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 왜 논어에 주목하는가?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대를 초월한 인생 교과서 (논어 명언명구)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9009&cid=59054&categoryId=5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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