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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톤
작성자 철** 작성일 2019-06-27 조회수 788

가상과 실제 사이에서 감각들을 설계한다

 

 

· 당신 손 안의 우주

룸톤(Roomtone)의 2018년 작품 [뎁스 오브 서클]에서 관객이 최초로 보게 되는 것은 잉태한 태아의 이미지다. 이는 곧 행성의 이미지로 바뀌며 행성들의 충돌과 결합이 자아내는 스펙터클을 상영한다. 관객은 자신이 우주 안의 미미한 존재임을 느낀다. 그러나 곧 손 안의 우주인을 바라보며 실은 우주를 품을 수 있는 거대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여인의 무의식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킨 이 작품은 뚜렷한 서사도, 명확한 캐릭터도 없지만 대신 상호작용 가능한 거대한 환경을 선물한다.

HMD(head-mounted display)를 쓴 채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룸톤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들은 게임 같다고 생각해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만지고 조작해 보기도 한다. 룸톤의 작품은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 사운드, 햅틱, 시각 등 확장 가능한 감각들을 선사한다. 지금 룸톤의 작업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는 마땅치 않다. 우리가 유선전화시대로 돌아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터넷 1인 방송과 BJ를 설명한다고 가정해보자. 새로운 기술 미디어를 소개할 순 있어도 그 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욕망과 표현을 이해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 룸톤은 만질 수 있고 둘러볼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드는 아티스트라고.

룸톤, [Depth of Circle](가상현실, 비디오 설치, 2018)

룸톤, [Depth of Circle](가상현실, 비디오 설치, 2018)Virtual Reality,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 완성되지 않은 VR 문법에 도전

룸톤은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칼레이도스코프 국제 VR 영상 페스티벌에서 VR이라는 매체가 가진 표현적 가능성을 경험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에 가상환경 안에서 다양한 표현과 이야기를 시도해보고자 팀을 결성하였다. 두 사람의 관심사였던 게임, 스토리, 사운드, 미디어아트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예술 형태라고 생각했기에 쉽게 의기투합했으나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VR 제작 기술을 배울 곳도 없었고 연출법에 대한 자료도 많지 않았기에 대부분 독학으로 해결하였다.

인터렉티브 단편영화 [러브 미](2017)을 만든 이후 강렬한 전자음악과 추상적이면서 즉각적인 시각 반응이 인상적인 작품 [사운드스케이프](2017) 또한 선보였다.

룸톤, [SOUNDSCAPE](가상현실, 2017)

룸톤, [SOUNDSCAPE](가상현실, 2017)Virtual Reality, Video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VR 작품은 영화와 달리 관객의 시야를 강제할 미장센이 없다는 것이 연출의 특징이다. 작가의 의도를 담은 가장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고자 할 때조차 관객은 주변을 여전히 두리번거리거나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김동욱은 이렇게 말한다.

“룸톤의 작업에도 역시 의도는 있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탐색하고 때로는 주된 메시지를 넘어 플레이하는 일까지 디자인하는 것이 저희의 의도입니다. 하나의 메시지보다는 다양한 메시지가 발화되는 환경을 설계하고자 합니다.”

이 점에서 그들의 작명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룸톤(Roomtone)은 영상에서 주변의 배경음, 주로 하나의 공간감이 이어지게 만드는 화이트 노이즈 등을 가리킨다. 흔히 주인공의 대사나 배경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룸톤이 일정하지 않으면 관객은 공간의 연속성이 망가졌다는 것을 금세 알아챈다. 룸톤은 자신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캐릭터나 사건을 감싸는 ‘분위기’에 가깝다고 말한다. 룸톤은 이 분위기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였다.

룸톤 전진경 작가에 의하면 그들의 작업은 아직 VR 문법이 정립되지 않은 만큼 게임의 문법이나 영화에서 시도하는 실험적인 테마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룸톤은 상호작용 디자인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구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게임만큼 앞서나간 매체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게임의 문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성공한 연출기법을 더 급진적으로 전유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관점에서 경험한 게임 중에 룸톤은 [인사이드](2016), [에디스 핀치의 유산](2017) 등을 인상깊게 플레이 했다고 한다.

짧은 이력이지만 룸톤 작품들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 등 뒤에서 갑자기 거인([사운드스케이프](2017))이 등장한다거나 한 눈에 파악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행성([뎁스 오브 서클](2018))이 다가오는 등 지극히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발화자의 정체가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인 더 그레이](2019))들이 작품마다 공통적으로 연출되어 있다. 룸톤은 놀라움과 경이감, 현실에 대한 의구심을 VR체험이 가지는 강점이자 서사적 동력으로 적극 사용하고자 한다.

룸톤, [IN THE GRAY](가상현실, 비디오 설치, 2019)

룸톤, [IN THE GRAY](가상현실, 비디오 설치, 2019)Virtual Reality, Video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또한 룸톤의 작품 내 사운드는 단순한 배경음의 역할에 멈추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리듬을 부여하고 질주의 방향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김동욱의 작품이다. 반면 전진경은 작품의 내러티브적 배경을 꾸며 긴 시간 몰입할 수 있는 서사 플로우를 마련한다. 때로는 사운드 위에 서사를, 반대로 서사 위에 사운드를 얹어가며 양자가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 룸톤의 미래, 미래의 룸톤

미래의 룸톤에게 혹시 필요한 오버테크놀로지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김동욱이 대답했다. “리얼리티는 원격 촉각 기술이나 고성능의 실시간 렌더링 기술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현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룸톤은 연구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질문하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도 더 명확해진다. 여기에 전진경은 “장래에 VR 기술보다 진보한 기술이 등장한다면 스토리텔러로서 그것을 활용하는 것에 망설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번거로운 HMD를 쓰지 않고 초고해상도인 우리 눈을 통해 가상의 공간을 바로 구현할 방법이 있다면 정말 좋겠죠”라고 첨언했다.

룸톤, [OS](가상현실, 설치, 2019)

룸톤, [OS](가상현실, 설치, 2019)Virtual Reality, Variable dimensions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도착](1895)을 최초로 상영했을 때,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기 위해 몸을 피했다. 그 당시 스크린을 보는 사람들은 저 너머의 세계가 지금 여기에서 상영되는 것만으로도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 스펙터클한 체험이 매우 개인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인정받기까지 거의 50 여년이 걸렸다. VR의 역사에서 보았을 때 룸톤은 이제 겨우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도착]을 상영했던 순간 바로 다음쯤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룸톤은 단순한 비디오 설치가 아닌 장소 특정적 작업을 할 계획이다. 기왕 미술관에 들어온 가상현실 작품이라면 꼭 그곳에서 봐야만 하는 의미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속의 체험이 전시공간과 연관을 맺는 방식으로 가상과 현실을 연결해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 시작이 [OS](2019)이다. 동시에 내년엔 스팀(Steam) 같은 게임플랫폼에서 선보일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트게임, 인디게임으로 분류되겠지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과거의 말로 미래를 설명하곤 하지만 미래는 언제나 매끈하게 빠져나간다.

오영진 / 기술문화연구자


· 추천의 변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에 일으킬 변화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 기술인 가상현실. 시각 예술 내에서도 가상현실을 창작에 활용하는 실험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기술적 완성도와 미학적 성취를 일정 정도 이뤄낸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많은 경우, 단순히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에 그치거나 작가의 주제의식이 드러나지 못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예술의 영역 내에 기술이 ‘안착’되고, 창작에서의 새로운 가능성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김동욱, 전진경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콜렉티브 룸톤 스튜디오는 가상현실기술이 시각 예술의 영역에 안착한 ‘좋은 예’를 보여준다. 영상디자인을 전공한 룸톤의 멤버들은 대학 졸업작품으로 VR 게임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가상현실을 접목시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의 공공 스크린인 COMO에서 구현된 [Depth of Circles](2017), 서울 국제 뉴미디어 아트페스티벌 등에 이어 이들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2018 zero1day에서이다. VR 영상 [In the Gray](2018)은 주제와 형식 면에서 가상현실 기술이 인간과 기계의 경계, 인공지능의 문제 등 작가가 표현하려는 주제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상현실의 세계와 종종 비유하는 꿈은 인류가 현실의 다양한 제약을 벗어난 비전을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자 오류와 불확실성으로 채워진 곳이다. [In the Gray]는 인공 의식을 가진 기계가 인간의 꿈을 통해 오류와 휴머니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다. 영상 속에 펼쳐지는 꿈 속의 풍경은 가상현실이 표현하기에 최적화된 풍경이며, 동시에 가상현실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비로소 표현이 가능해진 풍경이다. 꿈을 꾸는 중에 우리의 물리적 신체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 경계를 오간다. 룸톤의 VR 영상은 그와 유사한 체험으로 우리를 몰입시킨다. 꿈에 대해 학습된 기억을 가진 만큼, 꿈의 세계에 대해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룸톤은 새로운 기술이 우리 사회와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적극적으로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래서 그 여행은 낯설면서도 이미 가 본 길인 듯 편안하며, 편안하면서도 신선하다. 그래서 이들의 다음 여정이 궁금해진다.

추천인 이수정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룸톤(ROOMTONE)

VR과 게임을 제작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팀이다. 작가 전진경, 김동욱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과를 전공하였으며 아트와 테크놀로지, 게임의 경계에서 다양한 내러티브 방식을 실험하며 작업한다. 2017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Nemaf), 2018년 뉴욕 독립영화제(NYC Independent Film Festival), 아트센터 나비 [Depth of circle]와 제로원데이(ZER01NE DAY), 2019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협동전 [Future Humanity]등 국내외 다양한 전시와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룸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roomtone.studio
? 룸톤 페이스북 : https://web.facebook.com/studio.roomtone

[네이버 지식백과] 룸톤 - 가상과 실제 사이에서 감각들을 설계한다 (헬로! 아티스트, 네이버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