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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유의 출발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7-16 조회수 436

 

탈레스의 한계

철학은 ‘아르케(arche)’를 찾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최초의 철학자는 탈레스(Thales, 기원전 ?~?)지만, 정작 ‘아르케’라는 낱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다. ‘아르케’는 모든 것의 ‘근원’ 혹은 ‘원리’를 가리킨다.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을 단 하나의 원리로 설명한다? 얼마나 획기적인 발상인가. 어쩌면 이 멋진 발상이 오늘날의 과학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부조, 그리스 원작의 로마 시대 모각

아낙시만드로스의 부조, 그리스 원작의 로마 시대 모각

이를테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생각해보라. 산소와 수소가 반응해 물로 변해도 총질량은 반응 전후가 동일하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어떤가. 전기에너지가 화학에너지로 바뀌어도 전환 전후 에너지 총량에는 변함이 없다. 이처럼 대부분의 과학 법칙에는 형태의 변화 속에서도 늘 변함없이 머무는 그 ‘하나’가 존재한다. 그 ‘하나’를 찾는 과정에서 과학이 태동한 것이 아니겠는가?

탈레스의 아르케는 물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게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가 추정한 대로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이 땅 위의 어떤 생명체도 물 없이 살 수는 없다. 나아가 고대의 여러 문명에서도 세상이 물에서 나왔다는 신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은 기온에 따라 액체 · 기체 · 고체의 상태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물은 응결하면 얼음이 되고, 증발하면 수증기가 된다. 고대인들은 수증기를 공기와 동일시했다. 이 때문에 세상의 모든 다양성의 근원이 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의 이론을 반박한다. 의심 없이 믿어지는 신화와 달리 철학은 이처럼 비판을 허용한다. 신화와 구별되는 철학의 특성이다. 스승의 이론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비판은 매우 예리하다.

세상은 물 · 불 · 공기 · 흙 등 다양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요소 각각은 상이한 성질을 갖고 있다. 물은 축축하고, 흙은 건조하고,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 만약 이들 원소 중 하나가 아르케, 즉 다른 모든 것의 근원이라면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불과 물은 서로 상극이므로 물이 아르케라면 애초에 불은 거기에 잠겨 오래전에 꺼졌어야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불이 아르케라면 물은 뜨거움으로 인해 오래전에 증발해 사라졌어야 한다.1)

결국 진짜 아르케에는 차갑거나 뜨겁거나 건조하거나 축축하거나 하는 구체적 성질이 일절 없어야 한다. 특정한 성질을 가진 원소가 아르케라면 그 막강한 힘으로 반대 성질을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전체에 적용되는 원리가 그 전체의 부분집합일 수는 없다.

따라서 진짜 아르케는 차가운 것, 뜨거운 것, 건조한 것, 축축한 것 중 하나가 아니라 그것들의 차이 ‘너머’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건조한 것과 축축한 것 등 구체적 성질들은 바로 그 ‘너머’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다. 서로 충돌하는 성질들이 흘러나오는 이 공통의 근원을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apeiron)’이라 불렀다. 이는 무한자 혹은 무규정자, 즉 한계가 없는 것 혹은 규정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형이상학의 탄생

여기서 밀레투스의 자연철학은 처음으로 형이상학(metaphysics)의 수준에 도달한다. 형이상학은 글자 그대로 경험적 자연(physis) 너머(meta)의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탈레스의 ‘물’,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아낙시메네스의 ‘공기’는 아르케라고는 하나 모두 일상에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자연의 원소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들을 ‘자연학자(physikoi)’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에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아페이론은 우리의 일상적 체험을 넘어서 있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속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페이론은 구체적 자연의 저편에 있는 추상적 실체다. 이렇게 철학이 경험적 자연(physis) 너머(meta)로 눈을 돌릴 때, 그것은 형이상학(metaphysics)이 된다.

아낙시만드로스에 따르면, 아페이론에는 기원이 없다. 그 자체가 기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원은 무한하다. 그것은 그로부터 모든 것이 끝없이 생성되어 나오고, 그 속으로 모든 것이 끝없이 소멸해 들어가는, 일종의 근원적 카오스다. 헤시오도스(Hesiodos, ?~?)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카오스를 닮았지만, 신화 속의 카오스와 달리 아페이론은 탈()인격적인 존재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사상을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저술에 나오는 간접 인용을 통해서 짐작할 뿐이다. 그의 언급 중에서 직접 인용된 것은 딱 한 구절뿐이다. 6세기의 사료 편찬가 심플리키오스(Simplikios, 480?~550?)는 그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사물들은 그 죗값에 따라 자신들이 생성되어 나온 그것 속으로 또한 소멸해 들어간다. 왜냐하면 시간의 법령에 따라 그것들은 각자 저지른 불의에 대해 서로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2)

우주의 법칙을 얘기하는데 ‘죗값’이나 ‘대가’라는 말이 사용되는 게 흥미롭다. 무슨 뜻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먼저 물리적 해석을 보자. 사물들이 아페이론으로부터 생성될 때 우주에 교란이 일어난다. 이때 깨진 균형을 만회하기 위해 그와 대립된 성질의 사물이 나타나고, 또 이놈이 일으키는 새로운 교란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놈이 나타난다. 이렇게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들로 연쇄적으로 교체되면서 우주는 무한히 생성 · 소멸한다는 것이다. 한편, 윤리적 관점에서는 이 구절이 우리에게 모든 것의 생성과 소멸을 관장하는 법칙이 ‘정의’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이 우주적 ‘정의’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윤리적 모범이 된다.

공간의 발명

아낙시만드로스에 따르면, 아페이론은 모든 사물의 바탕에 깔려 있는 ‘기체()’이자 그것들의 생성과 소멸을 관장하는 ‘원리()’다. 지구 역시 한계도 없고 형태도 없는 그 혼돈의 기체로부터 만들어진다. 흥미롭게도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지름의 삼분의 일 높이의 두께를 가진 납작한 원통이라 생각했다. 이 원통을 천체들이 둘러쌈으로써 오늘날의 우주가 탄생했다는 것인데, 그 시작을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품은 싹이 무한자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어서 그 씨앗으로부터 구형()의 불덩이가 자라나, 마치 목피가 나무 주위를 두르듯이, 지구를 둘러싼 증기 주위를 감쌌다.3)

아낙시만드로스의 지구

아낙시만드로스의 지구

이어서 아낙시만드로스가 설명하는 우주의 탄생 과정을 보자. 이 ‘구형의 불덩이’는 곧 몇 개의 고리로 쪼개져 증기에 둘러싸인다. 바퀴의 튜브처럼 생긴 고리들 안에는 불덩이가 갇혀 있는데, 고리의 표면에 피리처럼 구멍이 나 있어 안쪽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것이 해요, 달이요, 별이라는 것이다.

지구를 둘러싼 고리 중 가장 안쪽의 것은 별의 고리이고, 중간 것은 달의 고리, 가장 바깥의 것은 해의 고리다. 해의 고리에는 대략 지구 크기의 구멍이 나 있는데, 구멍의 크기는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달의 고리의 구멍은 주기적으로 열렸다 닫히며, 별의 고리에는 하나가 아니라 많은 수의 구멍이 나 있다. 월식과 일식은 고리의 구멍이 막혀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고리들이 약간 틀어진 각도로 원반 모양의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고 보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우리 눈에는 황당해 보일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발상이었다. 왜? 첫째, 적어도 이 우주 모형에서 지구는 아무 지지대 없이 우주에 떠 있다. 힌두의 ‘세계 거북(World Tortoise)’은 말할 것도 없고, 탈레스만 해도 지구를 무한히 큰 바다가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던 시대였음을 생각해보라.

둘째, 이 모형에서 해와 달은 완전한 원을 그리며 지구 아래로까지 내려가 궤도운동을 한다. 만약 지구 아래에 무한한 바다가 있다고 생각한 당시 세계상에 따르면 이 원환 운동은 불가능하다. 셋째, 이 모형에서 해는 달 뒤에, 달은 별 뒤에 위치한다. 당시에는 천체란 지구를 덮은 반구형() 천개()에 난 구멍이므로 모두 지구로부터 등거리에 있다고 믿었다. 비록 원시적이지만 그는 이처럼 사상 최초로 공간에 대한 현대적 관념을 제시했다.

반구형 우주. 〈리베르 크로니카룸〉, 1493년

반구형 우주. 〈리베르 크로니카룸〉, 1493년

진화론의 아버지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모형은 내가 아는 한 역사상 최초의 천구() 모형이다. 그는 그 밖에도 당시 알려진 세상의 전부를 담아 지도를 만든 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역시 내가 아는 한 역사상 최초의 세계지도다.

고대의 어느 저술가는 “탈레스의 제자인 밀레투스의 아낙시만드로스가 최초로 서판 위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지도를 그렸고, 그 뒤를 이어 역시 밀레투스 사람으로 많은 여행을 했던 헤카타이오스(Hecataeos, 기원전 550?~476?)가 그 지도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 세인의 감탄을 샀다.”라고 전한다. 그들이 그린 지도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지만, 그것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추정해서 그린 후세의 그림이 남아 있다. 그 지도에서 세상은 지중해를 가운데 낀 유럽과 아시아, 리비아의 세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원전 6세기경 아낙시만드로스가 생각한 실린더 형 지구
헤카타이오스의 세계지도
 

기원전 6세기경 아낙시만드로스가 생각한 실린더 형 지구(레옹 베넷, ‘하늘의 역사’, 1872년)와 헤카타이오스의 세계지도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의 가장 놀라운 유산은 따로 있다. 서지학자 아에티우스(Aetius, 1세기?~2세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전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초의 생물은 습기 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처음에 그것들은 비늘이 난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른땅으로 나와 살게 되었는데, 그 껍질이 떨어져 나간 후에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았다.4)

한마디로 인간이 물고기 같은 생물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과학적 주장이 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는 왜 인간이 다른 동물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을까?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46?~120?)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한다.

나아가 그는 처음에 인간은 다른 종류의 생물로부터 태어났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스스로 살아나간다. 오직 인간만이 돌봐줘야 할 시간이 길다. 그러므로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5)

다윈에 수천 년 앞서 인간의 기원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다니엘 리, ‘기원’, 1999~2003년

다니엘 리, ‘기원’, 1999~2003년

아낙시메네스

탈레스에게서 시작된 자연철학은 아낙시만드로스를 거쳐 그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85?~528?)에게로 이어진다. 아르케 탐구를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본 것은 아낙시메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스승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르케를 아페이론, 즉 ‘무한하며 규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본 반면, 아낙시메네스는 그것을 ‘무한하나 규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공기’다. 아낙시메네스의 아르케는 공기였다. 아르케는 모든 것의 원료이자 그것들을 움직이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는 ‘공기’와 숨결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6) 숨은 생물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그에게 공기란 세상 모든 것의 원료이자 그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리였던 셈이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기의 휘산(rarefaction, )과 응축(condensation)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심플리키오스는 이렇게 전한다.

(공기는) 그 희박성이나 밀도에 따라 본질이 달라진다. 공기가 휘산하면 불이 된다. 반면 공기가 응축하면 바람이 되고, 이어 구름이 되고, 거기서 더 응축이 되면 물이 되고, 이어서 흙이 되고, 그 다음에는 돌이 된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이것들로부터 나온다.7)

휘산과 응축에 의해 사물의 순환이 일어나는 것은 일상에서 관찰 가능한 현상이다. 이를테면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그것이 응결하여 비가 되고, 그것이 땅에 떨어져 강이 되고, 그것이 다시 증발한다. 아마도 그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뜨거움과 건조함은 휘산에 속하는 반면, 차가움과 축축함은 응축에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역시 일상의 경험적 관찰로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입을 벌린 채 손바닥에 숨을 내쉬어보라.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닫힌 입술 사이로 바람을 불어보라. 그때 공기는 차갑게 느껴진다. 고로 성김은 뜨거움, 빽빽함은 차가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물의 순환

물의 순환

아낙시메네스가 ‘공기’라는 구체적 원소를 아르케로 내세운 것은 개념적 후퇴인지도 모른다. 그의 스승 아낙시만드로스는 특정한 원소가 아르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원리가 그 모든 것의 부분집합일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그는 구체적 원소 대신에 ‘아페이론’이라는 추상적 실체를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에도 아낙시만드로스의 것보다 개념적으로 앞선 측면이 있다. 응축과 휘산의 개념으로 물질의 변환 원리를 명확히 설명했다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에는 생성과 소멸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빠져 있었다.

응축이 사물의 질적 변환을 낳는다는 발상은 양모를 압착해 펠트를 만드는 기술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지구는 공기가 평평한 원반 모양으로 압착된 것이라 한다. 그 지구는 거대한 공기쿠션 위에 떠 있다. 이 원반 모양의 지구에서는 압착된 공기들이 휘산하여 하늘로 증발한다. 공기는 휘산을 통해 불이 되는데, 그 불들이 천공에서 해와 달과 별이 된다.

그는 해와 달이 공기에 얹혀 떠다니는 원반이라 보았다. 별에 대해서는 전승이 엇갈린다. 어떤 전승은 별들이 붙박이라 하고, 또 어떤 전승은 별들 역시 떠다닌다고 한다. 태양은 지구 아래까지 내려가지 않고 중천에서 지평선에 걸쳐 비스듬히 회전한다. 결국 반구형 우주론을 주장한 셈인데,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것에 비해 개념적으로 많이 뒤쳐져 있다.

아낙시메네스의 우주

아낙시메네스의 우주

아낙시메네스는 여러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과학적 설명을 남겼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진은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거나 홍수로 산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생긴다. 번개는 강한 바람에 의해 구름이 세차게 갈라질 때 발생하며, 무지개는 응축된 공기인 구름에 햇빛이 비출 때 발생한다. 그리고 우박은 빗물이 얼어붙은 것이란다.

옳은 관찰도 있고 틀린 관찰도 있지만, 두 스승처럼 그 역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더 이상 신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물론 전통적인 반구형 우주관으로 돌아간다든지, 아르케의 후보로 ‘공기’라는 구체적 원소를 내세우는 등 몇 가지 면에서 그는 외려 스승보다 개념적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질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농도의 양적 차이로 환원시킨 것은 이후 과학적 사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낙시메네스의 사상은 때로 스승의 것보다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개념적 후퇴는 두 위대한 스승의 사상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공기’의 개념은 탈레스의 ‘물’과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의 성격을 종합한 것에 가깝다.

이로써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지는 밀레투스 철학의 여정이 끝났다. 이 모든 여정의 처음에 위대한 스승 탈레스가 있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os, 180?~240?)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Leben und Lehre der Philosophen)〉에는 아낙시메네스가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0?)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서 아낙시메네스는 큰 스승 탈레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엑사미아스의 아들 늙은 탈레스의 말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평소처럼 별들을 관찰하기 위해 시종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간 그는 관찰에 몰두한 나머지 주위를 살피는 것을 잊었다가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밀레투스 사람들은 그들의 천문학자를 이렇게 잃었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우리는 그를 늘 기억해야 하며, 우리의 자식과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모든 연구의 출발점에 탈레스가 있을지어다.8)

[네이버 캐스트] 과학적 사유의 출발 - 아페이론 (철학 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