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개념이 철학적 논의의 핵심에 등장한 것은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가 마음-몸, 정신(mens)-물체(corpus)라는 두 실체론을 폄으로써였다. 데카르트의 이 두 실체론은 기독교적 전통 사고와 새로운 수학적 자연과학의 지식을 화해시키려는 시도의 산물로서, 그것은 계몽주의 시대가 철학자에게 한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체'란 "그것이 존재하는 데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Descartes, Principia philosophiae, Ⅰ, 51)을 말한다. 그러니까 실체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정대로라면 절대자인 '신'만을 실체라 할 터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의식[생각]이라는 본성을 가진 정신과 연장성[공간적 크기]이라는 본성을 가진 물체는 상호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러므로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res)이라는 뜻에서 각각 실체라고 말한다. 이 제한적 의미에의 실체 이원론을 인간의 존재 구조 설명을 위한 이론으로 원용하면서 '심신 이원론'과 함께 '심신 상호 작용설'이 나왔고, 이로부터 현대 심리철학의 제 문제는 발단한다.
데카르트는 "나란 정확히 말해 다름 아니라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며, '생각하는 것'이란 곧 '정신'·'영혼'·'지성'·'이성'이라고 풀이하고, '나[자아]=생각[의식]하는 것=정신[마음]'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이것과는 다른 '물질적인 것'(res materialis) 또한 "존재"한다고 말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생각함을 본성으로 갖는 '나'라는 실체는 "존재하기 위해 아무런 장소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떠한 물질적인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Discours de la Methode, Ⅳ, 2) "이 나는, 곧 나를 나이게끔 하는 정신은 신체[물체]와는 완전히 구별되며, […] 설령 신체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인 바 그대로 온전히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같은 곳) 더 나아가, "완전한 존재자로서 신이 […] 존재한다는 것은 기하학의 어떤 논증보다도 더 확실"(같은 책, Ⅳ, 5)하고, 세계 내의 모든 "물체들", "지성적인 것들", 기타 "자연물들" 모두가 "그것의 존재를" 이 완전한 자의 "힘에 의지하고 있고, 이것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같은 책, Ⅳ, 4)
데카르트의 이 문맥에서, '나'라는 정신이나, 모든 것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완전한 '존재자'로서 신이나 공간상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심지어 데카르트는 그것은 공간적인 존재자가 없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어떤 존재자가 논의되는 자리에서라면 언제나 묻기 마련인, "그것은 언제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신'을 포함해 이른바 '정신'이라는 존재자에게는 물어질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슨 뜻에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나'라는 지성에 의해 명석 판명하게 지각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존재자라 한다면, 그래서 불명료한 감각이나 "상상"에 의해서 파악되는 물리적인 존재자보다도 훨씬 더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같은 책, Ⅳ, 6)이라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인 '신' 및 '나'에 비해 차라리 '물체'는 가상(假象)적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에 물체를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면, 물체와는 전혀 다른 것인 '정신'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존재자가 아니라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명석하지 못했던 데카르트의 반성은 '정신'의 본질적 성질인 '생각[의식]'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서 더욱더 모호함을 드러낸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것으로서 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것은 곧, 의심하고, 통찰하고, 긍정하고, 부정하고, 의욕하고, 의욕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Meditationes, Ⅱ, 8)고 대답한다. 정신 실체로서 '나'의 적어도 한 가지 활동은 '감각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란 신체에 대해 독립적인 것이고, 공간상의 장소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 했다. 대체 이때 신체 없는 내가 '감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데카르트는 실체로서의 '정신'을 내세우면서도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적어도 지각 활동에서는 신체 의존적임을, 그러니까 더 이상 실체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로크(J. Locke, 1632~1704)는 정신 실체를 이 방향으로 계속 끌고 가 마침내 그 존재가 해소될 처지에 놓이게 한다.
로크에서 '실체'는 일종의 복합 관념이다. 그는 실체란 마음에 주어진 단순 관념들이 "그 안에 존속하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어떤 기체(基體)"(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Essay], ed. A. C. Fraser, Bk Ⅱ, ch. 23, sect. 1)라고 규정하기도 하고, "우리 안에 단순 관념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성질들, 즉 보통 우연적인 것들이라 일컬어지는 그런 성질들을 담지하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단지 가정된 것"(같은 책, Ⅱ, 23, 2)이라고 부연하기도 한다.
그런데 로크는 이렇게 '실체'를 규정한 후에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실체를 "세 종류" 곧 신, 유한한 정신들(finite spirits), 물체들(bodies)로 나눈다. 여기서 로크는 데카르트처럼 단지 '정신'이라는 것 그리고 '물체'라는 것을 말하는 대신, '정신들'과 '물체들'을 말함으로써 다수의 셀 수 있는, 그러니까 서로 구별되는 정신들과 물체들을 거론하고 있고, 이것은 아직 데카르트에게는 의식되지 않은 더 많은 '심신의 문제들', 예컨대 마음과 몸의 '개체성', '자기동일성' 따위의 문제들까지도 문제의 전면에 등장시킨다.
로크에서 "유한한 정신들"에 속하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들'이란 이렇게 한 묶음으로 지칭될 수 있는 한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복수인 점에서 서로 구별되는 개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 중의 하나인 '나'는 개별성을 가지며, 하나의 '나'는 다른 '나들'과 구별되는 한에서는 자기 동일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한 실체로서 "신은 시작도 없고, 영원하고, 불변적이고, 무소부재하고, 그러므로 그것의 동일성에 관해서 어떠한 의문도 있을 수 없다."(같은 책, Ⅱ, 27, 2) 그러나 유한한 정신들을 포함해서 유한한 실체들은 어느 것이나 "존재하기 시작하는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가지며, 그 시간과 장소와의 관계는, 그것들 각각이 존재하는 동안, 언제나 그것의 동일성을 결정할 것이다."(같은 곳)
우리는,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어떤 것이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가 어떤가의 비교를 통해 어떤 것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얘기할 수 있다.(같은 책, Ⅱ, 27, 1 참조) 이때 우리가 구하는 것은 개별성의 원리다. 즉 이때 우리는, "어떤 것은 무엇에 의해서 바로 그 '어떤 것'이 되는가?"를 묻는다. 물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이 동일한 한에서 바로 '그것'이다. 만약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들의 일부 또는 대부분이 바뀌면, 더 이상 '그것'이 아니다.
그런데 "생물들의 상태에서는, 그것들의 동일성은 같은 분자들의 덩어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생물들에서는 물질의 큰 뭉치의 변이가 동일성을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묘목에서부터 큰 나무로 자라 베어지는 참나무는 줄곧 같은 참나무이다. 말로 성장하는 망아지는 때로는 살찌고 때로는 마르지만, 언제나 같은 말이다."(같은 책, Ⅱ, 27, 4) 다시 말해, 한낱 물체는 "어떻게 결합되든, 물질의 분자들의 응집일 따름"이나, 한 식물과 한 동물의 동일성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양분을 흡수하고 분배하는 데 적합한 그것의 부분들의 조직"에 의거한다.(같은 책, Ⅱ, 27, 5)
그렇다면, 한 "사람의 동일성은 어디서 성립하는가?" 그것은, 인간도 동물인 한에서, "오로지, 같은 유기체를 위해, 지속적으로 생명적으로 통일된,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질의 분자들에 의한, 계속되는 같은 생명의 참여에서" 성립한다고 로크는 말한다.(같은 책, Ⅱ, 27, 7) 그러나 인간은 단지 동물이 아니라, 또한 '인격'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로크는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더 나아가 묻는다. "인격의 동일성은 어디서 성립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격이 무엇을 지칭하는가"를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크의 생각에, "인격이란 이성과 반성을 가진, 그 자신을 그 자신으로 고찰할 수 있는, 생각하는 지성적 존재자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상에서도 동일한 생각하는 것(thinking thing)이다. 인격은, 생각 활동과 분리될 수 없는, 의식에 의해서만 그 자신을 그 자신으로 고찰한다. 어느 누구도 그가 지각한다는 것을 지각함이 없이는 지각할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성찰하고, 의욕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현재의 감각과 지각에 대하여 그러하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가 자아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같은 책, Ⅱ, 27, 11[9]) 그러니까, 로크에 따르면 '인격' 내지 '자아[자기]'의 동일성은 자아의 자기 지각 곧 자기 인식 또는 자기 의식에서 성립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로크는 인격 내지 자아를 물체로서의 신체와도 그리고 유한한 정신과도 분리시켜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기 의식에 근거해 '자아'를 얘기할 때, "같은 자아가 같은 실체[물체(신체)]에서 계속되는가 다른 실체[물체(신체)]들에서 계속되는가는 고려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은 언제나 생각함에 수반하고, 그것이 각자를 그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 되게끔 함으로써, 그 자신을 여타의 생각하는 것과 구별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만 인격의 동일성이, 다시 말해 한 이성적 존재자의 동일성이 존립한다. 그리고 이 의식이 어떤 과거의 행동이나 생각에 거슬러 올라가 미칠 수 있는 데까지는 그 인격의 동일성이 미친다."(같은 책, Ⅱ, 27, 11[9]) 그러므로 로크에게서는 자아의 동일성이나 인격의 동일성은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자기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격의 동일성은 실체[물체(신체)]의 동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의식의 동일성에 있다."(같은 책, Ⅱ, 27, 19) 자기 의식이 자기의 동일성을 구성한다. 인격의 동일성은, 내가 나중에 내가 이전에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앎으로써 구성된다. 이제 로크에서 문제로 남는 것은, 그렇다면 '(유한한) 정신'이라는 실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고, 이 이론적 개념이 존재 세계에서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물체'라는 실체는 종국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는 점 때문에 그 정체야 장막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관념들의 귀속처, 갖가지 현상적 성질들의 담지자로서 물리적 사물들의 동일성의 기반이고, 실재적 인식[진리]의 척도이자 '실재하는 사물'의 근거가 된다. 반면에 '(유한한) 정신'이라는 실체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한 식물, 한 동물, 동물로서의 한 사람의 동일성의 근거인 "같은 생명"의 담지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자아나 인격, 그러므로 나아가서는, '마음'의 동일성의 토대는 아니라 하니, 이것의 토대가 되는 이른바 '자기 의식'은 누구의 의식이라는 말인가? 그게 아니고, '물체'라는 실체가 물리적 사물의 동일성을 담보하듯이, '정신'이라는 실체가 자아의 동일성을 담보하는 것이라면, 물체와는 달리 정신이라는 실체는 '자기 의식'을 통해 자기에게 알려진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정신'이라는 실체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알려지는 것이라는 말인가? 여기서 '정신' 실체는 그 정체가 의혹에 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