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철학·상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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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작성자 철** 작성일 2018-02-20 조회수 157

칸트는 구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놀이에 대해, 쉴러는 형상충동과 질료충동을 조화하는 놀이충동에 대해 말하였다. 이들의 경우에 놀이는 객관에 대한 주관의 작용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주객이원론을 전제한다. 예술에 '관한' 진리가 아니라 예술'의' 진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주객이원론을 확실히 파괴시키거나, 해석개념을 통해 주객의 재통일을 구성해내야 한다. 가다머는 놀이를 예술작품 자체의 존재방식으로 보는데, 이 같은 놀이로서의 예술관은 주객이원론을 파괴하고 주객의 재통합을 구성하는 기능을 갖는다.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은,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을 경험하는 자를 변화시키는 경험으로 된다는 것이다. 작품의 경험에 있어서 경험하는 자에게서 변화가 생겨나는 한, 작품의 경험을 (불변적) 주체나 (불변적) 대상이란 개념으로, 곧 주관-객관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놀이의 존재방식도 마찬가지다. 놀이가 주관성이라는 대자적(자기의식적) 존재가, 따라서 주체가 없는 곳에서 비로소 놀이로 존재한다면, 놀이에 대해 주관-객관 개념에 의해 접근하는 것은 잘못이다.

놀이는 어떤 것을 놀이하면서 이 어떤 것을 표현함이지만, 이를 통해 동시에 놀이꾼 자신을 표현함이기도 하다. 따라서 놀이의 존재방식은 자기표현이다. 놀이 중에는 표현하는 놀이가 있고, 표현하는 놀이 중에는 관객을 위한 놀이가 있다. 제사나 연극 등이 바로 관객을 위한 놀이이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향해 있다는 놀이의 성격, 곧 놀이의 지시성격이 바로 예술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놀이는 완성되면 작품으로 된다. 작품으로 완성된 놀이는 하나의 형성체이다. 형성체로 전환된 놀이는 놀이행위와 분리된 것처럼 나타나고, 놀이하는 내용의 순수한 현상 속에서 존립한다. 놀이는 그 가능성이 실현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의 현실태이지만, 그 자체로 완성되고 완결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의 작품이다.

놀이에서는 놀이꾼들의 주관적인 자기의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우리자신의 일상세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지양된다. 놀이꾼들은 놀이의 의미의 실현을 위해 놀이에 몰입하면서 자신을 잊고, 그들의 놀이를 통해 하나의 의미세계가 출현함에 의해 일상의 세계는 잊혀진다. 예컨대 연극행동과 예배행동을 통해서 현실세계와는 다른 참된 세계가 열려지고, 이 참된 세계가 진리로서 스스로 우리에게 발언하고, 우리는 그 진리를 경청한다.

놀이의 표현 속에서 출현하는 것, 즉 놀이의 표현 속에서 이끌어내어 지고 밝혀지는 것은 바로 하나의 전적으로 변화된 세계이다. 놀이가 그것으로 변화되는 그런 형성체는 진리로 고양된 세계(현실) 또는 세계(현실)의 진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놀이 (가다머 『진리와 방법』 (해제), 2005년~2006년,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92762&categoryId=41909&cid=4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