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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텍스트와 철학 텍스트의 구별
작성자 철** 작성일 2017-07-13 조회수 305

'꽃은 새가 아니야'라는 불평은 논리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꽃과 새는 분류상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령, 과학이 문학적 혹은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통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문학 혹은 철학 등과는 서로 다른 지적 활동의 범주에 속하는 것과 같이 문학과 철학도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문학이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이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통할 수 없다.

베르그송의 철학 텍스트 『창조적 진화』와 같이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노벨문학상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문학작품은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의 분석과 비평에서 이와 같은 요구는 늘 있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문학과 철학이 서로 독립된 지적 활동의 범주에 속하더라도, 그것들의 관계가 서로 정확한 구별을 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한 인식, 경험 그리고 사유는 문자가 생긴 이후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텍스트로 표현되어 왔다. 오늘날 그러한 텍스트로서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이 구별되는 것은 자명하다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이 처음부터 모든 문화권에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지』의 저자한테는 역사적 기록과 문학적 창작의 구별이 없었으며, 노자가 『도덕경』을 썼을 때도 그에게는 문학과 철학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개와 닭의 구별이 객관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꽤 오랫동안 문학과 철학의 구별 역시 자명한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의 학제적 구별은 근대 서양의 제도적 결정이며, 동양에서는 서양문화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구별을 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적 이념이 '해체'되어가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조의 등장에 따라, 약 3세기에 걸쳐 자명하다고 생각되었던 학제적 구별에 의심이 제기되었고 어느덧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의 구별이 허상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극히 애매모호하다는 것을 의식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가령 데리다나 로티 같은 철학자들은 문학과 철학의 구별을 완강히 부정하고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미 지적되었고, 비트겐슈타인보다 약 반 세기 전에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뒤샹이 건축기구 상점 또는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일반 변기를 미술 전람회장에 「샘물」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으로 출품하여 근대 이후 자명한 것으로 여겨왔던 '예술'과 '비예술'의 근대적 구별의 허구성을 생생하게 지적한 바 있다.

학제적 범주가 각각 다른 텍스트들 간의 구별도 어렵지만 문학 텍스트와 철학 텍스트간의 구별은 더욱 그렇다. '문학'이나 '철학'의 개념에 익숙한 오늘날에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읽는 것만으로는 플라톤의 『메논』이나 파스칼의 『팡세』, 볼테르의 『캉디드』, 루소의 『누벨 엘로이즈』,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리고 사르트르의 『구토』 등과 같은 텍스트를 문학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철학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흔히 문학의 철학성이 강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문학과 철학을 구별할 수 없는가? 만일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철학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물음도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문학이 철학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마찬가지다.

텍스트를 보는 것만으로 문학과 철학을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들 간의 구별이 전혀 없음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해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문학과 철학은 역시 구별된다. 어떤 개념들이 각기 지칭하는 대상들과 지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의 구별이 없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많은 것들의 구별은 지각적으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만 구별된다. 미혼자와 기혼자, 학생과 선생, 대통령과 장관 등은 분명히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지각적 속성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도적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과 '철학'이라는 개념이 각기 구별되고 또 그렇게 통용되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근거가 있을 것이다. 문학 텍스트와 철학 텍스트를 혼동할 수는 없다. 비록 지각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더라도 두 개의 텍스트는 제도적 약정에 의해서 하나는 '문학'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철학'으로 구별될 수 있다. 이렇듯 문학과 철학의 구별은 양상적(modal) 약정에 근거한다.

하나의 명제는 칸트에 따르면 정언적(assertoric), 절대적(apodictic), 그리고 개연적(problematic) 양상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으로 구분해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한 명제가 정언적으로 혹은 단정적 양상으로 언명됐을 때 그것은 내용의 사실성에 대한 주장의 형태를 갖고, 따라서 우리는 그 명제의 진위를 언급할 수 있다. 반면 개연적 양상으로 언명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실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제안에 그치므로, 그것에 대한 진위 판단은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그것들은 각기 논리적으로 전혀 다른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문학과 철학, 더 정확히 말해서 문학 텍스트와 철학 텍스트도 이와 같이 양상론적 입장에서만 구별된다. 양상론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들은 마치 개와 소, 식물과 동물이 다른 종류의 분류적 범주에 속하듯이, 각기 서로 독립된 텍스트적 범주에 속한다.1)

따라서 개가 소와 같아야 하고, 식물이 동물 같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이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학 텍스트의 철학적 의미해석이 중시되고 있으며, 때로는 문학작품의 분석에 철학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사례는 문학과 철학이 실질적으로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얽혀 있음을 암시한다.

각주

  1. 1박이문, 「철학적 허구와 문학적 진실」, 『철학전후』, 문학과 지성사, 1993 ; 「문학의 철학적 성찰」, 『철학과 문학』, 민음사, 1995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 텍스트와 철학 텍스트의 구별 (박이문의 문학과 철학 이야기, 2005. 5. 10., ㈜살림출판사)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18823&categoryId=41885&cid=4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