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철학·상담학과
본문바로가기
ender
커뮤니티
자료실

자료실

‘새의 둥지’는 어떻게 철학을 완성하는가? - (8)
작성자 철** 작성일 2017-07-07 조회수 371
둥지의 철학은 통합 인문학, 철학의 완성으로 가는 이정표

 

지금까지 검토한 사실들을 기초로 새로운 철학으로서의 세계관을 제시해보기로 한다.

첫째, 둥지의 철학은 하나의 철학적 인식론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인식의 대상을 인식 주체와 독립된 객관적 대상으로 전제해 왔으며, 인식을 그러한 대상의 발견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둥지의 철학은 인식을 어떤 새로운 대상이나 존재의 발견이 아니라, 인식적 주체가 감각적으로 의식에 지각된 무형인 동시에 무명의 경험을 어떤 존재론적 범주로 묶고 이름을 붙여서 어떤 양식으로 재구성하며, 개념을 사용하여 관념적으로 만들어낸 제품으로 파악한다. 이 점에서 인식은 대상의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대상 자체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둘째, 둥지의 철학은 바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만, 인식론이자 존재론이다. 그러나 둥지 철학의 존재론은 모든 것의 궁극적 실체성을 부정하고 무상()을 원초적 본질로 보는 힌두교나, 불교, 도교에서 말하는 허무주의적 ‘공’ 혹은 ‘무’의 철학과는 전혀 다르다. 둥지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식·인지·의식은 언제나 언어적이며, 언어는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의 색소를 드러내 보이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고,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식이라는 색소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셋째, 둥지의 철학은 인식과 존재라는 두 상반되면서도 각 개념들에 함축된 정신과 물질, 마음과 몸이라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독립된 실체로 구성된 이원론적 존재론과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부정한다. 그리고 우주 전체를 그 두 개념들 가운데 어느 것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정신-물질, 마음-몸 한 덩어리로 서술할 수밖에 없는 일원론적 형이상학, 즉 앞에서 길게 논한 바 있는, ‘존재-의미 매트릭스’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둥지의 세계관은 한편으로는 스피노자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확히 말해서 마음과 몸, 정신과 살, 물질과 정신으로 양분되기 이전의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가 말하는 ‘날존재’ 혹은 ‘야생의 사유’ 등의 존재론과 일치한다.

넷째, 둥지의 철학은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화해와 통합의 정치학이며, 분열적·추상적, 환원적이 아니라 관용적이며, 상호보완적이고 통합적인 사회학을 주장한다.

다섯째, 둥지의 철학은 개념적·논리적·과학적·기하학적 사유에 앞서 지각적·감각적·미학적·은유적·시적 언어를 선호한다.

여섯째, 둥지의 철학은 획일적·규범적·이성적 윤리학이 아니라 다원적·감성적·상황적 윤리학을 따르며, 가치의 궁극적 바탕을 인간 중심적이 아니라 생태 중심적인 일원론적 세계관 안에서만 가능한 ‘행복’이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이런 점에서 둥지의 철학은 “과학은 예술의 눈으로, 예술은 삶의 눈으로 보라.”는 니체의 주장에 동의한다.

둥지의 철학은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의 관념의 거처, 보금자리를 트는 작업이다.

일곱째, 둥지의 철학은 하나의 형이상학적 비전으로서 우주·존재 일반을 고정된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무한히 다양한 것들이 역동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영원한 소용돌이의 끝나지 않는 유동적 과정이라고 전제한다. 형이상학적인 우주 전체의 세계관을 건축하는 작업으로서의 둥지의 철학은 이런 점에서 신규건축이나 재건축이 아닌, 언제나 리모델링 중인 작업이다.

여덟째, 둥지의 철학은 우주와 그 안에 속한 모든 존재와 활동의 올바른 그림이자, 그 안의 모든 것들의 관념적 거처, 즉 보금자리를 트는 작업이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작업이 동반하는 ‘행복’이라는 ‘실존적 의미 체험’은 철학적 둥지 틀기 자체의 ‘의미’이기도 하다.

아홉째, 둥지의 철학은 그 자체가 미완의 우주이며, 미완의 세계관이자 시작도 끝도 없이 열려 있는 세계다. 둥지 철학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근원적 차원에서 불확실하고, 잠정적이며, 상대적이고, 중심인 동시에 주변이다. 또한 모든 언어적 차별화는 본질적이 아니라 편의상의 잠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며, 처음이 곧 마지막이고, 끝이 곧 시작이며,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이며, 죽음이 곧 삶이고, 탄생이 곧 죽음이다.

열 번째, 둥지의 철학은 그 자체가 곧 새로운 세계인 동시에 모든 것을 보는 새로운 눈이며, 모든 것에 대한 물음의 틀인 동시에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의 새로운 방식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둥지의 철학’은 ‘관계와 사이의 철학’, 그리고 생태친화적 예술 철학이다. 오늘날 인문학은 철학, 문학, 예술을 포괄하는 ‘표현 인문학’에서 과학까지 모두 포함하는 ‘통합 인문학’으로의 확장을 요청받고 있다. 전문지식보다는 통합·융합적 지식을 통한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다. 통합 학문이 ‘제일철학(prima philosophia)’이 될 수 있는 지적 상황 속에서 ‘둥지의 철학’은 ‘통합 인문학’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새의 둥지’는 어떻게 철학을 완성하는가? - ④ 둥지의 철학 (박이문 인문학 읽기, 201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