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철학·상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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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만남
작성자 철** 작성일 2021-05-27 조회수 238

소크라테스는 거리의 철학자였다. 그는 아테네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대화를 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조용한 사색의 장에서 토론과 대화의 장으로 옮긴 인물이다. 그는 대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때로는 아테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아고라 광장에서, 때로는 푸른 지중해가 한 눈에 보이는 아테네 근처의 바닷가에서, 때로는 지인들과 밤늦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토론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식 철학을 문자로 생중계한 플라톤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토론 철학이 가진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난다. 대화편은 마치 한 편의 희곡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대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토론을 하는 그때 그곳의 분위기까지 그대로 잡힌다. 마치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치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나 때로는 대화편이 철학 책으로서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때로는 아무런 결론 없이 대화를 마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당연하다. 대화편은 어떤 특정한 주제를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철학의 역사에서 대화편과 같이 고전적 지위에 우뚝 오른 다른 철학서적,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35권의 대화편은 과제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고, 다양한 여러 주제들이 하나의 책에 뒤섞여 함께 논의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왜 이렇게 거리에서 철학을 했을까? 그리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아테네 거리 철학을 왜 문자로 생중계했을까? 그 단서는 대화편 중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나온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식은 글이나 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를 통해서만 전달된다고 역설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그림으로 기록할 때 그 그림은 죽어있듯이, 살아 있는 말을 문자로 쓸 때 문자로 기록된 말은 죽어있다고 말한다. 문자로 된 말은 질문을 던지지도 질문을 받지도 못한다. 그렇다. 플라톤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대화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봐야 한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요체는 대화법 또는 산파술로 요약되는 질문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아는 게 없다. 그래서 그는 대화 상대자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가실 정도로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주로 상대방 이야기의 논리의 허점을 파고 든다. 상대방은 자신의 주장이 모순에 빠졌음을 깨닫고 우물쭈물한다. 큰 당혹감과 혼돈에 빠져든다. 상대방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주시한다. 옳은 답을 듣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 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대화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종료된다. 해결되지 못하고 끝난 문제 ? 이것을 철학 용어로는 아포리아(aporia)라고 부른다. 그 어원은 그리스어로 통로가 없다는 뜻이다. 출구가 막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길도 진리의 길이 아니고, 저 길도 우리를 진리로 이끌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우리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는 작업은 잠시 숨을 고른다고 하더라도 매일매일 우리가 숨 가쁘게 살아야 하는 인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소크라테스 시대의 아테네로 돌아가자.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었던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에서는 이미 철학의 관심이 피시스(자연세계)에서 노모스(인간세계)로 옮겨가고 있었다. 노모스의 세계에서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철학의 화두로 떠올랐다.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일군의 철학자들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관심도 다르지 않았다. 그 점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재판 법정에서 한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했다고 고소장에 씌어있지만 자신은 자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연에 대해서 간단하게라도 언급한 사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말해달라고도 주문한다. 그렇다고 자연철학자를 경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