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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비평 <조식> , <기대승>
작성자 철** 작성일 2019-12-30 조회수 237

1.조식에 대한 비평

 

 

저자 이익
출전 『성호사설』 '남명 조식 선생의 문장()'

일찍이 보지 못한 기이한 문장

남명 조식 선생이 지은 글은 매우 기이했다. 퇴계 이황 선생은 남명이 지은 계복당 등에 관한 글을 보고, "『장자』의 내용 중에서 이런 글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비난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남명은 일찍이 "나의 글은 비단을 짜되 완성을 보지 못한 것과 같고, 퇴계의 글은 베를 짜되 완성을 본 것과 같다."고 했는데, 그 자신도 알았던 모양이다. 또한 남명은 친구인 삼족당 김대유의 묘비에 새기는 글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해 보증 서는 일을 잘 하지 않는데, 유독 천하의 선비라고 할 수 있는 삼족당 김대유에게만은 허락하고자 한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 삼족당 김대유는 학문과 식견이 매우 넓고 깊은 대학자로 이치를 따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겠지만, 또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키가 크고 몸집이 거대한 용맹하고 굳센 선비로서 활 쏘는 일과 말 타는 일에도 서툴지 않았던 사람일 것이다.

서당에 홀로 있으면서 길게 노래하고 느리게 춤을 추어, 그 집안 식구들도 삼족당이 품은 뜻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이것은 본래 그 성품이 즐거움을 갖춰 시가를 읊고 춤을 춘 것이다. 산과 강에 몸을 맡긴 채 낚시하고 사냥하니, 당시 사람들은 오히려 방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등진 채 숨어 지내면서도 답답해하지 않고, 더욱 모습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크고 깊은 도량을 닦느라 힘쓰는 일은 그의 어짊()이고, 말과 주장이 과격하고 밝고 굳센 것은 그의 의로움()이다. 착한 행실을 중히 생각해 스스로 선한 데 머무르고, 널리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를 좋아해 스스로를 구제했으니, 이것은 운명인가 아니면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인가?"

이 묘갈명 한 편만으로도 남명의 글이 특이했다는 말의 대략을 엿볼 수 있다.

? 메모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 선비는
책상 앞에 앉아 조는 듯 세상을 사는 사람이거나
방탕하게 세월이나 보내는 사람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식에 대한 비평 (조선 지식인의 비평 노트, 2007. 6. 22.,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2.기대승에 대한 비평

 

 

저자 장현광
출전 『고봉집』 '고봉집에 붙여()'

문장에 깃든 기운과 담긴 뜻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세상에 나온 문집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몇 문장가의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 유행할 때에는 넓고 좁고 또 오래되고 가까운 차이가 존재한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장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고, 숭상하는 문장에도 가볍고 무거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숭상하는 데 깊고 얕고, 무겁고 가벼운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문장에 깃든 기운의 높고 낮음이 있고, 또한 문장에 담긴 뜻의 정확함과 조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은 글 공부와 글짓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흉내낼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하고 세밀한 문장에 대해 말한다면, 학식과 견문이 통하고 한문과 문장 기예가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나 할 수 없다. 또한 타고난 성품에서 우러나와 공평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취하고 버린 일들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문장가들에 대해 말한다면 고봉 기대승만이 이런 문장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기대승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가 풍채와 몸가짐이 빼어나고 주장과 논리가 매우 탁월했다고 말한다. 조금 늦게 세상에 태어나는 바람에 미처 그를 직접 대면하지 못해 한탄스러울 뿐이다.

지금 일선부사로 있는 사문 조찬한은 기대승의 외손자다. 고봉 기대승에 관한 일을 자세하게 말해 주면서, 고봉이 퇴계 이황과 나눈 편지를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그 긴 편지들을 살펴보니,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사이사이에 각자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다해 반드시 올바른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담뿍 배어 있었다. 붓끝이나 놀려 희롱하면서 말재주나 구사하고 글 솜씨나 자랑하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황은 언제나 거두어 감추며 겸손하게 물러나 맑고 높은 절개로 스스로를 지켰고, 기대승은 항상 기운과 재주를 마음껏 펼쳐 솔직하게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보이며 엄격하고 정중한 의로움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두 사람의 기상이 서로 맞지 않을 듯 보이는데도 성실하고 극진하게 믿음을 주어 의심하지 않으며 좋아했다. 더욱 서로가 싫어하지 않은 곳에 이르면 그 뜻이 더 친밀하고 정성스러웠다. 때로는 상대방을 억누르다가도 다시 상대를 추켜세워 주고, 때로는 상대방을 권유하다가도 경계하기도 했다.

짧거나 작은 편지에서조차 서로를 격려하고 붙들어 주며 채찍질했다. 그래서 퇴계는 고봉을 나무라고 타일러 바로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봉에게 의지하여 얻은 유익 또한 많았다.

고봉은 말년에 세속의 인심에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았으며, 문장은 법도에 맞 고 무거우면서도 평이하고 우아한 맛이 있었다. 그것은 탁월한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을 갖추고 있더라도 반드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에게 나아가 올바름을 얻은 다음에야 이룰 수 있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 메모

같은 말을 하는 친구도 고맙지만,
다른 말을 하는 친구도 소중합니다.

전혀 다른 둘이
엉성한 화해나 억지스런 봉합 없이
지독한 논쟁으로 격렬히 화학 반응하여
전혀 다른 새로움을 만들었습니다.

다름은 다툼과 불행의 불씨가 아니라.
축복과 풍요와 감사의 씨앗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대승에 대한 비평 (조선 지식인의 비평 노트, 2007. 6. 22.,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