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경 | |||||
작성자 | 철** | 작성일 | 2019-09-09 | 조회수 | 405 |
---|---|---|---|---|---|
다양한 장소에서 수집된 이미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는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누군가의 사적인 서사로 재탄생된다. 단편적인 장면들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드러내며, 관계, 사랑, 욕망, 성공에 관해 말한다. 함혜경의 영상은 화자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 내용과 같은 '이야기'를 큰 축으로 가지고 있기에,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찍은 영상인지,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매 순간의 느낌, 삶을 향한 태도 등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외국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레이터와 한글 자막, 서정적인 음악과 영상은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동시대 관객들은 행복, 사랑, 예술, 노동, 자유, 성공 등에 관해 숙고해볼 시간을 가진다.
· 누군가에게 건네는 화자의 말 저는 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실제로 가보지 못한 장소일지라도, 비디오 속에 등장하는 낯선 도시에 대해 일종의 노스텔지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엔 뭔가 애틋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은 제 마음을 움직인 영화들,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게서 파생된 것입니다. 또한 극적인 상황보다는 우연한 사건에 관심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 더 깊게 새겨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제를 정해놓고 이것을 어떻게 구현할지를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쪽은 아닙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이미지 혹은 대사를 단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관계, 사랑, 욕망, 성공, 좌절에 대한 제 자신만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작업은 등장인물과 사건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단편적인 문장들을 메모해 놓은 뒤 그것들을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서사 구조를 만들기보다는 나열된 기록들을 임의로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저는 가벼운 기분전환의 수준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누구나 아는 것에서 시작해, 깊고 내밀한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텍스트로 옮겨 비디오 안에서 말하게 하는데,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제 앞에 두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군요. 저는 번역된 책들과 자막이 입혀진 영화들을 주로 봅니다. 이런 제 취향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외국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나라의 언어에 가상의 자막을 입히기도 하고, 제가 쓴 자막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외국어를 편집해 내레이션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내레이션을 사용합니다. 이야기를 쓰면서 상상했던 인물과 가까운 내레이터를 찾습니다. 제가 만든 가상의 캐릭터를 위해 목소리와 언어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은 실제의 경험이 픽션으로 보이도록 만들기도 하고, 허구의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종 제 비디오 속 설정을 작가인 제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제 작업은 작가인 함혜경이 만든 하나의 가설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든 것이지만, 결코 저라고 할 수는 없죠. 물론 각각의 작업에는 그 당시 저의 관심사가 담겨있습니다.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 맨](2013)이나 신발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거짓말하는 애인](2014), 실제 존재했던 한 건축가의 이야기를 다룬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2018)의 경우 다른 작업에 비해 제 사적인 경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제 삶에 있어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에 대한 기록의 의미가 있습니다.
· 1인 프로덕션의 실험 이미지가 없는 대신 스토리의 단순성에 초점을 맞추고, 주인공의 움직임에 따른 세심한 사운드를 배치했습니다. 혼자 시내를 걷고 있던 주인공이 상점가를 통과해, 놀이터를 지나 누군가의 자동차를 탑니다. 차가 출발하고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하죠. 이 잠깐의 시간 동안 주인공의 행동이 연상될만한 다양한 소리들을 작업에 넣었습니다. 움직이는 영상은 관객의 눈을 이미지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고, 시선을 리드하지만 이 작업은 그저 조용히 주시하게 만듭니다. 귀를 기울여 주인공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죠. 보이지 않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 각자가 떠올린 그 이미지들을 관객의 기억 속에 잠시 머무르게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의 영상작업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걸 보고있으면 상대적으로 초라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전문가에게 촬영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작업의 대사만으로 디렉션을 주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촬영된 세련된 이미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뭔가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시간이 들더라도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낯선 곳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을 가져다 자유롭게 편집하고, 그것을 재료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제 작업을 확장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영상들이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떤 장면을 서툴게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음악은 오픈 사이트에서 CC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에서 표시하고 있는 규정에 따라 사용하고 있습니다. YouTube 에서 다운받은 영상을 사용했던 작업의 경우도 크레딧에 출처를 표기하고, 일부는 저작권자로부터 사용을 허락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업들의 경우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텍스트의 경우 수시로 수집하고 메모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영상에 따라 매번 새롭게 리서치 합니다.
· 영상을 전시장에서 보는 경험 이미 시작된 이야기, 긴 러닝타임, 해드셋을 써야 하는 불편함 등 전시장에서 영상 작업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017년 개인전 [보이스 오프]를 구상하면서, 전시장 내부를 제 비디오 속 인물이 살았을 법한 공간으로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영등포 대로변에 위치한 갤러리 전면의 유리창에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입한 미국의 어느 해변사진을 출력해 부착했고, 안쪽에는 블라인드를 설치했습니다. 관람용 의자 대신 싱글 침대를 주문하고, 전시장 한쪽에는 샤워커튼도 달고, 중고로 구입한 소형냉장고에는 맥주를 채워 두었습니다. 관객들은 침대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TV 화면에 흘러 나오는 제 작업을 관람하는 것이죠. 제 작업은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보다 주인공들이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전하는 제 자신의 이야기이자, 모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저만의 해석이기도 하죠. 그래서 작업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 입니다. 10분 남짓한 제 영상을 보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되면 좋겠습니다. 작업을 적게 만들더라도 좀 더 시간을 들여보려고 합니다. 작업보다 전시 일정을 맞추는데 급급하다 보면 완성을 하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아요. 전시는 끝나버리지만 작업은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볼 때마다 후회가 밀려오죠. 이번 신작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관대함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기존 작업들이 텍스트를 쓰고 난 후에 이미지를 조합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미지를 조합하면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글 최정윤 / 독립큐레이터
· 추천의 변 "쏟아지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린다. 인생은 갈팡질팡의 연속. 균형을 유지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왜 나는 밝은 쪽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가 않지?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 아니면 내가 미끄러져 들어가버린 누군가의 인생일까?" 함혜경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이나 쓸쓸함, 좌절, 혹은 관계에 대하여 일상에서 흩어지는 상념들을 모아서 10여분 길이의 싱글 채널 비디오로 만들어 왔다. 그의 영상은 매번 어딘지 정확히 알아챌 수 없는 시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가는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실제로 가보지 못한 장소더라도 낯선 도시에 대한 일종의 노스텔지아를 갖고 있다고 말해 왔다. 그의 카메라 시선이 머무는 곳은 이렇다 할 사건조차 벌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화면과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영상의 화자들은 개인적인 고민이나 감정을 토로하지만 우리 모두가 종종 경험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대사는 때로는 베갯머리에서 연인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내밀하지만 대체로 큰 감정적 동요도 없으며 사변적이고 평범하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은 고백처럼 마음을 툭 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함혜경은 "센티멘탈 스토리텔러"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함혜경의 영상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형식은 자막과 외국어 더빙이다. 이는 이미지와 사운드뿐만 아니라 텍스트까지 동시에 읽어야 했던, 어릴 적 TV 외화 시청 경험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그는 홈비디오부터 스마트폰까지 포터블한 영상장비를 일상적으로 다루며 성장했고, 8밀리 비디오부터 유튜브, 넷플릭스까지 골고루 경험해온 세대이지만, 자신의 영상은 기술적으로나 영상어법으로나 화려한 것보다는 투박하더라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만들고자 한다. 지금까지 함혜경이 제작한 영상은 대부분 각본, 촬영, 편집, 그리고 사운드 수퍼바이징까지 1인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제작되었는데,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으로 작가가 선택한 수고이기도 하다. 함혜경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법은 그 동안 그가 수없이 보아온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틱한 전개가 벌어지지 않기에 내용이나 사건에만 집중한다면 밋밋하거나 헐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각본, 촬영, 편집의 삼박자로 만든 호흡은 관람자가 영상을 따라가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화면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멜랑콜리한 영상의 여운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극적인 상황보다는 우연한 사건, 그리고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 더 깊게 새겨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여운은 사랑, 욕망, 관계에 대한 실패와 희열, 즉 매순간 우리 삶 속을 드나드는 감정들을 한동안 한다. 추천인 이성휘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이 글은 함혜경 개인전 《필로우 토킹》(2018.7.7-29, 돈의문박물관마을 더빌리지프로젝트)의 토크 프로그램을 위해 이성휘가 쓴 작가 소개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작가소개 함혜경 함혜경 작가는 2004년 계원예술대학교 시간예술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매체예술학과 특별과정을 이수하였다. 2017년 위켄드 [Voice Off], 2018년 돈의문박물관 [Pillow Talking] 등 개인전을 열었다. 2018년 삼육빌딩 [EVE 이브], 2017년 갤러리룩스 [유영하는 삶], 2016년 하이트컬렉션 [Under My Skin], 2015 아트선재센터 [리얼 DMZ 프로젝트]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수상내역으로는 2018년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 최초예술지원 선정, 2019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제작지원 선정, 2004 AIAS(Association of Independent Art and DesignSchools) 그랑프리 수상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혜경 - 사적인 이야기로의 초대 (헬로! 아티스트, 네이버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