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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철학하기 힙합 파티 혹은 힙합 공영역
작성자 철** 작성일 2017-07-25 조회수 285

음악으로 철학하기

힙합 파티 혹은 힙합 공영역

자유와 해방의 정신

 

힙합은 대단히 원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그것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축제 현장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집단적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현대 개인주의 사회의 독특한 특성인 자아도취적 형식으로 향유되기도 한다. 힙합은 집단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이며, 고대적인 동시에 현대적이고, 반사회적 저항을 부르짖으면서 동시에 주류 사회로의 진입의 욕망을 품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힙합은 이중적이며 비일관성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힙합인들이 그토록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행보를 보여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힙합은 원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출처: Wikipedia>

힙합의 탄생: 잊혀진 노예의 기억

잘 알려진 대로 힙합은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인들의 집단 음악을 기초로 하고 있다. 노예로 팔려 나와 고향 땅을 잃은 그들이었지만 노예들은 고향의 심성과 문화마저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밤마다 그들은 야만적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함께 음악을 나누었다.

흑인 빈민들에게 범죄적 삶은 실존적 자기 투쟁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출처: Wikipedia>

힙합은 노예가 만든 음악은 아니었지만 노예의 기억을 상기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창조되었다.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엽에 미국의 빈민가에서 시작된 힙합은 소외된 흑인 사회의 울분과 애환을 표현하는 하위문화로서 등장하였다. 당시 흑인 빈민가 출신의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지 못했다. 생활을 위해서는 범죄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이들에게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가지며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흑인 빈민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잉여자에 불과했다. 잉여자의 분노는 곧잘 범죄로 표현되었다. 연일 TV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상부에 선 사람들의 화려한 삶이 일상적으로 나오지만 현관문을 나서는 즉시 그들이 맞이하는 현실은 총소리와 경찰의 폭력이다.

흑인 빈민들에게 범죄적 삶은 실존적 자기 투쟁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에게는 불가능이 운명이요 현실이었다. 현실적으로 여기서 벗어날 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흑인 빈민들은 자신이 노예의 처지와 다름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노예적 상태에서 놓여나 해방을 쟁취하는 방법으로는 폭력과 예술이 있을 뿐이었다. 총을 잡고 ‘공공의 적’이 될 담력이 없는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춤과 음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에서 함께 만나 춤추고 음악을 즐기면서 삶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했다. 힙합은 그렇게 태어났다.

힙합 파티 혹은 힙합 공영역

누군가 거리에 나와 새로 구한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걸며 흥겹게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저 신나는 모임에 끼고 싶어 안달이 난 단벌신사 꼬맹이는 급한대로 아버지의 청바지를 주워 입고 나와 엉덩이를 씰룩 대며 그동안 연마한 새로운 몸짓을 사람들에게 과시한다. 이에 질세라 옆에선 누군가는 새로 얻은 마이크를 갖고 나와 어제 떠올라 적어뒀던 가사를 리듬에 맞춰 멋지게 읊어댄다. 어떤 엠씨는 총 맞아 세상을 떠난 이웃집 친구를 애도하고,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을 규탄하며, 사회의 야만에 대한 억제된 분노를 폭발시킨다. 다른 엠씨는 지난밤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을 추억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속삭인다. 누군가 자기의 랩 솜씨를 뽐내며 자화자찬을 랩으로 늘어놓자, 다른 이가 나와 더욱 뛰어난 랩 솜씨로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면서 허세를 부린다. 허세와 허세, 디스(disrespect)와 디스가 오가지만 여전히 리듬은 흥겹다.

총을 잡고 ‘공공의 적’이 될 담력이 없는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춤과 음악이었다. <출처: Wikipedia>

흥이 난 거리의 디제이는 판이 망가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레코드판 여기저기를 긁어대면서 새로운 소리를 리듬감 있게 만들어낸다. 디제이는 잠자던 사람들을 깨우고 엠씨(Move the Crowd)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찬사와 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음악과 몸짓과 외침을 보여준 그들에 대한 찬사는 어느새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무하는 집단적 의식으로 바뀌었다. 그 속에서 흑인 빈민이 걸머져야 했던 삶의 모든 고통들은 해소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기량을 겨룬다. 그들은 각자의 사적 고통과 슬픔을 숨기지 않고 함께 공유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고통과 환희 속에서 하나로 묶였다. 힙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공영역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공영역의 또다른 모습

일반적으로 공영역은 ‘시민사회가 감지해낸 사회적 의제에 관해 공개적 논의 절차를 거쳐 공론을 형성하는 정치적 논의의 장’이라는 식으로 이해되곤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오직 정치적 사안을 공적 관점에서 논의함으로써 공론을 형성하는 장, 즉 공론장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공영역은 단지 정치적 공론을 형성하는 장만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공공성이라는 측면만 간직하고 있지도 않다.

서양에서 공영역은 정치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직접 민주정을 시행했던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이 아고라 등과 같은 공적 공간에 모여서 폴리스 구성원 모두에게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삶을 영위하였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정치생활은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생계를 위해 농사일을 하다가 짬이 나면 아고라에 가서 세상 소식을 듣는다. 다른 이는 아고라에서 장사를 하거나 물품을 만들면서 공적 문제에 대한 의견들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민회나 법정에 참여하여 의결을 하고 판결을 내린다. 시민들은 함께 의결한 대로 전쟁에 나가고, 함께 그 영광을 누렸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은 공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중심 또한 공적 공간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사적 개인으로서의 폐쇄성이 아니라 공적 시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했다. 모두는 공적 공간에서 조화로운 하나일 수 있었다. 공적 공간에서만큼은 부자와 빈자, 고귀한 자와 미천한 자,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의 편차가 크지 않았다. 그 속에서는 재산, 신분, 힘이 아니라 오직 탁월한 말과 행위를 가지고 겨루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말과 행위를 하는 이들은 존경과 신망을 받았으며, 시민들은 그들의 탁월한 제안을 공동체의 결정으로 승인해주곤 했다. 이것이 아테네 민주주의 정치의 이상적 모습이다.

직접 민주정을 시행했던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이 아고라 등과 같은 공적 공간에 모여서 폴리스 구성원 모두에게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삶을 영위하였다. <출처: Andreas Trepte at en.wikipedia.org>

그러나 공영역은 반드시 정치적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체로 사적 개인의 이익에 몰두하는 삶보다 공적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존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였다. 오직 이들만이 모두로부터 갈채를 받고 숭앙되기 때문이었다. 갈채와 숭앙 속에서 만끽하게 되는 인정의 기쁨, 공적 공간의 단상에 올라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으며 현상하면서 얻게 되는 환희는 사적 이익에서 획득한 그 어떤 기쁨보다도 큰 것이었다. 마치 연극 무대의 주인공과 같이 공적 공간의 중심에서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위대한 업적을 쌓아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해 열심히 자기의 기량을 닦아나가는 것. 이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삶의 모습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들에게 공영역이란 단순히 정치적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단련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자기 실존의 확인 공간이기도 했다.

근대 유럽의 공영역은 사적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정치적 움직임과 함께 새롭게 등장하였다. 하지만 자유주의 정치적 공영역은 문예 및 학술 활동이 이루어지던 문예적 공영역을 모태로 하였다. 이곳에서는 공적 사안이 아닌 문학, 예술, 학문에 대한 사적 관심사를 상호 논의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삼았다. 커피하우스, 살롱, 신문, 잡지, 음악회, 극장, 문화적 행사 등과 같은 근대 유럽의 문예적 공영역은 신분사회적 규범에서 자유로운 일종의 해방구였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신분과 재산 등에 비교적 덜 구애받으면서 자신의 생각, 정보, 지식을 자유로이 교환하였다.

이러한 자유의 문화를 사회 및 정치 질서 속에 확장시키면서 등장한 것이 정치적 공영역이다. 문예적 공영역이 정치적 공영역으로 전환되면서 그것의 사적 성격은 유보되고 근대적 의미에서의 공적 차원이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 근대의 공영역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영향 때문에 사적 이익의 안전한 확보라는 차원이 강조된다. 그래서 근대인들은 사적 이익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이것이 근대적 의미의 공공성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공영역은 각 개인들의 이익과 관심사가 갈등을 빚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즉 근대적 공영역이 추구하는 공공성의 기초는 사적 이익, 자유, 권리의 추구라는 것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영역은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혹은 공적 사안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지니기는 하지만 정치 외적, 사적 차원과의 연관성도 그에 못지않게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하버마스는 공영역이 단지 정치적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세계 구성원들의 공적 의사소통 네트워크 속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공영역은 생활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적인 삶의 영역, 즉 친밀성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은 공공 사안만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삶의 일상을 주제로 삼을 수도 있다. 또한 공영역은 특정한 물리적 장소나 형태 및 구조에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영역은 삽화적(에피소드적)으로 아주 쉽고 간단하게 발생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보자면 공영역의 예는 술집, 커피하우스, 거리 공연, 극장, 학부모 모임, 록 콘서트, 파티 모임, 정당 집회, 교회의 교무회의, TV, 인터넷, SNS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수준에서 들어볼 수 있다.

힙합 문화적 공영역은 공영역일 수 있는가?

힙합 문화적 공영역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모든 이가 엠씨로서, 디제이로서, 비보이로서 자신을 현상할 수 있다. <출처: Cam Vilay at en.wikipedia.org>

위에서 살펴본대로라면 힙합 문화의 공개적 향유 공간은 분명히 공영역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비록 정치적 성격의 공영역은 아니지만 정치 외적으로 전개되는 공적 의사소통 네트워크로서의 문화적 공영역의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좌절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현실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거리의 백수지만 힙합 문화가 펼쳐지는 공영역에서 그는 화려한 입심의 엠씨거나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비보이로서 각광받는다. 이들은 각자 연마한 기량을 가지고 자본주의의 철칙과 인종주의적 사회 질서에 의해 배제된 동료들의 고통을 위무하고 희망의 에너지를 주입한다. 재산, 교양 등의 참여 자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힙합 문화적 공영역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모든 이가 엠씨로서, 디제이로서, 비보이로서 자신을 현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참여자들은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공유할 수 있다.

힙합 공영역의 그늘: 상처 입은 자아들의 나르시시즘

이 모든 것을 비추어볼 때 힙합 문화적 공영역은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등장한 현상의 공영역이자 인정의 공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현상 및 인정의 공영역은 고대 그리스적 현상 및 인정의 공영역과는 무척 상이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고대적 현상 및 인정의 공영역과 현대의 그것은 모두 표현과 인정이라는 차원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적 현상 및 인정의 공영역에서 나타나는 표현과 인정은 모두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료 시민들의 인정은 사익보다는 공익을 위해 탁월한 행위를 감행하는 존재에 대한 존중과 관심의 표현이다. 또한 기량을 갖춘 이의 훌륭한 행위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공동의 삶의 조건을 더욱 복되게 만들기 위한 동기가 더 컸다.

반면에 현대 힙합 문화 공영역에서 나타나는 표현과 인정은 주로 자기에 대한 관심을 우선한다.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는 엠씨에 대한 갈채는 온전히 그에게 바치는 헌사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를 발견하고 인정한 자신의 탁월한 감각에 대한 감탄이다. 그가 내뱉는 고통스런 자기 고백의 서사는 나의 고통에 복무할 때에 더욱 각광을 받는다. 참여자들은 모두 현실 사회에서 내던져진 경험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은 내적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열광적으로 몰두하고, 자기 비하 의식에서 놓여나기 위해 더욱 허세를 부리며 자기를 증명하려고 한다. 갈채는 무대를 향하지만 사실 상처받은 자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분명 모두는 힙합 공영역에 모여 있지만, 그들의 외침과 몸짓은 대부분 자기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게 바치는 노래이며 자기를 위로하는 춤이다.

폐쇄성을 넘어서

거리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힙합 공영역은 그들에게 모종의 일체감과 공동체적 정서를 선사한다. 하지만 힙합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이 공동체적 정서는 금새 소멸한다. 분명히 힙합 공영역에서 그들은 형제자매였지만, 저 하위문화적 공영역의 해방 에너지가 사라질 무렵에 그들은 다시 고립된 개인들로 돌아간다. 힙합 공영역 밖의 세계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다. 현실세계의 억압은 여전하다. 힙합 공영역에서 만난 형제자매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그저 낯선 이웃, 자기 본위적인 주민들일 뿐이다. 힙합 공영역에서는 배제된 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의 탁월함에 갈채를 보내면서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했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자일뿐이다.

힙합 문화적 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단지 자기 과시나 비대해진 자의식의 표현 수단으로 점철되는 한 그것이 지닌 해방적 잠재력은 봉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출처: Eduardo de Sao Paulo at en.wikipedia.org>

그렇다면 힙합 문화적 공영역이 지닌 탁월한 해방적 에너지는 과연 공적 연대의 차원으로 이행될 수 없는 것일까? 힙합 문화적 공영역은 단지 현실 세계의 괴로움을 잠시 동안 잊게 해주는 엑스터시에 불과한 것일까? 만일 그것을 소비자본주의적 삶의 규칙에 익숙한 방식대로 대충 쓰고 버리는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은 마약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고 만다. 또한 힙합 문화적 공영역에서 얻은 기량을 단지 주류 사회로의 성공적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힙합 문화적 공영역을 부패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힙합 문화적 공영역에서 경험한 것들, 즉 국경, 인종, 빈부 등을 넘어선 상호이해와 배제된 자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태도를 현실 세계에서 연장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실천적 노력의 에너지를 힙합 문화적 공영역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면, 힙합 문화적 공영역은 공적 연대의 또 다른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영역을 공영역이게끔 만드는 힘은 공영역의 혁신적 힘들을 외부의 압력에 맞서 확장시키려 할 때 비로소 확보된다. 힙합 문화적 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단지 자기 과시나 비대해진 자의식의 표현 수단으로 점철되는 한 그것이 지닌 해방적 잠재력은 봉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봉인의 운명을 피하게 할 신묘한 부적 따윈 없다. 힙합 문화가 지향하는 해방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족쇄와 봉인은 풀려날 것이다.

 

‘음악으로 철학하기’는 ‘청춘의 고전’을 만들어가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정독도서관 그리고 알렙과 함께 합니다.  <청춘의 고전>은 지난 두 해 영화와 미술을 고전과 함께 읽어가며 젊음의 공간 홍대 앞에 철학의 열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이번 시즌 3(음악으로 철학하기)은 정독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음악의 선율과 철학 고전의 만남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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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힙합 파티 혹은 힙합 공영역 - 자유와 해방의 정신 (음악으로 철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