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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혁명과 정상과학 페러다임
작성자 철** 작성일 2020-02-10 조회수 521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정상과학 패러다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그 상상력의 이면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는 핍박받은 천재?

이제 본격적으로 이 연재의 주제인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과학기술에서 중요한 상상력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상상력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거듭 살펴봤습니다. 저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마구 자유롭게 상상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과학적 상상력’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죠. “그럼 대체 과학적 상상력이란 뭐냐?” 이런 의문이 생길 겁니다.

과학적 상상력을 보여준 과학사 속의 사례는 아주 많고, 심지어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도 있죠. 그중 하나가 ‘코페르니쿠스 혁명’입니다. 하지만 이 사례는 많은 부분에서 극단적으로 오해되고 있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을 봐주세요.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죽고 나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인 1575년에 제작된 것이니, 당대의 초상화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이 초상화는 코페르니쿠스가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또한 ‘과학적 상상력’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함축하고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초상화(1575).

코페르니쿠스의 초상화(1575).<출처: Wikimedia Commons>

이 초상화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코페르니쿠스가 현대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이해에 따르면, 과학사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종교적 박해가 너무 두려워 자신의 ‘올바른’ 태양중심설을 살아생전에는 발표조차 하지 못한 비운의 과학자입니다. 그는 지구가 돈다는 ‘명백한’ 사실을 발견했음에도 그것이 당시의 주류 사상인 기독교 교리와 어긋났기 때문에 그 명백한 사실에 관해 쓴 자신의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출간을 죽을 때까지 미루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리하여 코페르니쿠스는 당대의 지배적 견해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되죠. 명백한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는 폭압적 주류 견해에 맞서 홀로 진리를 밝힌 영웅이자 고독하게 저항한 지식인의 이미지를 얻습니다.

이 이미지는 최근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거쳐 뉴턴의 근대 역학이 행성의 운동을 정확히 설명해내면서, 코페르니쿠스를 근대 과학 여명기의 저항적 영웅으로 묘사하는 이미지가, 특히 18세기 계몽사상의 시대에 널리 퍼졌던 것이죠.

볼테르나 디드로 같은 계몽 철학자들은 기존 체제를 타파의 대상으로 삼았고, 따라서 기존 체제의 주요 세력인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내세우며 자유로운 사상을 찍어 누르는 보수적 종교 세력에 대항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이들에게는 기존의 체계에 저항하면서도 자연철학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노력했던 영웅이 필요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종교재판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갈릴레오의 영웅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결국 ‘고독한 영웅적 지식인 코페르니쿠스’ 이미지는 최소한 200년은 묵은 오래된 편견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편견일까요? 위 그림을 다시 보면, 코페르니쿠스를 라틴어로 ‘카노니쿠스 아스트로노무스 인콤파라빌리스(CANONICUS ASTRONOMUS INCOMPARABILIS)’라고 지칭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표현도 섞여 있지만 이 표현이 핵심입니다.

그중 쉬운 것부터 보겠습니다. 이 표현의 두 번째 단어인 ‘아스트로노무스’는 천문학자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astronomer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자였으니 이거야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단어 ‘카노니쿠스’는 좀 뜻밖입니다. 영어의 canonical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교회’와 관련된 것 곧 ‘교회적’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뜻은 ‘표준적’ 혹은 ‘모범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좀 이상하죠? 코페르니쿠스는 당시의 주도적 견해에 반기를 든 고독한 아웃사이더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가 표준적이라거나 모범적인 천문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단 말입니까? 코페르니쿠스는 이단적 주장을 해서 소속 집단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천문학자 아니었나요? 뭔가 형용모순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단어 ‘인콤파라빌리스’는 요즘 영어로 하자면 incomparable입니다. 그러니까 코페르니쿠스는 당대에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천문학자였다는 얘기죠. 우리 생각에 코페르니쿠스는 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주변인으로 머물렀을 것만 같은데, 실은 이토록 상찬을 받았던 겁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이 초상화를 그린 이가 코페르니쿠스를 사실과 다르게 주관적으로 평가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천문학자들이 코페르니쿠스를 실제로 어떻게 평가했는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교회와 코페르니쿠스의 관계는 어땠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 초상화에 나타난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평가는 매우 정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의 핵심 세력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분명 당대를 대표할 만큼 뛰어난 천문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저 초상화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코페르니쿠스가 여타 천문학자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탁월함을 보였다면, 그는 어떤 천문학에서 그토록 탁월했던 것일까요? 당연히 지구중심의 우주 모형을 제시한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서 탁월했던 겁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당시의 천문학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학습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기본이었으니까요. 코페르니쿠스 역시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탁월함을 보인 것이고, 그래서 대다수 천문학자들이 그를 칭송해 마지않았습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태양과 지구의 위치만 바꾼 것일 뿐 그 이론적 구조나 수학적 기법은 거의 동일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주전원이나 이심원 등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수학적 기법에서 ‘인콤파라빌리스’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천문학자들이 그를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로서 ‘카노니쿠스’하다고, 다른 천문학자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평가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코페르니쿠스는 자기가 가장 잘하던 분야,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그 분야를 뒤엎은 셈입니다. 모든 사람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관한 한 코페르니쿠스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그 천문학에 통달한 동시에 그 천문학을 극복했다는 얘깁니다. 이건 정말이지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학자가 과학 연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채 되지 않은 얘기죠. 물론 그 전에도 과학 연구로 먹고산 사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뉴턴처럼 대학 교수로서 자연철학을 연구하며 살아갈 수는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처럼 연구소에 취직하는 식으로 ‘과학 연구’ 자체가 직업으로 자리 잡는 것은 과학의 오랜 역사를 놓고 볼 때 극히 최근의 일이라는 얘기입니다.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티코 브라헤처럼 본인이 엄청난 부자이거나 갈릴레오처럼 누군가의 후원을 받거나, 그도 아니면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틈틈이 과학 연구를 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가운데 세 번째 유형에 해당했죠. 비록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자로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기는 했지만 천문학자가 그의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본업은 따로 있었는데, 현재 폴란드 북쪽에 위치한 ‘바르미아’라는 지역의 교회에서 ‘참사위원’으로 재직했죠. 말하자면 그는 교회의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바르미아 참사회는 대주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 지역의 중요 의사결정 기관이었는데, 거기서 코페르니쿠스는 교회가 가진 땅을 관리하는 일, 곧 땅을 나눠 준 뒤 소작료를 받는 등 재정 관련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이따금 주변국과 분쟁이 벌어지면 바르미아 대주교가 보내는 외교사절 노릇을 하기도 했고요.

요컨대 코페르니쿠스는 결코 교회에 반대하거나 저항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코페르니쿠스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참사의원 중에 대주교가 된 경우도 여럿 있었죠. 더군다나 이들은 코페르니쿠스에게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어서 빨리 출간하라고 여러 차례 권유하기도 했어요. 교회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우주 모형을 담은 저서의 출판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재촉’했던 겁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543년 초판 표지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우주 모형.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543년 초판 표지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우주 모형.<출처: Wikimedia Commons>

왜 그랬을까요? 당시 바르미아는 폴란드와 프로이센 등 주변국의 위협을 자주 받는 작은 공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르미아 교단의 코페르니쿠스의 친구들은 당대의 유명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기존 천문학을 뒤엎는 역작을 발표해 바르미아의 명성을 전 유럽에 떨쳐주기를 바랐던 겁니다.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싶어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혹 코페르니쿠스를 걱정한 친구도 있긴 있었습니다. 성서 내용과의 불일치 가능성을 언급하며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진 않았어요.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종교개혁에 실마리를 제공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입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가톨릭교회보다 신교로부터 더 강력한 비난을 받았어요.

루터를 비롯해 이렇듯 종교적 이유로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 내에서도 그의 이론이 지닌 가치를 높이 평가해 그의 저서 출간을 재촉한 사람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둘러싸고 전개된 상황을 교회 혹은 종교가 한쪽에 있고 과학이 나머지 한쪽에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편협한 이해입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가 종교적 박해가 두려워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출간을 미루었다는, 어느새 상식이 되어버린 그 생각은 더더욱 이상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기 전에도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핵심 내용은 당시 유럽 천문학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코페르니쿠스가 그 이론의 요약본을 먼저 출판했기 때문입니다. 요약본을 접한 천문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가 어떤 연구를 하는 중이고 그 이론이 천문학 체계로서 지닌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이미 파악한 상태였습니다. 즉 달력 제작 등 실용적 목적에 유용한지 등을 대다수 천문학자들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이론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학계에서 이미 다 논의되고 있었는데, 더욱이 교회의 핵심 인사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이 책의 출간을 기다리는 마당이었는데, 왜 코페르니쿠스는 출판을 미룬 걸까요? 코페르니쿠스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과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선 토머스 쿤의 생각을 엿볼 필요가 있습니다.

토머스 쿤, 진정한 융·복합 지식인

과학철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토머스 쿤.

과학철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토머스 쿤.<출처: Wikimedia Commons>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의 과학철학을 자세히 다루려면 훨씬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우리의 주제인 ‘과학적 상상력과 창의성’에 대한 쿤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주목할 것은 토머스 쿤이 과학철학자로 알려져 있기는 해도 실제로 그가 받은 학위는 물리학 박사 학위 하나뿐이라는 점입니다. 쿤은 물리학자가 되고자 훈련받은 사람이고 실제로 물리학자로서 연구 활동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학철학 견해를 형성했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 연구의 본성에 대한 쿤의 주장이 과학 연구를 경험해본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토머스 쿤은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금속의 전도 현상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물리학자로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췄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쿤은 물리학 연구만 하기에는 지적 ‘야심’이 지나치게 컸어요.

학생 시절 쿤은 자유 전자(free electron)나 구속된 전자(bounded electron) 등의 개념으로 금속에 전기가 통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관심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자’라는 것들이 이러이러한 행동으로 전기 현상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쿤이 언급한 두 가지 관심사 중 앞부분은 전형적인 물리학자의 연구 주제이고 뒷부분은 과학철학의 연구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쿤은 학생일 때부터 물리학자로서의 지적 관심과 물리학을 메타적으로 성찰하는 철학적 관심 모두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에는 쿤이 관심사를 확장해 자신이 가진 질문을 더 깊이 탐색해볼 수 있도록 해줄 만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펠로(fellow)라는 ‘연구원’ 제도였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요즘처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논문 경쟁에 나설 필요 없이 “과학적 설명의 본성은 무엇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놓고 몇 년간 진지한 탐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자리였어요.

쿤은 펠로로 머무르면서 과학의 역사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물리학 관련 논문이 아닌, 과학사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축적한 지식과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과학철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1962년에 내놓게 됩니다. 바로 《과학혁명의 구조》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자면, 토머스 쿤은 진정한 융·복합 지식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요즘 이 표현이 워낙 남용되는 탓에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실제로 자연과학 연구를 충분히 해본 뒤 그에 기초해 철학적 탐구를 수행한 사람이니까요.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그리고 과학혁명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영문판 초판본. 1962년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했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영문판 초판본. 1962년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했다.<출처: Wikimedia Commons>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주장한 이론의 핵심은 시간상 과학 연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온 ‘정상과학(normal science)’과 관련됩니다. 그런데 ‘정상과학’에서 ‘정상’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저게 정상적 행동이야?’라고 물을 때의 그 ‘정상’과는 아주 다릅니다. 즉 ‘좋다’, ‘바람직하다’ 같은 가치 평가를 내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쿤의 ‘정상과학’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과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쿤은 과학자로서 통계적 의미에서 ‘정상성’을 말하고자 했던 겁니다. 과학에서 ‘정상분포(normal distribution, 또는 정규분포)’란 뭐죠? 서로 독립적인 사건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를 했을 때 앞면이 나오는 사건과 뒷면이 나오는 사건처럼 일정한 확률을 가진 독립적 사건을 많이 반복했을 때 얻게 되는 분포입니다.

정상분포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건은 중간값(median value) 근처에 몰려 있습니다. 반면 중간값에서 멀리 떨어진 사건, 예컨대 동전 던지기를 했을 때 앞면만 연속해서 나오는 일은 아주 드물죠.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이란 ‘성숙된’ 과학 연구의 역사적 과정을 통틀어서 볼 때 정상분포의 중간값에 해당하는 것, 즉 시간상 가장 많은 시간이 투여된 연구방식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성숙된’ 과학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기에 쿤이 ‘정상과학적’ 연구방식이라 지칭한 그 방식으로 연구를 해왔다는 의미입니다. 더 간단히 정리하자면 ‘통상적’ 과학 연구가 곧 정상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과학 연구방식의 특징은 ‘패러다임’이라는 특정한 이론 틀과 연구지침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때 연구지침이 되는 그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의심이나 반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계공학 연구를 수행한다고 해봅시다. 열역학이나 유체역학처럼 기계공학의 근간이 되는 이론 자체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어쩌면 열역학 제2법칙이 틀린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거죠.

일단 근간 이론에서 제시한 법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가정하고 그 법칙이나 이론을 활용해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 바로 그것이 쿤이 말한 ‘정상과학’ 방식의 연구입니다. 물론 옳다고 가정했던 이론이나 법칙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연구는 정상과학 연구가 아니라는 게 쿤의 생각이었죠.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게 나타나듯, 과학 연구에서도 당연히 ‘드문’ 사건에 해당하는 비정상과학적 연구방식이 존재합니다. 쿤은 바로 그 방식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쿤은 과학 연구의 과정을 이렇게 나눕니다. 즉 특정 ‘패러다임’이 이끄는 길디긴 시기에 걸친 ‘정상과학 연구’와, 그 패러다임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고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과학혁명’의 기간. 당연히 과학혁명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 동안 이뤄질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코페르니쿠스와 관련된 우리의 궁금증, 곧 “그는 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출간을 미루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어떻게 해소해줄 수 있을까요? 다음 회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는 과학기술 연구에 필요한 상상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과학적 상상력은 두 가지로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수렴적(convergent) 상상력’이고, 다른 하나는 ‘발산적(divergent) 상상력’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게 중요한데요. 이 두 가지 상상력을 성공적으로 종합해내는 과정에서 과학적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것이 바로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토머스 쿤이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여러 학자의 연구에서 이미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 주장은 그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과학적 창의성과 상상력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해명하려는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정상과학 패러다임 -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그 상상력의 이면 (상상력과 과학기술, 이상욱)